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만2000개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진흥법’과 시행령에 따라 7월21일부터 ‘인성(人性)교육’이 새로 의무화되었다. 인성교육의 목적은 인성교육진흥법 1조에 명시되어 있다.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을 육성해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내년 새학기부터는 인성교육 과정을 편성, ‘올바른 인성’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원 연수 등이 실시된다.
인성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문제는 찬·반론으로 엇갈린다. 찬성 측은 입시에 반영해야 교육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측은 인성을 점수로 매길 수는 없고 서열화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교육부는 인성을 계량화한 평가는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학원가에서는 인성면접에 대비한 고액 강의가 등장했다고 한다.
미국의 교육 평론가 조지 레오나드는 저서 ‘교육과 삼매경’에서 교육이란 ‘학생을 변화시는 과정’이라고 했다. 교육이 학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라는 데서 인성을 변화시킬 교육은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이 대학입시 준비 중심으로 쏠려 인성을 소홀히 했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성교육을 위한 새로운 교과(敎科) 도입에는 반대한다. 인성교육은 기존의 윤리·도덕 과목 활용으로 충분하고 지극히 관료적 한건주의 발상에 의한 것이 때문이다.
첫째, 인성교육은 이미 윤리·도덕 교과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거기에 새로 ‘인성교육’이란 명칭을 붙여 새 과목을 신설한다는 건 중복이다. 시간과 예산의 낭비이다. 교사들이 윤리·도덕 시간에 더 심도 있게 인성을 교육하면 된다.
둘째, 인성교육을 새로 도입한 것은 관료적 한건주의 내지는 공명심의 산물이다. 인성교육 입법을 위해 앞장섰던 국회의원들은 세계 최초의 ‘인성교육’ 채택이라고 자찬한다. 그러나 인성교육 교과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그 과목을 어느 나라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모든 나라들이 윤리나 도덕 시간에 충분히 인성교육을 소화할 수 있어서다.
셋째, 올바른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교사 인격이 존중되는 교육풍토와 사회여건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폭행당하는 교사 인격 유린 풍토에서는 인성교육이 학생들에게 감명을 줄 수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같이 학교를 정치투쟁 장으로 전락시키는 한 인성교육은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교사의 인격이 스승으로 존중되는 교육풍토가 선행 되어야 한다.
넷째, 대학입시 위주 교육부터 바꿔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시를 위해 시간, 건강, 돈을 모두 바치는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은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지난날 윤리·도덕 교육이 바른 인성을 주입시키지 못한 연유가 보습 학원 같은 입시위주 풍토에도 기인한다.
다섯째, 인성교육은 학교만의 인성교육으론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학생 부모부터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며 정치권이 패거리 싸움질만 하지 말고 올바른 인성을 시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올바른 인성이 학습되어 간다. 인성교육은 학생·교사·학부모·정치·사회·종교·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가 올바른 인성을 위해 함께 맞물려갈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흑백평등 운동가인 윌리엄 E. B. 뒤브아 교수는 교육이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교사들은 자신들의 책무가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있음을 명심, 각기 수업시간에 전공과목과 관계없이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성교육 교과는 새로 신설할 필요가 없다. 시간과 돈의 낭비고 중복이다. 기존의 윤리·도덕 교과 활용과 교사의 열정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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