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주인 잃은 강남땅도 이씨 운전기사 소유

사진 1, 2, 3은 박모씨의 부동산 취득 과정을 보여주는 토지등기. 사진 1에 고 허채경 회장의 이름이 보인다. 사진 3 우측 열에 ‘회복에 인한 이전’이라고 써있다.

〈일요서울〉은 지난 호(제 736호)를 통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에 대해 추적 보도한 바 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정권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로, 그는 공직에서 물러날 때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축적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재산에 대한 조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전 부장의 재산규모는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또 그의 근황도 제대로 알려진 적 없다. 그는 박정희 정권 당시에 일어난 여러 사건의 내막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 이 전 부장은 단 한 번도 언론을 통해 입을 연 적이 없다. 〈일요서울〉이 그의 재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박모씨. 이 전 부장의 전 운전기사였던 그는 현재 강남 최고의 부동산 재벌이 됐다. 이 기사는 박씨가 소유한 부동산에 대해 추가로 확인한 내용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내가 강남최고의 땅 부자가 돼 있더라. 어찌된 영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 말은 박씨가 그의 가까운 지인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이 지인은 현재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지인이라는 이 인물을 찾아 면회를 시도하려했으나 그의 신원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아 만날 수 없었다.

박씨의 이 행복한 비명을 들은 사람은 또 있었다. 양재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다. 박씨와 알고 지낸지 오래됐다는 A씨는 “박씨가 오래전 ‘하룻밤 새 부자가 됐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6.25때 주인 잃은 땅 어디로

박씨의 땅 소유 과정을 살펴보면 수상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일개 자가용 운전기사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부동산 재벌이 될 수 있었을까. 박씨가 최고 권력자의 운전기사였다 해도 이 부분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박씨는 운전기사로 재직하던 중 무슨 돈으로 부동산을 사 모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부동산을 취득 과정을 살펴보면 정상적인 부동산을 손에 넣은 것으로 보기 힘들다. 또 한꺼번에 강남 곳곳의 부동산을 사 들인 것 역시 석연치 않다.

박씨의 부동산 내역을 추적하던 지난 9일경 그의 부동산과 관련된 문건을 입수할 수 있었다. 수백제곱미터에 달하는 서울 강남의 속칭 알짜배기땅이 박씨에게로 넘어간 것을 보여주는 토지등기부등본이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박씨의 부동산 매입과정에 진모씨와 더불어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회장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허 회장은 과천 서울랜드의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했다. 지금은 허 회장의 4남인 허남섭 회장이 서울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 토지등기에 따르면 관련 부동산이 진모씨 소유에서 허 회장으로, 그리고 박씨로 바뀌었다. 이 부분만 놓고 본다면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강남땅은 6·25당시 강남 토지대장 보관장소가 불타 전쟁이 끝난 직후 주인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토지대장에 드러난 땅 역시 토지대장이 소실됐다가 전후 진씨가 소유자로 등록됐다.

그러나 진씨의 토지소유권 회복 과정에 의문이 발생한다. 등기의 사항란에는 ‘회복(回復)에 의한 이전(移轉)’이라고 명기돼 있다. 만약 진씨가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다면 ‘회복에 의한 취득’이라고 기록돼야 정상이다.

이 문서를 본 법원의 한 관계자는 “회복에 의한 이전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안다”며 “상식적으로 땅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면 ‘회복에 의한 취득’이 돼야 정상 아닌가. 회복된 땅이 이전됐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슷한 다른 문건을 봐도 이런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호에서 보도했던 박씨의 강남 대치동 땅도 원래 소유권자는 허 회장이었다. 이 땅은 1970년 5월 18일 소유권이전가등기가 돼 있다. 이어 1990년 5월 18일 매매에 의한 소유권이전이 됐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토지등기를 통해 확인된 박씨의 강남땅도 이와 똑같은 절차를 거치고 있다. 1970년 5월 18일에 소유권이전가등기를 했고 1990년 5월 18일 소유권이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허 회장은 왜 적지 않은 강남땅을 한창 강남 땅값이 오르는 시점에 처분한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은 허 회장이 고인이 된 관계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박씨는 강남땅만 소유한 게 아니다. 경기도 광주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이 있다. 하지만 이 땅은 주인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땅 일괄 매입 미스터리

모 협회 회장인 J씨는 박씨 소유의 광주 부동산에 대해 “이 땅은 6·25 때 땅문서가 소실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으나 국가문서보관소에서 겨우 땅의 등기등본을 찾았다”며 “하지만 내가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려할 땐 이미 다른 사람이 땅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이란 바로 박씨다. J씨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당시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검찰에 끌려가 온갖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씨에게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사람은 J씨 뿐 아니다.

지난 호에 보도한 O씨의 측근 중 한사람도 땅의 소유권을 주장했다가 다리 불구가 될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측근은 아직도 다리를 심하게 절고 다닌다.

박씨 소유의 원래 땅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땅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들의 땅 찾기가 어떻게 결론 날지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