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춘 의원 (58·경기남양주을)이 불법정치자금수수 혐의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뒤, 18일 구속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와 그의 가족은 2011년부터 올해 까지 분양 대행 업자 김 모씨로부터 현금 2억7000만 원을 비롯 3100만 원대의 고가 시계 2점 등 3억58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의원이 받은 고급 시계는 ‘해리 윈스턴’과 ‘위블로’로 조사되었다.
분양 대행 업자 김 씨는 3000만원대의 명품 시계들을 이권 매수의 뇌물로 이용한 것이다. 요즘 고가 명품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보기 위한 생활필수품으로 그치지 않는다.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 또는 뇌물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시계에 고유번호가 찍힌 롤렉스나 오메가 등 고급 시계는 결혼 예물로 쓰였다. 그러나 이 전통적인 명품 시계들은 어느새 수천만원 내지 수억원대의 초고가 시계 등장으로 명품 반열에서 밀려나고 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부부에게 600만달러와 함께 각각 1억원 상당의 ‘피아제’ 한 개씩 건넸고 노 대통령 부부는 그 시계들을 후에 되돌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전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2006년 4200만원 상당의 ‘프랑크뮬러’ 시계를 뇌물로 바쳤다가 들통이 났다. 수억원대의 시계도 있다. ‘엑스칼리버 더블플라잉 투르비용 스켈리턴’은 3억9300만원이다. 628개 4.77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파테크 필리프 5078P 001’은 6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초고가 시계들은 박연차나 이재현의 경우처럼 썩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뇌물용으로 유통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미국의 단편 소설가 오 헨리(1862-1919)의 작품에 등장하는 시계는 다르다. 가난한 부부의 헌신적이고 애틋한 부부애의 징표로 묘사된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매기 부부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은 젊은 부부가 생활형편은 어렵지만 서로 헌신적인 부부애를 시현,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남편은 아내가 아름다운 긴 머리칼을 다듬는데 쓰도록 그토록 아꼈던 자기의 시계를 몰래 팔아 빗을 샀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이 시계를 판 줄도 모르고 낡은 시계 줄을 바꿔주기 위해 남편 모르게 가발장사에게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아 새 시계 줄을 샀다. 너무도 애처롭고 고귀한 부부애의 발현이다.
‘매기 부부’의 스토리는 비록 생활 형편은 넉넉하지 못해도 두 사람의 부부애와 사랑은 여느 돈 많은 사람들 보다 풍요롭다는 것을 읽게 한다. 남편과 아내의 자기희생적인 부부애에 감동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천만원대의 시계가 대통령과 국세청장의 마음을 매수하기 위한 뇌물로 이용되었다. 이 시각에도 어디에선가 수천만원대의 시계가 뇌물로 은밀히 거래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천민적인 물질만능 사조에 빠진 사람들은 결혼 때 고급 시계, 고급 가구, 넓직한 아파트 등을 예물로 거래한다. 그러나 호화로운 혼수로 맺은 부부들 중에는 얼마 못가 자주 부부 싸움을 벌이다 끝내 파경에 이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오 헨리 소설속의 ‘매기 부부’와 같은 순수한 사랑이 결핍된 탓이다.
부부 관계는 비록 가난해도 배우자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면 두 사람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가 보장된다. 부부의 행복은 풍요로운 물질에 있지 않다. 고급 시계. 고급 가구, 넓직한 아파트에 있지 않다. 억대의 결혼 지참금에도 있지 않다. 가난해도 ‘매기 부부’와 같이 헌신적으로 서로를 아껴주는 따뜻한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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