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년을 계기로 한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팽목항 분향소 방문은 16일 유가족들에 의해 봉쇄되었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 분향소 방문을 알게 된 유족들은 ‘진상규명 원천봉쇄 대통령을 즉각 폐기하라’는 현수막을 쳐놓고 분향소 문을 잠근 채 떠나버렸다. 박 대통령은 분향소 대신 방파제로 나가 유족들 없이 발표문을 읽어야 했다.

이어 18일 서울 광화문과 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는 정권타도 폭력시위로 돌변했다. 이 대회는 불법폭력시위 단골 가담자들과 좌파성향 단체들이 끼어있는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주도했다. 그들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하라’ ‘박근혜 정권 물러가라’ ‘과도정부 구성하자’ 등 정권타도 구호도 외쳤다. 행사 뒤 1만명(경찰 추산)의 참가자들 중 5천명은 청와대 행진을 기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 경찰버스 71대가 파손되었다. 경찰 74명이 부상했고 시위대 9명이 다쳤다. 태극기도 불태웠다.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자 100명을 경찰서로 연행했다.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져 내린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에서는 2002년 9월11일 9·11 테러 1주년 추모회가 열렸다. 이 추모 행사는 숨을 죽인 듯 엄숙했고 경건했다. 희생자 유족 대표들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두 시간여에 걸쳐 2753명의 희생자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다. 행사가 끝나는 순간 뉴욕시와 뉴욕주 전역의 교회당 종이 일제히 울렸다. 워싱턴에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직원들과 함께 추모행사를 열었다.

미국에서도 9·11 테러와 관련해 부시 정부가 예방치 못한 책임이 적지 않다는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부시 정부가 정보기관의 사전 테러 경고를 무시했고 “자작극”이라는 루머도 떠돌았다. 사태 수습 과정에서 지휘체계의 혼란으로 희생이 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렇지만 유족들은 그런 의혹들을 들춰내며 “진상 규명하라” “부시 정권 물러가라”고 외쳐대지 않았다. 물론 9·11 테러와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달랐지만, 미국의 9·11 유족들은 한국의 세월호 유족들처럼 정부의 대응이 마땅치 않다고 도로를 불법점거하거나 “백악관으로 가자”며 외치지 않았다. 유족단체에 불순세력이 뛰어들어 불법폭력시위를 선동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미국인들은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은 ‘용기’ ‘힘’ ‘단결’ 세 단어를 홈페이지에 띄웠다. 국가적 불행에 직면, 대결과 갈등 대신 단결하고 협력하는 성숙성을 보였다.

9·11 테러와 세월호 1주기에 드러난 두 유족들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9·11 유족들은 냉정한 이성에 바탕했는데 반해, 세월호 유족들은 격한 감성에 사로잡힐 때가 적지 않았다. 세월호 행사장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같은 것이 끼어들어 불법폭력 투쟁을 선동했다. 야당은 18일 경찰의 폭력시위 진압을 “폭력 진압”이라며 시위대측을 두둔했다. 폭력난동 혐의로 연행된 100명중에는 세월호 유족 20명도 포함되었다. 갈등과 대결이 끊이지 않던 1년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은 1년 전 참변 당했을 때 온 국민이 함께 울었고 성금을 모아준 따뜻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조국 수호를 위해 적과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것도 아니고 여행도중 변을 당했는데도 전쟁 영웅처럼 슬퍼했다. 그런데도 유족들이 정부의 처사가 마땅치 않다고 도로를 불법점거하거나 불법폭력시위에 끼어든다면 “너무 한다”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 물론 정부의 온당치 못한 처사에 대해 평화적인 개선요구 마저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유족들의 자중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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