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갓파더’ 그대로 재현

입수된 메모엔 시민단체 간부에게 지시한 작업의 내역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경기도 평택 일대 3대 폭력조직을 통합해 채권추심은 물론 선거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온 두목과 조직원 등 12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신전국구파’ 두목 전모(51)씨 등 15명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이모(30)씨 등 조직원 10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전씨는 장기복역 중 교도소 안에서 조직총괄관리는 물론 대규모 폭력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결국 화려한 복귀를 꿈꾸던 전씨는 24년형을 마치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철장신세를 지게 됐다. 교화시설인 교도소를 조직총괄본부로 이용한 황당하고 충격적인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1985년 11월, 전씨는 평택에서 같은 조직의 선배 길모(30)씨를 살해하고 24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는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직전으로 조직폭력배와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때였다.


교도소내 제왕적 존재

이 사건으로 전씨는 감옥에 갇히게 됐지만 오히려 교도소 내에서 평택의 대표적 조직폭력배였던 길씨를 살해한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해 입지를 단단히 구축할 수 있었다. 전씨는 이 같은 입지를 활용, 199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교도소 분위기를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전씨는 자신의 조직원들을 통해 교도관에게 뇌물을 주며 회유해 교도소 내에서 각종 편의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편의는 전씨가 외부와 손쉽게 접촉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교도소 내에 대포폰을 불법으로 반입해 사용하는 것은 물론 1년에 250여 차례가 넘는 면회를 할 수 있었다. 또 착신 구내전화를 이용해 외부와 수십 차례 가량 연락을 취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교도소에 갇혀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와 자유로이 소통하고 조직을 통제할 수 있었다. 교도소 내에서 ‘제왕적 존재’로 군림하며 안락한 수감생활을 했던 것이다.

또 같이 수용생활을 하는 타 조직원들에게도 자신이 누리고 있는 편의의 일부분을 제공하며 하부 조직원으로 포섭해 나갔다. 이를테면 식사 시간 때 제공되는 반찬의 수를 늘려주는 방법 등을 이용했다. 폐쇄적인 교도소의 특성상 소소한 편의만 제공해도 받는 상대는 그 편의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맹점을 전씨는 능수능란하게 이용해 나갔다.

전씨는 또 복역 중 장기복역수에게 주어지는 3차례의 휴가인 ‘귀휴’를 통해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조직원에게 과시해왔다. 2006년 2월에는 귀휴를 나와 서울의 모 호텔에서 평택 일대 3개 폭력조직을 통합, 대대적 기념행사를 치루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전씨의 행각은 거침이 없었다.

당시 대전지검과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전씨에게 이 같은 편의를 제공하고 신전국구파 조직원들로부터 댓가성 금품과 향응을 받은 교도관 2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선거 조직적 개입… 시민단체 간부 모함

전씨는 면회 온 조직원에게 명령을 내리는 방법으로 선거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경우 각종 이권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노림수에서였다. 전씨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지방신문에 허위 사실을 게재하는 방법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전씨의 선거개입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평택참여자치시민단체의 이모(44) 대표였다. 이 대표는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신전국구파가 지지하는 후보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모함을 당해야만 했다. 이 대표의 초중고 동창인 조직원을 통해 이 대표를 유흥주점으로 유인, 술에 만취하게 한 다음 몰래 촬영했다. 이 사진을 인터넷으로 올려 조직폭력배에게 술 접대를 받는 파렴치한 시민단체 간부로 매도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항변에도 불구하고 누리꾼을 비롯한 시민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며 손가락질 했다. 희생양이 되어버린 이 대표는 시민단체 간부직을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찰이 ‘신전국구파’ 조직원을 일망타진하면서 발견한 ‘작업비 지급’이라는 메모를 통해 이 대표의 누명이 벗겨졌고 이 조직의 조직적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를 비롯해 전씨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경쟁 후보에 대한 인터넷 비방 글을 게재하고, 연예인 14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지원 유세에 나섰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는 공소시효 3년이 지나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관계자는 “전씨가 지지한 정치인이 개입한 정황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거침없는 범행 50여 차례

이들의 파렴치한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전국구파’는 2006년 6월부터 2008년 5월까지 평택 건설업체 사장 손모(55)씨에게 복면을 쓴 조직원 3명을 보내 손도끼로 위협했다. 갖은 협박에 겁에 질린 손씨는 자신의 회사가 가진 이권을 고스란히 전씨 조직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신전국구파는 손씨 회사가 시행중인 평택시 소재 모 아파트 사업의 창호공사와 상가 분양권 등을 고스란히 한 손에 움켜쥐었다.

2006년 6월부터 8월 사이에는 불법 채권추심을 의뢰받아 문신한 조직원들을 반바지 차림으로 유모(63)씨의 집에서 머물게 하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1000만 원 상당의 차량 2대를 빼앗는 등 총 4억3000여만 원을 갈취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안성시에서 ‘아스콘공장’ 설립반대 당사자인 마을 이장에게 조직원을 보내 위협을 가하기도 했으며 아스콘공장 설립허가취소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을 도와 ‘소송자문’을 해주던 전 환경단체 간부 구모(45)씨의 집 앞 주차장에 몰려가 집단폭행을 해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토건회사 사장으로부터 청부폭력을 의뢰받아 평택시 모텔 주차장에서 회사 세금포탈을 고발하려는 김모(50)씨에게 조직원을 동원, 폭행을 휘둘렀다.

이처럼 이들 조직은 두목 전씨의 지휘 아래 2006년 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50여회에 걸쳐 개발사업 관련한 이권에 개입함은 물론 불법 채권추심, 갈취, 보복 및 청부폭력을 거침없이 행사해왔다.


각 계파별로 분리 운영… 호칭도 바꿔 불러

이들 조직은 2006년 4월부터 9월까지 주변 지인들로부터 7억5000만 원을 차용해 평택시에서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면서 3억3000여만 원의 조직 활동자금을 마련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세개 조직이 통합된 ‘신전국구파’가 경찰에 노출되지 않도록 두목은 ‘회장’, 각 계파별로 부두목은 ‘사장’ 호칭을 사용하는 등의 치밀함을 보였다. 더불어 조직 상호간에 회합을 갖지 못하게 각 계파별로 분리 운영해 하부 조직원들 간에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특이성을 보였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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