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보다 돈에 눈먼 패륜… 완전범죄 위해 가족살해

충북 옥천서 부모와 아내,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김모(42) 씨가 지난 2일 열린 현장검증에서 피묻은 옷가지를 태우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2008년 판 ‘인간실격’이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폐륜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은 김모(42·무직)씨. 그는 지난 2일 열린 경찰 현장검증에 나서 아내와 두 살배기 딸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불길 속에 밀어 넣는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해 보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가 친부모와 처자식을 죽여 손에 쥐려던 돈은 불과 2억원 남짓. 평범한 농촌가정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씨가 끔찍한 살인마로 타락하기엔 지나치게 적은 돈이다.

실직과 생활고에 찌든 40대 가장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천륜이 아닌 돈이었다. 완전범죄를 위해 두 살배기 딸의 목을 스스로 꺾어버린 비정한 김씨의 범죄 행각과 행적을 입체추적 했다.


부인, 딸 죽인 뒤 처남과 소주 마셔

지난달 27일 오전 9시 25분경, 한 남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112 신고센터에 접수됐다. ‘아는 사람이 살해당했다’며 신고전화를 건 사람은 김씨의 친구였다. 김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출동한 경찰들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방에 반듯하게 누운 채 숨져있는 아내 A씨(35)의 모습은 끔찍했다. 흉기에 목과 가슴, 배 등 10여 군데 이상을 찔린 시신과 방은 선혈로 뒤범벅이 돼 있었다. 피투성이 엄마 옆에 쓰러진 두 살배기 딸 역시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가느다란 꼬마의 목에는 누군가의 의해 짓눌린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모녀의 시신을 수습한 뒤 경찰은 유족인 김씨에게 발견 당시 상황을 물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비교적 차분하게 숨진 가족을 발견한 정황을 설명했다.

“식구들과 함께 어제 밤 11시까지 밖에서 술을 마시다 딸과 함께 먼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술에 많이 취해 제가 직접 친구에게 아내를 저희 집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해 새벽 1시쯤 귀가했습니다. 아내와 딸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처남이 운영하는 아파트 단지 안 포장마차로 가 밤새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5시쯤 사우나에 갔다 7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와 딸이 죽어있었습니다.”

경찰 조서에 기록된 김씨의 증언 내용이다. 처남 역시 이 같은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김씨의 주장대로라면 그가 자리를 비운 11월 27일 새벽 1시부터 7시 사이에 누군가 집에 침입해 모녀를 살해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수사팀은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7시 40분께 가족의 시신을 발견한 김씨가 1시간 30분이 지나서인 9시 25분 경에야 친구를 통해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한 것이다.

수사팀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어지거나 빼앗긴 물건도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칼에 찔린 부인은 저항한 흔적조차 없었다. 마치 편안히 누운 그대로 일을 당한 듯 했다. 평소 집안사람들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직감이 스쳤다.


완전범죄 꿈꾼 ‘마누라 죽이기’

옥천경찰서 강력수사팀의 금종은(39) 경사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직접 김씨를 면담한 금 경사는 수상쩍은 김씨의 과거 행적을 하나씩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내 A씨는 한달 전 자신 명의로 1억원짜리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수혜자는 남편 김씨와 딸로 돼 있었다. 아내와 딸이 숨진 지금 1억원의 보험금을 손에 넣을 사람은 김씨뿐.

수사팀은 아파트 복도에 설치돼 있는 CCTV를 회수해 녹화된 자료를 분석하기 이르렀다. 드디어 실마리가 잡힌 순간, 그가 처남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주장한 새벽 1시경 수상한 검은색 비닐봉지를 품에 안은 김씨의 모습이 CCTV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금 경사는 김씨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안경잡이의 평범한 40대 가장을 연기했던 김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15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을 속이지는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만 하루 만인 11월 28일, 경찰은 마침내 자신의 살인 혐의를 인정한 김씨의 자백을 받아 그를 긴급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했다는 정황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옷가게와 소주방을 차렸다 모두 말아먹고 흥청망청 카드를 써댄 불량주부였다”며 “이 때문에 불화를 겪다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홧김에 부인을 죽였다는 김씨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전했다.

금 경사는 “자신이 낳은 딸의 목을 졸라 죽인 아버지가 눈앞에 앉아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며 “두 살배기 딸이 살해당한 이유도 아내를 죽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친딸이기도 한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만큼 치밀한 인물이었다는 얘기다.

수사 결과 드러난 범행 전모는 더욱 참담했다. 김씨가 범행을 결심한 것은 1개월 전. 살인을 저지르기 한참 전인 지난 10월말께 그는 3번에 걸쳐 아내가 마실 커피와 음료에 수면제를 섞어 잠드는데 걸리는 시간과 약효 등을 확인했다.

드디어 거사를 치르던 날. 김씨는 작정을 하고 아내에게 술을 먹였다. 거나하게 취한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수면제를 탄 물을 강제로 마시게 했다. 결국 완전히 정신을 잃은 부인은 저항한번 하지 못한 채 남편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아빠 왜 그래…” 어린 딸마저

김씨가 한창 아내를 난도질하던 그때 잠에서 깨어난 딸이 그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딸이 “아빠 왜 그래…”라며 울자 김씨는 어린 딸의 목을 졸랐다.

순식간에 아내와 자식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는 피가 튄 옷과 흉기를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아 집을 나섰다.

복도에 있는 CCTV 카메라를 의식한 김씨는 벽에 바짝 붙어 반대쪽 난간으로 몸을 움직였고 흉기와 옷가지가 든 봉투를 아래로 던졌다.

빈손으로 유유히 아파트를 빠져나온 김씨는 다시 봉투를 근처 다른 마을로 가 증거물을 불태웠다. 흉기는 다시 집으로 가져와 살고 있던 아파트 화단에 파묻었다. 이 같은 정황들은 김씨가 체포된 뒤 열린 현장검증에서 고스란히 재연됐다.

끔찍한 모녀살해사건은 해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수사팀이 밝혀낸 김씨의 패륜은 또 있었다. 금 경사를 비롯한 수사팀은 2년 전 옥천군 금구리의 한 단독주택에서 벌어진 화재사망 사건을 들춰냈다.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노부부는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만에 사망했다. 이들은 다름 아닌 김씨의 친부모였다. 당시 김씨는 유족 신분으로 조사에 참석해 “평소 어머니가 허리수술을 받은 뒤 통증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고 아버지도 편치 않으셨다”고 진술했었다.

더구나 사건 당일 김씨의 행적에 대해 아내 A씨가 “남편은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다”고 해준 덕분에 김씨 부모의 죽음은 생활고를 비관한 동반자살로 마무리 지어졌다.


“2년 전 그놈이라는 확신 들었다”

최근 김씨 부모의 사건은 “그 집 아들처럼 보이는 사람이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간 뒤 집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목격자가 등장하면서 새롭게 불거졌다.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고 법망을 빠져나갔던 김씨에게 두 번째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김씨를 1:1로 심문한 금 경사는 “2년 전 사건을 저지른 것도 이 사람이라는 직감이 들었다”며 “당시 부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혐의를 벗었지만 부인까지 살해된 지금 그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부모를 살해할 때도 1개월 이상 공들여 살인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내가 손댄 가게마다 모두 망해 생활고에 시달리자 김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부모님의 단독주택을 욕심냈던 것.

한 달 전부터 차에 휘발유를 싣고 다니며 부모님 집을 오간 김씨는 범행 당일 미리 현장에 들러 현관문을 열어놓고 나오는 치밀함을 보였다. 마침내 2006년 6월 10일 오전 1시경, 김씨는 트렁크에 있던 휘발유를 부모님의 집 거실에 뿌린 뒤 불을 질렀다.

여든을 넘긴 아버지와 몸이 불편한 어머니는 온몸이 심하게 불에 타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그 뒤 김씨는 4000만원의 융자를 받아 불탄 집을 수리했고 2000만원에 이를 전세로 넘겼다. 전세금으로 챙긴 2000만원은 고스란히 생활비로 탕진했다.

부모님까지 죽이며 재산을 빼돌렸지만 김씨의 인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봄 회사에서 실직당한 그는 최근까지 백수로 지내며 생활고에 찌든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전과나 정신 병력이 전혀 없는 김씨는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극악무도한 그의 범죄행각을 놓고 정신 감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김씨에 대해 구체적인 정신감정을 의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김씨, 돈과 분노가 만들어낸 사이코패스”

최상섭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장 “인격장애자, 정신병력 있는 경우 드물어”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의 정신감정과 치료감호를 담당하는 국립법무병원 최상섭 원장이 이번 김씨 사건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최 원장은 “김씨가 돈 때문에 천륜을 저버린 만큼 고통이나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직접 피의자를 면담하지 않아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을 받는 이들 대부분이 살인이나 폭력범죄를 저지른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에 따르면 이른바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세상을 향한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범죄의 대상은 대부분 일면식이 없는 타인이지만 김씨의 경우처럼 자신의 친족을 살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최 원장은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때문에 스스로 병원을 찾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인격장애를 가진 범죄자들이 대부분 정신병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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