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한국판 마타하리 여간첩 원정화 자살시도 진짜 이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여간첩 원정화(34)씨가 구치소 안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지난 12월 25일 수원지검과 수원구치소 등에 따르면 원씨는 같은달 23일 오후 수원구치소 독방에서 소지하고 있던 수건으로 목을 감싸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독방 앞에서 상시근무 중이던 교도관이 이를 발견하고 원씨의 자살을 막았다. 검찰은 원씨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함께 구속 기소된 계부 김동순(63)씨와 황모(26) 전 대위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딸을 면회한 후 심리적 불안과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원씨의 자살 사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원씨는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자살하려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원씨가 공안당국에 적발됐을 당시 일부 언론에선 여간첩사건이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원씨를 간첩이라 불 수 있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가 자살을 시도한 내막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원씨의 간첩행각은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허술하기 짝이 없다. 또 이런 원씨의 움직임을 국정원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2008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의 주인공 원정화. 그는 진짜 간첩이었을까. [일요서울]은 원씨의 입장을 보다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원씨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를 찾아가 보았다.

최근 원씨가 지인에 복잡한 심경을 하소연하고 있다고 한다. 원씨는 자신과 가까운 측근들에게 자신의 답답한 처지를 내비치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한다고 한다.

여러 명의 남성에 접근, 그들을 농락하며 정보를 빼낸 뒤 이를 북한에 넘긴 여간첩 원정화. 이것이 그에 대한 정의다.

그러나 그를 아는 주변인, 북한을 아는 전문가들은 원씨가 여간첩이라는 정의를 부정한다. 심지어 그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원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간첩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수많은 미스터리는 아직 그대로다. 특히 그의 정체에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원씨의 계부 김씨의 정체도 수수께끼 중 하나다. 이에 원씨와 관련된 많은 의문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지난해 12월 24일 원씨가 수감돼 있는 수원구치소로 향했다. 원씨와 접견하기로 예약된 시간은 오후 2시. 구치소에 도착했을 땐 잔뜩 흐린 하늘에서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앞서 23일 접견 신청은 순조로웠다. 구치소 측의 제재도 없었고 원씨의 접견 거부도 없었다. 문제는 다음날 구치소에 도착한 직후 발생했다. 접견시간을 한 시간 앞둔 오후 1시경 구치소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구치소 관계자였다.


“원정화 안정된 생활 중”

자신을 민원과 홍 모 과장이라고 밝힌 그는 “오늘 2시에 원정화씨 접견 예약돼 있는 것으로 안다. 유감스럽지만 오늘 접견은 불허하겠다. 저희(구치소)쪽에서 접견 신청인 신원을 확인해보니 신문기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수감자의 교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접견을 불허할 수밖에 없다. 이점 양해 바란다”라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에 어떻게 신청인의 신원을 확인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홍 과장은 “그냥 개인적으로 알아 봤다”고 말했다.

거듭 홍 과장에게 접견 허락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따져 묻자 그는 “관련 법률에 의거 재소자의 교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접견을 불허하는 것이고 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홍 과장에게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접견을 불허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다. 이해해 달라”고만 말했다. 다시 홍 과장에게 “그렇다면 상부에서 접견을 불허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홍 과장은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 내가 판단했을 때 접견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인적 판단도 상부의 지시도 아닌 결정이란 얘기다. 정확하게 접견신청 불허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홍 과장은 “관련 법률에 의거했을 뿐”이라고 짧게 말했다.

직접 홍 과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민원실로 가서 여직원에게 원정화씨 접견신청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여직원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단 안쪽으로 잠깐 들어오라”며 민원실 창구 안쪽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홍 과장이 나타나 입장을 설명했다.

홍 과장은 “일단 신문에 나오면 그것이 좋은 기사건 나쁜 기사건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기 마련”이라며 “특히 원씨는 이미 국민적 비난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그런데 또 여간첩 어쩌고 하는 기사가 나오면 원씨는 수감생활이 그만큼 힘들어진다. 이런 점 양해해 주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원씨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홍 과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 현재는 아무 문제없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며 “우리 부서에선 자세한 생활상을 알 순 없지만 내가 알기론 별 탈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많이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홍 과장의 완강한 태도에 원씨를 만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원정화 자살시도 내막

다음날 어처구니없는 사건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일요서울]이 원씨의 접견을 신청한 그 날, 그는 수건에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 뉴스는 수원구치소를 찾아간 다음날인 25일에 일제히 언론에 보도됐다. 다시 말해 수원구치소는 <일요서울>의 접견 신청을 받아들였다가 신청접수 당일 원씨가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급하게 접견을 취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구치소측은 원씨 자살시도 다음날 [일요서울]이 원씨를 접견하려하자 접견 신청자의 신원을 조사한 뒤 관련법률 등을 내세워 취재를 막은 것이다.

그렇다면 원씨는 왜 자살하려 한 것일까. 구치소 측의 말대로 원씨는 생활에 잘 적응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자살시도는 충동에 의한 돌출행동일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 사이에선 원씨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 탈북자는 “원씨의 간첩행위내용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탈북자 동지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다”며 “뭔가 허술하고 법원에서 간첩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간첩이 자신을 간첩이라고 시인하는 것은 변절행위다. 북한의 가족들을 걱정한다면 입을 다무는 게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원씨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무언가에 항의하기 위해서거나 억울한 심정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라며 “내 생각에 원씨의 행동이나 출신성분으로 봐서 그는 간첩이 될 수 없다. 아마 어떤 사건에 휘말려 간첩이 돼야 했고 그래서 억울해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과거 원씨와 알고 지냈다는 한 탈북자는 “원씨는 무언가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아무래도 그의 입을 막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원씨가 겁을 많이 먹고 있어서 누구에게도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원씨는 왜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하며 자신의 간첩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원씨를 둘러싼 이런 미스터리는 원씨 스스로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쉽기 풀리지 않을 듯하다.

2006년 말 탈북자를 위장해 입국한 원씨는, 북한노동당 비서 출신 황장엽 위원장의 소재를 추적하고 군 장교들의 신상정보와 미군부대 위치정보 등을 수집해 북측에 넘긴 혐의로 계부 김동순, 황 모 대위와 함께 지난 8월 구속 기소됐다.

원정화는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딸과 함께 살게 해달라'는 내용의 전향서를 제출하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재판부는 징역 5년형을 선고했으며 원정화의 항소 포기로 형이 확정됐다.

계부 김씨가 지금까지 무혐의를 주장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원씨는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신변에 대한 염려와 딸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원씨의 자살기도는 미수에 그쳐 원씨의 건강에 이상은 없는 상태"라며 "원씨가 자신에 대한 언론 보도와 악성 댓글을 전해 듣고 출소한 뒤 정상 생활이 가능할 지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원정화의 미스터리는 없다”

합동수사본부는 3년여의 추적과 40여 일간의 수사를 거쳐 지난해 8월 27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합동수사본부의 수사에 허점이 지적됐다. 특히 발표 이후 공개된 공소장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발표에 따르면 원씨는 학창시절 ‘이중영예 붉은 기 휘장’을 받을 정도로 총명해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추천으로 1989년 10월 사로청 중앙위원회에서 서기로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씨는 이 시기에 북한 공작원 양성학교인 ‘금성정치군사대학(이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에서 돌격대 간부교육도 받았다. 간부 교육을 이수한 원씨는 사로청 중앙위의 소개로 공작원 양성소인 특수부대에 입대했다.

하지만 원씨가 진술한 그의 과거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반박했다.

이들에 따르면 원씨가 1988년 고무산 여자고등중학교 때 받았다는 ‘이중영예 붉은 기 휘장’은 원씨의 주장처럼 ‘공부를 잘 하고 학교에 공헌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이 아니라 학교나 기관에 주는 상이다.

탈북자들은 또 89년 당시 사로청은 물론 현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도 ‘서기’라는 직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로청은 일반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 등 최고 대학 출신들로만 인력이 구성돼 원씨와 같은 중학교 졸업생이 근무할 가능성이 낮다고도 전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원정화의 경력 중 ‘사로청 조직국 서기'에 대한 의문 제기에 “직책으로서의 서기가 아니고 사로청에서 글쓰는 업무에 임시로 4개월간 종사하였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업무를 “기요원"이라고도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고위층 탈북자들에 따르면 “기요원은 그 기관의 주요 문서를 다루는 직책"으로, 어느 기관에서도 기요원은 임시직이 아니다.

북한의 2006년판 조선말대사전은 `기요원'에 대해 “기관·기업소 안의 중요한 문건들을 다루고 보관하는 일을 직책으로 하는 일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사로청 서기로 근무하던 시기에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원씨의 진술도 사실과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탈북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금성정치대학은 1∼3년제 청년간부 양성 교육기관으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갈 수 없으며 군대에서 2~3년 이상 복무했거나 공장, 기업소와 농장 등 생산현장에서 최소 2년 이상 일을 한 뒤 진학할 수 있다.

졸업 후에는 공장, 기업소, 기관 등에서 청년동맹 초급간부로 일하게 된다.

아울러 금성정치군사대학은 선발 이후 외부인과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돼 서기를 하면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구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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