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해방 후 3년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반백년 하고도 20년이 훌쩍 넘은 광복의 뜻 깊은 역사의 순간들에는 온전한 독립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피비린내 나는 결전들이 있었으리라.
그 갈망이 여전한 것은 아직도 채우지 못한 ‘국가다움’에 대한 염원이 깃들었기때문이다.

미소 냉전의 세기적 흐름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완전독립·민족통일·민주주의의 신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해방 후 3년. 비로소 우리 민족은 자유와 평등의 역사적인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었다. <해방 후 3년>은 그 ‘가능성의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를 밝혀 오늘날 이어받아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지까지 신국가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뭉치고 격렬히 싸웠던 7인의 민족 지도자
에 대한 이야기가 세가지 키워드로 전개된다.

일제 강점기 이들은 독립이라는 동일한 꿈을 꾸지만 해방 직후에는 서로 다른 노선을 걸었다. 여운형, 김규식, 김구는 ‘민족’, 박헌영과 김일성은 ‘혁명’, 송진우와 이승만은 ‘권력’으로 각각 다른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들이 만들고자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 각자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은 왜 정당통일운동, 좌우합작운동, 신탁통치 반대운동 등을 펼치거나 반대했을까?
그 결과 민족통일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당시 조선신민당 지도자 백남운의 말을 빌리면 해방 후 우리 민족은 ‘민족국가 수립’과 ‘사회혁명 완수’라는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좌우가 함께하는 좌우연립정부를 수립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세계자본주의와 세계공산주의의 대립이 시작되던 해방 후 3년의 역사에서 민족 지도자 7인은 서로 다른 신념을 드러냈다.

한국의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했던 송진우와 이승만을 우익을 대표했던 지도자로서 죄파세력에 배타적 성향을 지니면서 조국의 분단을 불사하며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했다. 이들은 통일국가라는 공동의 신념으로 이끌려했던 여운형, 김규식, 김구와 대조적이다.

해방 후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통해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를 성취하고자 했던 박헌영과 김일성. 그들은 친일 잔재 및 식민주의를 청산하고 노동자와 농민 등 근로인민의 권익을 보장하는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에 의존한 좌익 헤게모니에서 신국가를 건립하겠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는 각 장에 한 명씩, 해방 직후부터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이들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는지 서술한다.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종료 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을 다뤘다.

책의 순서는 이들이 해방 후 활동을 개시한 순서나 귀국한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자도자 7인이 민족의 온전한 독립과 신국가 수립을 둘러싸고 벌인 최후의 결전을 담아 광복을 맞이한 순간부터 민주공화국이 수립되는 순간까지의 역사적 가능성을 이 책에서는 돌이켜보았다.
jakk364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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