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하시 에리코’씨를 부탁해


한류가 좋아 한국을 찾았던 일본 중년여성 다나하시 에리코(58)씨의 실종 사건 수사가 1년이 넘도록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다나하시는 2009년 12월 28일 일주일 일정으로 혼자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러나 귀국 예정일이 지나도 일본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의 신고를 받은 한국 경찰은 실종 장소로 알려진 강릉과 주문진은 물론 묵었던 청담동 호텔, 공항까지 조사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제는 거의 미제 사건으로 여겨져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듯하다.

네티즌들 역시 “가슴이 아프다”,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등의 댓글로 빠른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류시원 또한 지난 10월 팬 카페에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하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다나하시 에리코는 한류스타 류시원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딸은 “팬 클럽까지 가입할 정도로 어머니는 류시원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나하시는 일본에 겨울연가 붐이 일었던 2003년부터 한국 문화를 접하기 시작했으며 2005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로는 더욱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세 딸은 일본 주간지 ‘여성세븐’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사별한 슬픔을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위로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류시원 팬클럽 회원, 생일 선물로 방문

그녀의 가족들에 따르면 다나하시는 한류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 방문을 좋아했으며 특히 류시원을 좋아해 그의 레이싱 경기가 있으면 거의 반드시 한국을 방문해 이를 관람할 정도여서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횟수만 7~8회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2009년 한국 방문은 그녀의 생일을 맞아 생일 선물로 가족들이 마련한 여행이었다 .

2009년 12월 28일 인천 공항을 통해 단신으로 입국한 다나하시는 청담동의 한 호텔에 여장을 푼 후 동해안 쪽으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애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춘천으로 갈 것이라 했던 그녀는 도착 후 ‘춘천은 재미가 없어 강릉으로 갈 거야’라는 문자를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녀가 찾은 주문진은 류시원이 출연한 드라마 ‘진실’에서 최지우가 숨어 지내던 장소다. 최지우는 극중 류시원과의 이별을 결심하고 ‘아무에게도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강릉으로 가 숨어 지낸다. 이후 류시원은 지인으로부터 최지우의 근황을 듣게 되고 강릉 일대를 찾아 헤매던 중 주문진 붉은 등대 앞에서 최지우를 찾게 된다.

다나하시는 바로 그 붉은 등대를 보러 갈 것이라고 한 후 붉은 등대가 아닌 10km 떨어진 부근의 흰 등대 사진과 류시원 사진을 핸드폰으로 지인에게 전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인근 횟집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는 것을 본 횟집 주인의 증언을 마지막으로 다른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실종된 그녀는 귀국 예정일인 2010년 1월 4일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가족들은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한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경찰은 곧바로 서울 강남경찰서를 중심으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3개월간 동원된 형사는 40명이다.

현지에 급파된 형사들은 실종된 1월 1일 그녀가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 것으로 보이는 강릉 터미널부터 시작해 홀로 저녁을 먹었던 것으로 확인된 주문진 식당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당시 기상이 몹시 나빴던 점을 감안해 해안가 역시 해양 경찰과 구조대의 도움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류시원 출연한 드라마 촬영지 사진 보낸 후 실종

하지만 계속된 수사에도 단서는 추가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딸들 역시 답답한 마음에 지난 4월 직접 한국을 방문해 어머니가 묵었던 청담동의 호텔, 강릉 버스 터미널, 강릉의 병원을 일일이 다녔지만 엄마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강남경찰서 오후근 팀장은 “단서가 쉽사리 잡히지 않는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오 팀장은 “다나하시는 호텔에 도착한 처음 3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만 호텔 밖을 나섰다고 했다. 호텔 커피숍에 있을 때도 3~4시간 동안이나 창밖을 우두커니 보기만 했다는 목격담 또한 들려 왔다”면서 자살 가능성 또한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다나하시의 딸 다나하시 히나토는 “우리와 자매처럼 친했던 엄마가 유서 하나 남기지 않고 자살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며 자살은 아닐 것이라 주장했다.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어머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한국 국민들이 꼭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줘 엄마를 찾아 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그런 가운데 지난해 7월 MBC 일산 드림센터에서 다나하시와 비슷한 여성을 봤다는 제보가 있어 수사진을 흥분시키기도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다나하시로 보였던 그녀는 한국말로 자신이 류시원의 팬이라 얘기했으며 자신의 딸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줬다고 말했다. 오 팀장은 “제보자와의 연락은 아직 닿고 있지 않지만 닿는 대로 팀원 2명과 함께 내용을 검토하여 수사에 들어갈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입증 확인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 점과 시간이 상당히 흐른 시점에서 진술을 토대로 하는 수사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본에도 관심, 한류처 문제 부각

한편 다나하시의 실종 사건은 일본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대사관 측도 이번 사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대사관 측에 따르면 이런 실종 사건은 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에 개인여행을 왔다 사라진 여성은 지금까지 2건이 있었다. 모두 실종 사건으로 아직까지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니칸겐다이는 지난 4월 이 사건을 예로 들며 ‘불이 꺼지긴 커녕 제 2차 붐, 한류에 빠진 아내(韓流妻)가 가정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는 제하의 기사를 신고 한국의 치안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아직도 열 올리는 아줌마가 있나 하고 생각한 당신은 모르고 있다”며 이른바 ‘한류처’를 두고 있는 남편들의 생활도 함께 소개됐다. 한류에 휩쓸려 한 해에 수차례 한국에 가는 아내 때문에 겸업 주부 처지가 된 공무원, 아내를 위해 TV로 녹화한 한국 드라마를 필사적으로 더빙하는 남편의 사례도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편 다나하시 실종 사건과 관련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지난 3일 결정적인 제보자에게 포상금 10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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