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1개 의대 모두 의사 면허시험 유출에 연루

‘전국 의대 4학년 협의회(전사협)’ 회장과 집행부가 의사 국가시험에서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달 31일 전사협 회장 A(25)씨 등 집행부 10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소속대학 학생들에게 채점기준을 유출한 교수 5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지난해 9월 13일부터 11월 30일 사이 시행된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에서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사협은 전국 41개 모든 의과대학의 학교별 대표들이 모여 결성된 단체로 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10년여 전에 조직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전사협은 지난해 2월 회장단을 선출해 수차례에 걸쳐 각 학교를 순회하며 회의를 열고 실기시험 유출 등 부정행위를 치밀하게 공모했다. 뿐만 아니라 비밀 유지를 위해 각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A씨 등은 지난해 9월 실기시험 유출과 공유를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번 사건은 전사협이 허술한 시험 체계를 악용한 데서 비롯됐다. 경찰에 따르면 먼저 응시한 수험생이 실기시험의 구체적인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면 다른 수험생들은 이를 숙지한 뒤 응시했다.

의사 면허 시험 응시인원이 3300명이 넘고 약 2개월여의 장기간에 걸쳐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실기시험이 치러지는 것이 문제였다.

경찰은 “전사협 관련자들은 실기시험 유출행위가 불법적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부정행위를 감행했다”고 전했다.

또 한의사 필기시험 문제유출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전사협 회장단은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우려해 홈페이지 자료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문제유출에 앞장선 이는 다름 아닌 채점관으로 참여한 교수였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대학은 실기시험 채점관으로 참여한 교수가 출제시험 내용과 채점 기준 등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부정행위 방지와 관련해 응시생에 대한 시험문제 유출방지 교양, 각서 제출 등 형식적인 조치 밖에 취하지 않고 있는 현 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도덕성 마비된 예비 의사들

경찰에 따르면 작년 실기시험 응시자 총 3300여 명 중 전사협 가입자는 총 2700여명이다. 이 때 실기시험에는 총 112개의 문항이 출제됐다. 경찰이 전사협 홈페이지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이중 103문항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경찰은 “학교별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실기시험 유출행위가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으니 보안을 유지할 것을 공지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회원가입을 할 때 학교별 대표가 본인여부를 확인해 가입 승인을 해 주어야 홈페이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보안유지도 철저히 했다.

이번 사건으로 의사면허 실기시험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의사면허 시험은 일종의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해 자질이 의심스러운 의사들까지 면허를 받는다”며 “이번 기회에 의사 면허 시험제도를 대폭 개선해 환자들이 양질의 진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경찰은 2011학년도 ‘전사협’ 회장단이 결성된 사실을 확인하고 부정행위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아울러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지난 2월 전사협 2011학년도 회장단 선출 및 전임 회장단과의 신·구 대면식이 있었던 것을 파악하고 의사 면허시험 부정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계도할 방침이다.


부정 응시자들 어떻게 하나

부정 응시자들에 대한 조치가 어떻게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현행법상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응시자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다 적발되면 합격자의 경우 합격을 취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 면허시험 실기 응시자는 12개의 시험실을 이동하면서 각 시험실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 심의위원회가 결정한 합격점수 이상을 득점하면 실기시험 합격자로 선정된다. 시험일수는 51일이고 1일당 60~70명씩 분산해 실시한다.

응시자가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에서 모두 합격하면 최종 합격자로 선정되어 의사면허가 부여된다. 지난해 시험 최종 합격자는 총 응시자 3376명중 총 3095명이었다. 실기시험 합격자는 총 응시자 3304명중 총 3171명이었다.

이들의 부정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관련 법규를 보면 의료법 제 10조(응시자격의 제한 등)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시험 등에 응시한 자나 국가시험 등에 부정행위를 한 자는 합격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 제 3항에는 ‘합격이 무효가 된 자는 2회의 국가시험 등에 응시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응시자들의 부정행위가 명백히 드러날 경우 해당 응시자들 가운데 면허를 받은 이들은 모두 면허가 취소된다. 또 불합격된 이들이라도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2년간 면허 시험 응시가 제한된다.

네티즌들은 사건 소식이 전해지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 “이렇게 시험에 통과한 이들에게 어떻게 진료를 받을 수 있냐”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한 네티즌은 “수많은 의사들이 이토록 허술하게 면허를 받은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닐 것”이라며 “국가가 지금의 실태를 바로잡는 것과 더불어 의사면허 부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꼴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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