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암매장한 인면수심 남편

지난달 24일 서울 양재동의 한 과수원에서 경찰이 암매장 된 차씨의 사체를 발굴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오전 2시께 인천시 계양구 자신의 집을 나섰다 사라져 실종신고 10여일 만에 사체로 발견된 차모(42·여)씨. 범인은 다름 아닌 남편 박모(42)씨로 이혼문제와 자녀 양육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아내를 살해, 암매장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내연녀 황모(42)씨가 살해를 도왔고, 내연녀의 일가족이 암매장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내연녀 황씨와 동거하면서 두 딸을 낳아 키우고 있던 박씨는 아내 차씨와 6년 전부터 별거 중이었다. 박씨가 수차례 이혼을 요구하면서 이들 부부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박씨는 황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중 큰 딸이 올해 7세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호적정리를 위해 이혼을 강경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주변의 이목이 신경쓰였던데다, 두 딸을 아버지 없는 자식을 만들기 싫었던 차씨는 이혼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


말다툼 벌이다 격분해 살해

지난 3월 13일 오전 2시20분께 내연녀와 함께 차씨의 집을 찾아간 박씨는 자녀 양육문제로 대화를 나누자며 밖으로 차씨를 불러냈다. 차씨를 자신의 1t 트럭에 태워 이야기를 하던 중 박씨는 “성격이 맞지 않으니 서로 갈 길을 가자”고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이혼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중 격분한 박씨는 차씨의 목을 졸랐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황씨 역시 노끈으로 차씨의 목을 감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범행 당일 오전 11시께 황씨의 오빠를 만나 시신 처리를 상의했다. 이후 박씨는 차씨의 옷을 벗겨 알몸인 채로 시신을 자루에 담고, 차씨의 옷가지와 소지품 등을 소각했다.

이어 같은날 황씨의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암매장을 의논했다. 박씨는 승합차에 시신을 옮겨 싣고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과수원으로 이동했다. 황씨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가 관리하는 과수원으로 황씨 아버지가 과수원 관리를 맡고 있었다. 박씨는 내연녀의 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에 구덩이를 파 차씨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박씨는 차씨를 살해한지 4일 후인 지난달 17일 오후 10시8분께 “아내를 시흥에서 내려줬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태연하게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 계획적 범행에 무게

하지만 경찰은 별거 이후 두 딸을 부양하고 있는 차씨가 가출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수사를 벌여 박씨의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적인 말을 해서 홧김에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으나, 황씨는 “차에 타고 있었을 뿐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살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씨는 우발적인 범행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 경찰은 인천과 부천, 시흥 일대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한 결과 박씨가 운전하던 차량 번호판을 부착했다 떼어놓는 등 증거인멸 흔적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박씨가 휴대전화가 아닌 공중전화로 두 차례 전화해 차씨를 불러낸 점도 계획적 범행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더구나 차씨를 살해한지 4일 만에 실종 신고를 한 점도 계획적 범행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박씨는 아내가 마치 가출한 것처럼 실종 신고를 했지만 “금방 다녀오겠다며 나간 엄마는 지갑은 물론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딸의 진술은 박씨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씨는 시신을 서해대교에 유기했다고 범행을 자백한 후에도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의 공범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살해에 가담한 황씨와 사체유기에 가담한 황씨의 아버지와 오빠를 추가 검거했다.

경찰은 내연녀 황씨가 함께 차씨를 만나러 왔다는 참고인 진술과 범행 당시 박씨와 황씨간의 통화 기록이 없는 점, 살해시점 이후 박씨와 황씨가 황씨의 오빠에게 연이어 통화를 한 점, 황씨의 오빠 차량과 박씨의 차량이 동시에 황씨의 오빠가 운영하는 고물상으로 가는 CCTV 장면 등을 바탕으로 공범을 밝혀냈다.

한편 경찰은 박씨와 내연녀의 가족들이 차씨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모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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