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외국인 영어강사가 마약사범으로 구속…”

나는 신 과장의 진정 어린 충고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하기 어려운 충고를 해 준 것이었다. 몇 년 후 연수를 마치고 그에게 귀국 인사를 갔다.

98년 어느 늦여름이었다. 그 땐 이미 정권이 바뀐 후라 그의 입장이 아주 어려운 때였다. 그 날 우리는 강남의 진동횟집에서 소주를 한 잔 했다.

진동횟집은 언제나처럼 북적거렸다. 그는 말없이 소줏잔을 기울이다 갑자기, “전에 내가 한 말을 생각해 보았냐?”라며 불쑥 물었다. 나는, “예, 생각은 해 보았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신 과장의 충고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미, ‘정보기관이란 곳이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해도 “그만 두겠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각설하고, 96년 8월 실무에 배치된 지 3년 만에 다시 정보학교로 돌아왔다. 정규과정 시절에는 교육생 신분을 빨리 벗어 나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이제 다시 교육생이 되니 마치 해방된 기분이었다. 당시 김기섭 기조실장은 “정치공작을 하던 돈을 직원들 재교육하는 데 쓰겠다”며 직원들을 연수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를 했다. 정보학교에서 영어, 일어, 중국어, 노어를 가르쳤는데, 네 과정을 합해 매년 백 명 가량을 선발했다. 영어 과정은 전체 60명 가량이었는데, 15명씩 4개 반으로 나누었다. 나는 영어 D반에 배속되었다. 우리 담임이었던 신 교수님은 우리를 드림반(Dream Team)으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돌반(Dol Team)으로 하자고 우겼다.

나는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웬만큼은 했다. 우리는 여러 명의 외국인 강사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강사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었지만, 게 중에는 가끔 한국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영국 출신 강사와 감정 대립을 하기도 했다. 우리와 잘 어울리던 캐나다 출신의 젊은 강사가 있었는데, 한 번은 그가 수업 시간 중에 자신들에게도 도청을 하는 지 물었다. 나는 “당신은 도청 당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해 줬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건지, 그가 몇 년 후 마약사범으로 구속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그도 도청대상이 됐던 셈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영어만 배웠는데도 영어 실력은 생각만큼 잘 늘지 않았다. 이미 외국어를 배우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였다. 나는 영어 공부에는 별 재미를 붙이지 못했지만, 카투사 시절에 익힌 기본 실력으로 그럭저럭 별 어려움 없이 지냈다. 영어 듣기가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문법을 좀 소홀히 해도 토플 점수가 그런대로 나왔다.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첫 토플 시험에서 627점이라는 고득점을 받았다.

나이든 선배들 중에서는 토플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정 수준의 토플 점수를 받지 못하면 연수 기회가 무산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편의상 영어로 이름을 불렀다. 나는 제임스라고 불렸다. 제임스(짐)는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 읽은 외국 책인 『보물섬』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고, 카투사 시절 가장 친했던 미군 병사의 이름이기도 했고, 유명한 007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고, 더 중요하기로는 나의 성을 영어로 읽으면 비슷한 발음이 나기도 했다.

나는 김씨를 영어로, Kim이라고 하기보다는 Gim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특별히 아껴 주시던 신 모 교수님은, “제임스가 조금만 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해 줬으면 좋겠다.”며, 나의 나태함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곤 했다.

영어과정을 마칠 즈음에 1년간 연수할 학교를 찾아 보았다. 나는 미국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부설 어학과정에 가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이 개설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들은 등록금만 비싸고 교육내용은 그저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영어 과정보다는 법과 대학원 과정인 LLM 과정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회사에서는 1년간 어학 연수비로, 만 달러를 상한선으로 정해 두고 있었다. 그 이상은 자기 부담이었다.

내가 가려던 법과대학은 대개 등록금이 1만 5천달러 이상이었다. 차액은 당연히 자체 부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참에 미국의 법과대학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요즘은 한국에도 로스쿨이란 게 생겨 미국식 법과 교육을 도입하고 있는 모양이다. 당시에는 미국 법대로 유학 가는 경우가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다. 나는 미군부대에서 법무 행정병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미국의 법학교육 시스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미국의 법과대학 과정은 우리나라의 법과대학 과정과 많이 다르다.

미국의 정규 법과대학은 대학원 과정으로 3년간의 교육과정이다. 이를 “쥬리스 닥터”(Juris Doctor), 또는 줄여서 그냥 “제이디”(JD)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법과대학들에는 JD와 법학 박사과정 사이에 1년 기간의 LLM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말하자면, LLM 과정은 본래 3년간의 정규 법과대학원 (JD과정)을 마친 학생을 위해 개설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법과 교육 체계는 지극히 실용적이라, LLM이나 박사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법과대학 교수들도 대개는 평생 학문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호사로서 실무를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법대의 LLM 과정은 대개 외국에서 학사과정으로 법과 대학을 마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으로 변질되었다.

주로 외국 학생으로부터 현금을 벌어들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LLM 과정의 개설 여부가 대학의 랭킹 평가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법과대학은 모두 LLM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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