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가장 많아…안 좋은 건 지워버려?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11번가, G마켓, 옥션 등 오픈마켓에서 소비자들의 구매후기를 임의로 삭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욕설이나 비방이 담긴 글도 있지만 대부분 항의나 불만이 담긴 게시물만 골라서 삭제해온 것이다. 인터넷 쇼핑에서 구매후기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파장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입맛에 맞는 말만 듣고 싶어하는 업체들의 횡포”라며 비판한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삭제가 가능한 글에 대한 기준을 두고 문제가 없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대부분 항의·불만 담긴 내용 사라져
  공정위 “불공정 약관인지 살펴보겠다”

오픈마켓은 온라인으로 물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직접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시장 규모는 18조 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3대 오픈마켓이라 불리는 11번가, 옥션, G마켓이 상품 Q&A게시판, 댓글 등에 게시되는 소비자들의 글을 임의로 삭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1번가와 G마켓, 옥션 3곳에서 총 4360건의 고객 구매후기가 삭제됐다. 이는 오픈마켓 측이 삭제한 것과 해당 상품의 판매자가 삭제한 것을 합한 숫자다.

특히 11번가는 타 업체보다 5~6배 더 많이 구매후기를 지워왔다. 11번가는 총 3257건의 구매후기를 지웠으며 옥션은 602건, G마켓이 501건으로 뒤를 이었다.

상품 Q&A게시판 삭제 건수의 경우 11번가가 4만1879건, 옥션이 1623건, G마켓이 1424건으로 나타났다.

신 의원에 따르면 소비자 A씨는 오픈마켓에서 공기청정기를 구매한 뒤 마음이 바뀌어 취소했다. 배송 전 주문취소였음에도 불구하고 판매자는 배송비 명목으로 2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을 환불했다. 해당 사실을 알리는 항의 글을 남겼지만, A씨의 글은 하루 만에 삭제됐다.

실제로 오픈마켓에 게시된 상품 구매후기 중 불만족 관련 글은 현저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11번가의 경우 지난해 전체 구매후기 중 불만 글은 1.9%였으며 옥션과 G마켓 역시 추천안함에 대한 글은 0.6%, 1.5%에 그쳤다.

신 의원은 “오픈마켓에서 고객의 글을 임의로 삭제해 소비자들이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임도 안 지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소비자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B씨는 “인터넷쇼핑은 직접 물건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구매자들의 후기가 중요한 정보가 된다. 좋은 글은 남겨두고 단점을 지적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면 삭제하는 처사가 어이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오픈마켓 구매후기들을 보면서 ‘왜 글을 지우나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는 걸 봤을 때 막연히 ‘무슨 일이지’라고만 생각했지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삭제된 글이 있거나, 왜 글을 지우냐고 불만을 갖는 소비자들의 글이 있는 제품은 구매하기가 꺼려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 C씨는 “무작정 욕설을 내뱉거나 비방하는 내용은 이해가 가지만 배송지연, 하자제품 판매 등에 대한 정보 등을 제공한 후기도 있을 텐데 부정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삭제를 한다면 후기 조작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냐”며 “몇 해 전 인터넷 의류 쇼핑 업체들이 후기를 조작하다가 들통난 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C씨는 “당시 허위로 작성된 글도 있었지만 배송이 느리다, 품질이 좋지 않다는 등의 내용의 글을 삭제한 것이 문제가 돼 시정명령을 받고 과태료를 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오픈마켓이 이런 행위를 똑같이 하고 있다니 충격적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오픈마켓 관계자들은 “상품과 관련 없는 리뷰에 대해 구매자 또는 판매자가 신고한 경우 사실 확인 후 글 작성자의 동의를 받아 삭제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삭제된 글은 약관에 명시된 기준에 근거한 것이며, 욕설이나 비방 등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오픈마켓이 소비자들의 글을 마음대로 지울 수 있는 이유는 ‘약관’ 때문이다. ‘상품평과 첨부된 의견의 공개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회사는 해당 상품평과 첨부된 의견을 삭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약관에 표기돼 있는 것이다.

11번가 상품 Q&A게시판의 경우에는 물품 판매자에게도 게시글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통상적으로 심한 욕설, 무조건적인 비방, 개인정보가 노출된 글이 삭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나, 모호한 약관을 이용해 만족도 관리에 악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특히 오픈마켓 측에서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범위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부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품평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픈마켓들의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픈마켓은 입점 판매자가 위조상품 판매, 연락두절 등의 행위를 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더라도 법적인 책임이 없다.

즉, 오픈마켓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구매후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자체 판단으로 게시물을 삭제하는 행위 자체가 소비자들의 피해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연맹은 “이 같은 사실은 이용 후기를 두는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그동안 공정위가 이 같은 문제를 방관해왔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신학용 의원이 오픈마켓 게시글 삭제 현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후에야 불공정 여부 검토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임의로 소비자 게시글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한 인터넷 쇼핑몰의 약관이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쳤는지 확인하고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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