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자금 30억원 뿌렸다”의혹


4조원대 다단계 사기행각을 벌이다 잠적한 조희팔(51)씨가 지난해 12월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밝혀지자 사기 피해자들이 경찰의 검거실패를 강하게 질책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은 해경의 미온적 대처로 조씨가 무사히 밀항했다며 결과적으로 조씨를 도운 셈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아울러 피해자들은 경찰뿐 아니라 검찰도 조씨 검거에 소극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검찰과 경찰이 조씨와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이 같은 의혹제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경은 제보자의 제보를 통해 조씨의 수상한 행적을 밀항 한 달 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해경의 수사망을 뚫고 밀항한 게 아니라 해경의 수수방관아래 유유히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해경은 이에 대해 조씨를 마약거래범으로 단정해 중국 측 배로부터 마약을 반입하는 현장을 급습하려다 밀항을 막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해경은 그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씨의 밀항 차단을 위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일부에서 제기된 조씨의 검·경 뇌물 살포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해경은 조씨의 동향에 대한 제보를 받고도 이를 묵인한 이유를 아직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도 조씨와의 검은 커넥션 의혹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검찰은 조씨의 행적에 대해 제보한 양식업자 박창희(42)씨를 통해 조씨를 검거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초 검찰은 박씨의 정보를 활용해 조씨를 검거할 계획이었으나 돌연 태도를 바꿔 오히려 제보자인 박씨를 붙잡아 둠으로써 조씨의 밀항을 도운 결과를 초래했다.

검찰 역시 태도를 바꾼 이유를 명확히 해명하지 않고 있어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전국적으로 수만 여명의 투자자를 끌어 모아 수조원대 피해를 입힌 문제의 불법다단계 업체를 적발하고 사기에 가담한 주범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지난해 12월 20일 밝혔다.

경찰은 이 회사 대표 권모(48)씨를 구속하고, 조씨 등 임직원 10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렸다.

조씨는 2004년부터 다단계 방식의 의료기구 임대사업을 해오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전국 각지에서 5만여 명의 투자자를 모아 4조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지난해 10월부터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조씨 일당의 사기행각은 2006년 10월 대구 동구 신천동에 ‘BMC'라는 회사를 차리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공기청정기나 안마기 등 건강용품을 대여하고 그 이익금을 배당금 형식으로 나눠준다며 회원들을 끌어 모았다.

일부 피해자들은 조씨에 대해 “조씨는 일종의 바지 사장일 뿐 회사를 실질적으로 주무른 이들은 여러 명”이라며 “조씨와 더불어 잠적한 다른 이들도 빨리 잡아들여야 한다. 막대한 현금은 국내에 잠적한 이들이 빼돌렸고 조씨는 경찰의 수사를 따돌리기 위한 미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일부 언론에선 조씨가 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라고 보도됐지만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태안해양경찰서가 조씨의 동향에 대해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초.

양식업자 박씨는 자신의 배를 이용해 조씨의 밀항을 도왔다. 조씨가 바다로 나가 중국배로 옮겨 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씨는 경찰에 자신의 배로 조씨를 중국 밀항선까지 태워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해경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 조씨를 마약범으로 오인한 해경은 조씨를 잡는데 주력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11월 10일부터 조씨가 밀항한 12월 9일까지 3차례에 걸쳐 마약범 검거작전을 펴는 해프닝을 벌였다.


해경의 황당한 마약단속작전

태안군 안면도 마금포항을 출발한 뒤 우리나라 최서단의 무인도인 격렬비열도를 거쳐 공해상에서 중국배와 접선해 마약을 들여오는 현장을 적발하는 작전이었다.

그나마 이 작전이라도 제대로 펼쳐졌다면 체면이 서겠지만 해경은 그렇지 못했다.

첫번째와 두번째 작전은 사전에 약속된 중국배가 기상악화와 높은 파도로 인해 공해상의 접선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실패했다.

3번째 작전 때는 아무런 장애요인이 없었으나 마약도 조씨도 단속하는데 실패했다. 조씨는 3번째 작전이 펼쳐진 지난해 12월 9일 공해상에 대기 중인 중국배를 타고 유유히 영해를 빠져나갔다.

조씨는 밀항을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조카를 중국에 미리 보내 밀항선을 구하게 한 뒤 한국에서 밀항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

더 기막힌 것은 조씨가 밀항선을 기다리며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녔음에도 경찰은 그를 검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씨를 허무하게 놓친 해경은 그의 신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와중에도 해경은 할 말이 있다.

해경측은 “전국의 수배자가 수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해경이 일일이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빤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해경-조씨 검은 커넥션 있었나

해경은 또 “제보를 받은 뒤에 직접 나설 경우 조씨 일당이 눈치 챌 것을 우려해 직접 접촉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조씨의 밀항 정보를 이미 입수하고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씨의 제보에 따라 지명수배된 조씨의 신원 정보를 제대로 확인만 했어도 그렇게 엉뚱한 마약단속작전을 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해경이 왜 박씨의 주장을 묵살하고 조씨의 신원을 한 번이라도 확인해보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태안 해경은 지난해 11월 초 박씨로부터 조씨의 밀항 시도 사실을 처음 제보 받은 뒤 12월 9일 조씨가 밀항하는 순간까지 한 달이 지나도록 그의 정체를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인근 서산경찰서가 11월 4일 조씨 일당의 공개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런데 태안해경은 그 전단을 한 달도 더 지난 12월 11일에야 전달 받았다는 것이다. 첨단 통신시대라는 말이 무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조씨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왜 이 사건을 단순 마약사건으로 단정해 버렸는지 이 역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해경은 박씨가 과거 마약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박씨의 제보를 무시한 채 조씨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실제로 해경이 조씨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일부에선 해경이 조씨의 신원을 확인을 하고도 조씨의 밀항을 방조한 구실을 찾기 위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는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해경의 말대로 제보자의 제보를 받고도 확인을 하지 않았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경찰이 스스로 직무유기를 인정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렇다면 감춰야 할 더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를테면 조씨의 밀항을 일부러 외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해경을 ‘밀항 도우미’라고 비꼬며 해경의 의문투성이 수사태도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실 조씨의 밀항사실이 밝혀지기 전부터 피해자들 사이에선 “조씨가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려 밀항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소문은 점차 구체화 됐다. 피해자들은 “조씨와 그 일당이 검찰과 경찰 그리고 정치권에 막대한 로비자금을 뿌려 사건을 무사시키려 하고 있다”거나 “조씨가 권력의 비호 아래 밀항에 성공해 해외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소문에 치를 떨었다.

이런 가운데 해경이 조씨의 행적을 파악하고도 코앞에서 놓쳤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피해자들은 “역시 소문대로 조희팔이 로비자금을 뿌려 밀항한 게 사실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들 주장처럼 해경이 실제로 조씨의 로비를 받고 그의 밀항을 모른 척 했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로비가 실제 있었는지, 그리고 해경의 수사실패 원인에 대해 반드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피해자들은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피해자들은 “소문에 권력층까지 로비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조씨와 그 일당이 잡히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며 냉소적인 반응이다.


경찰-박씨 녹취록 커넥션의 증거?

해경의 이상하리만치 허술한 수사태도는 비단 이뿐 아니다. 박씨에 따르면 태안해경은 조씨가 11월초부터 밀항 전까지 세 차례나 태안에 나타났지만, 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지난 12일자 신문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박씨는 “조씨가 11월 30일 두 번째 밀항 시도 때부터는 1차 때와 달리, 변장도 하지 않고 태안 앞바다를 태연히 활보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미 11월 초부터 경찰과 해경이 공유하는 수배자 전산망에 등록돼 있었다. 따라서 해경이 박씨의 제보를 듣고 불심검문만 강화했더라도 조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부실수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경찰들이 오히려 해양경찰청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도 검은 커넥션 의혹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경찰에 있어 본청 근무는 사실상 직급상승이다.

[일요서울]은 이에 대해 해양경찰청에 문의해 보았다. 하지만 해양경찰청은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다.

한편 한국일보는 검찰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기사를 통해 『박씨 사건을 수사한 서산지청은 수사과정에서 박씨의 역할을 알고 체포 사흘 뒤 풀어주기로 했다가 태도를 돌변해 박씨를 기소했다는 것이 박씨 주장이다』라고 보도했다.

또 한국일보는 박씨와 경찰관계자와의 전화통화 녹취를 입수해 그 중 일부를 공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씨는 태안해경 한모 계장과의 통화에서 “형님(한 계장)한테 검사가 약속했어요. 자, 법의 절차가 있으니까 3일만 기다려주시오, 이야기했어요, 안했어요?" 라고 하자, 한 계장은 “이야기 했지" 라고 대답한 것으로 밝혀져 커넥션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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