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원 규모의 건설업체였던 경남기업 성완종(64) 회장이 9일 오전 자신이 즐겨찾던 서울 평창동 북한산 형제봉 등산로 인근에서 목매 자살했다. 그는 해외자원개발 및 경남기업 운영 비리와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20여일간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그는 앞으로의 구속과 수치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성 회장이 한때 건설업자로 성공했으면서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친 연유는 명백하다. 기업인이 본업을 떠나 정치판에 뛰어든 탓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가랑잎을 먹다가는 피똥을 싸고 죽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13세 때 계모를 떠나 동생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가출해 파출부로 일하던 생모를 찾았다. 그는 몇 년 후 생모와 함께 귀향하여 30대 중반에 대전·충남지역 3위 건설업체인 대아건설을 인수했고

50대 초반엔 국내 도급순위 28위인 경남기업을 사들였다. 

성 회장은 건설업 한 우물만을 팠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2000년 정계 진출을 위해 ‘충청포럼’을 세웠다. 그 해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받으려다 실패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자민련 전국구 2번을 받았으나 당선되지 못했고 16억 원의 공천 대가 제공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받았다. 그는 이듬 해 특별사면되었으나 행담도개발 비리 연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를 또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서산·태안에서 당선되었으나 작년 500만 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잃었다. 

성 회장이 정치권을 들락거리는 동안 경남기업은 도괴되어 갔다. 건축경기 침체와 함께 2009년 1차에 이어 2013년엔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자금난에 쫓긴 그는 석유공사 등에서 받은 300억 원대 금융 횡령, 회사자금 250억 원 횡령, 800억 원대 사기대출, 9500억 원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으며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 회장은 1970-80년대 압축 경제성장과 법·윤리 혼탁시대에 성공했다. 그는 평소 모든 문제는 법보다 돈과 인맥으로 풀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인과 관리를 돈 주고 내 사람으로 관리했다. 시대는 달라져갔지만 그는 지난날처럼 돈과 인맥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다. 판단 착오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법보다 인맥을 고리로 풀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배신감으로 들끓었다. 결국 그는 자살하면서 보복 수단으로 바지 주머니에 “성원종 8명 리스트”를 남겨 원한의 박근혜 정부와 권력 핵심측근들을 함께 사지로 끌고 가고자 했다.

성 회장은 기업인이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교훈을 또 다시 던졌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말년에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했다. 그의 아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도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불법송금에 말려들었다가 현대사옥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러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회장,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은 결코 정치판에 눈독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업에만 전념해 한국의 전설적인 경제인으로 추앙받는다. 미국의 석유왕 존 D 록펠러, 금융왕 안드루 멜론,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등도 정치권에 한눈팔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산다. 자선사업에만 몰두해 전 세계의 칭송을 받는다.

성 회장도 본업에만 충실했더라면 지금 쯤 건설업 왕으로 존경받지 않을까 싶어 아쉽다. 그의 죽음이 던진 교훈은 자명하다. “기업인은 정치권엔 얼씬도 말라”는 대목이다. 기업을 시장논리가 아니라 돈과 인맥으로 관리하면 끝내 망한다는 교훈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가랑잎을 먹다가는 피똥을 싸고 죽는다”는 말을 거듭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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