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불륜의 종착점에 선 남녀

불륜의 여인은 내연남에게 병상의 남편 살해를 부탁한다. 살인까지 저지른 내연남은 여자가 변심을 하자 분노에 치를 떨며 그녀의 막내 아들마저도 살해한다. 무슨 삼류 영화의 스토리와도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들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비정한 아내는 12년 중형을, 내연남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형두)는 지난 11월 23일 남편 살해를 교사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교사)로 기소된 이모(49·여)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이씨의 남편에 이어 막내아들까지 죽인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김모(39)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치명적 불륜의 끝은 결국 차가운 감방이었던 것이다. 빗나간 사랑이 부른 참극 속으로 들어가 봤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씨와 김씨의 내연관계는 지난 2008년 말부터 시작됐다. 이씨는 뇌병변장애 3급을 앓고 있는 남편 장모(52)씨와 자녀 다섯 명을 둔 주부였지만 집과 모텔을 오가며 10세 연하의 김씨와 불륜을 지속해왔다. 김씨는 아예 이씨 집 근처 모텔에 투숙하며 잘못된 만남을 이어왔다.


연하 내연남에 남편살해 부탁

이씨는 남편의 병수발이 성가셨던 데다 귀가시간까지 간섭하기 시작하자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해 10월 10일 술자리에서 “남자 아이들만 5명이라 돈도 많이 들고, 남편까지 힘들게 하니 차라리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김씨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같은 날 저녁, 모텔로 자리를 옮긴 이씨는 “남편이 죽으면 4~5년 뒤에는 같이 살 수 있다”고 남편을 죽여 달라고 김씨에게 노골적으로 부탁했다.

이씨는 또 며칠후 지하철에서 김씨를 만나 자녀들의 등교시간을 알려준 뒤 “내일 사회복지사라고 위장해 집에 들어가 불을 질러 남편을 죽여 달라”며 “남의 집에 큰 피해를 줄 수 없으니 휘발유를 쓰지 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김씨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가장해 이씨의 집을 찾아갔다. 집에 도착하기 전 근처 공중전화에서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인데 아내 이씨의 수입금신고서에 도장을 받으러 간다”며 장씨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사회복지사라며 현관문을 두드리자 장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현관문을 열어줬다. 집으로 들어선 김씨는 곧장 장씨를 밀어 방바닥에 넘어뜨렸다. 장씨는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해 넘어진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김씨는 집 안에 있던 현금 46만 원을 챙긴 뒤 장롱 안에 있던 의류에 불을 지르고 장씨가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만 유유히 빠져나왔다. 이 불은 집안 전체에 번졌고 장씨는 연기에 질식해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이후 화재사건은 전기배선 합선에 의한 화재로 보인다는 이유로 내사 종결됐고 이씨는 남편의 사망으로 화재보험금 5000만 원을 받았다.


만나주지 않자 이씨 아들 살해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장씨의 사망 이후 이씨의 마음이 변하면서 들통났다. 김씨는 이씨와의 동거를 기대했지만 이씨의 마음은 벌써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지난 6월 8일, 둘은 다시 만났지만 김씨가 보는 앞에서 이씨는 다른 남자들과 통화를 하다 일방적으로 집으로 가버렸다. 이에 화가 난 김씨는 복수를 다짐했다.

같은 날, 김씨는 가게 앞을 지나가던 이씨의 막내아들 장모(8)군을 데리고 인근 호프집에서 치킨을 먹었다. 이씨의 아들들은 평소 김씨를 삼촌으로 불러왔던 터라 장군 역시 김씨를 잘 따랐다. 치킨을 함께 먹으면서 김씨는 재차 전화를 걸어 이씨를 불러내려다 실패하자 장군과 같이 자신이 투숙 중이던 여관으로 갔다.

장군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김씨는 이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고 통화 중에 심한 욕설을 듣자 분노감이 치솟았다. 그리고 자신이 저질렀던 엄청난 일들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김씨는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장군을 목 졸라 살해했다.

지난 6월 11일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이씨가 그동안 막내아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해 와 막내 아들을 죽이면 이씨도 따라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씨 도와준다며 사기행각도

김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씨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여러 건의 사기 사건를 저질렀다. 김씨는 자신을 주택공사직원으로 속인 후 임대주택을 임대해주겠다며 보증금과 월세 명목으로 5명에게 수백만 원을 가로챘다.

그런가 하면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주택공사 직원인 것처럼 행세해 주민들 연락처를 알아 낸 뒤 아파트가 당첨된 것처럼 속여 분양계약금 178만 원을 빼돌렸다. 또 시가 150만 원 상당의 오토바이와 400만 원 상당의 오토바이 1대를 가로채기도 했다.


각각 징역 12년, 무기징역 선고

이씨는 집에 불을 질러 남편을 살해하라고 교사한 적이 없다며 발뺌했지만 재판부는 “내연남에게 장애를 앓고 있는 남편을 살해교사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며 휘발유를 쓰지 말라거나 사회복지사로 가장해 들어가라고 지시하는 등 범행수법이 상당히 치밀하다”면서 “상황에 따라 수시로 진술을 번복하는 등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며 이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심신상실 또는 심실미약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해 “거동이 불편한 장씨를 억압한 후 불 질러 질식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씨에게 모욕당했다는 이유로 장군을 살해하는 등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며 유족들이 소중한 가족을 2명이나 잃게 돼 피해가 중하므로 사회와의 격리가 불가피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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