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에 나오는 ‘인생을 선택하라’는 내레이션처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등 사소한 것부터 직업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까지 늘 무언가를 선택하며 산다.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후회도 남기 마련이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청바지 한 장을 사는데도 말이다. 하물며 이혼은 어떨까.

섣부른 판단으로 이혼을 선택한 후 후회하는 일을 줄이기 위해 가정법원은 이혼의사가 있는 부부에게 일정한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라는 일종의 기회다.

숙려기간은 법원으로부터 이혼에 관한 안내를 받은 날로부터 미성년인 자녀가 있거나 임신 중인 경우에는 3개월, 성년인 자녀만 있는 경우에는 1개월이다.

그러나, 짧으면 짧다는 숙려기간 조차 줄이거나 생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의 참을 수 없는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경우를 고려해 법원은 예외적으로 숙려기간 단축 혹은 면제를 허용하고 있다.

숙려기간 단축이나 면제사유로는 가정폭력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 경우, 일방이 해외장기체류를 목적으로 즉시 출국하여야 하는 사정이 있는 경우, 쌍방 또는 일방이 재외국민이므로 이혼의사확인에 기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신청일 전 1년 이내에 이혼의사확인신청을 하여 위 민법 소정 숙려기간 경과 후 이혼의사 불확인을 받은 사정이 있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이혼숙려기간을 면제 혹은 단축 받고 싶다면 서울가정법원의 상담위원의 상담을 받은 후 숙려기간 면제 혹은 단축 사유서를 제출하면 된다. 담당 판사는 상담위원의 의견과 소명자료를 참고해 결정한다.

숙려기간의 단축 또는 면제 사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이혼의사 확인기일을 조기의 날짜로 변경하고 변경된 기일을 당사자에게 전화 등으로 통보한다. 상담을 받은 날부터 7일(상담을 받은 경우) 또는 사유서를 제출한 날부터 7일(상담을 받지 않은 경우) 이내에 새로운 확인기일의 지정 통지가 없으면 최초에 지정된 확인기일이 유지된다.

이혼숙려기간 단축 혹은 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부부라면 숙려기간을 통해 진정으로 후회 없는 선택인가를 반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협의이혼숙려기간 제도에 대해서는 국가가 지나치게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혼율을 낮추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이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부부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이므로 협의이혼을 하더라도 재산분할이나 자녀 양육 문제 등 혼인해소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적절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 황혼기,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면 노력 선행돼야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는 듯이 떠오르는 아침 해보다 호기 있지 않지만, 온몸을 불사르는 듯 이글거리는 한낮의 해보다 정열적이지 않지만 지는 해에는 세상을 은은한 빛으로 물들이는 자연스러운 지혜와 포근함이 있다. 50~60대를 인생의 황혼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젊은 부부라면 먼 훗날 황혼기에 이르렀을 때 노을을 바라보며 서로의 어깨에 기대 그동안 수고 많았노라고 남은 생은 또 어떻게 지내보자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살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현실 속에서는 이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기란 쉽지 않다.

그 동안은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도 ‘참을 인’자 수천 번 써가며 감내해 왔지만 이젠 다르다. 울화를 누르며 참아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60대 초반의 한 여성은 ‘내가 이혼하면 혹시라도 딸이 결혼할 때 누가 될까 봐 참아왔는데 지난해 딸도 결혼했고 더는 울분을 누르며 살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남편의 퇴직과 맞물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이다. 할 일이 없어진 남편의 관심사가 집안일에 집중되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게 되고 그런 남편의 행동을 아내는 참을 수 없어 한다. 때론 술과 폭행에 짓밟혀 오다 자녀의 권유로 이혼을 결심하는 여성도 있다. 비단, 여성뿐 아니다. 남편 또한 아내의 씀씀이, 폭언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한다며 결별을 선언하기도 한다.

실제 2012년 대법원의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중·노년층 부부의 황혼이혼이 전체 이혼의 24.8%(2만8299건)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 쌍 중 한 쌍이 황혼이혼을 하는 것. 황혼이혼 비율도 2006년 19.1%, 2008년 23.1%, 2010년 23.8%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편, 부부 사이가 이미 파탄에 이르렀는데 끝까지 이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부부간 의리나 사회적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재산분할이 두려워 이혼하지 않으려는 경우다. 황혼이혼에 있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업주부라도 재산의 절반에 대한 권리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에서는 지난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도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판결 선고하기도 했다.

황혼이혼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수없는 복선과 예고편이 존재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모른척했을 뿐이다. 곪았던 상처가 터지기 전에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준 배우자의 상처를 치유해 주자. 인생의 황혼기,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며 저물고 싶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않도록 미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혼전문변호사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로 하여금 혼인이라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혼인은 재판에서 승소함으로써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엄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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