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매매’ 스펙 따라 가격 천차만별

난자매매 브로커들이 불임부부에게 보여준 휴대용 명부. 이 명부에는 난자 제공의 상세 프로필이 기재돼있다.

[최은서 기자] = 불임으로 고민하고 있는 부부를 상대로 ‘난자매매’를 해 온 브로커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일당은 불임 정보 공유사이트로 가장한 홈페이지를 통해 난자를 은밀히 거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생명윤리법상 난자매매는 금지되어 있다. 이들은 법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과 아이를 절실히 원하는 불임 부부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매매를 알선했다. 이 브로커들은 난자 제공자의 외모와 몸매, 학벌 등에 따라 난자 등급을 매겨 가격을 정했으며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난자 제공자 조건 따라 500만~1000만 원
8개월 간 3차례 난자 채취 시술로 후유증


경찰에 따르면 구모(40·여)씨와 정모(29)씨가 모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한 홈페이지 ‘아름다운 동행’ ‘아기가 왔다’는 불임 정보 공유사이트가 아닌 난자 거래 창구였다. 구씨 등은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포털 사이트에 ‘불임, 불임 상담, 불임 정보’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구씨 등이 운영하는 사이트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수십여 명이 가입하자 본격적으로 난자 매매 브로커 활동을 시작했다.

휴대용 명부 만들어 거래

구씨 등은 우선 난자 제공자를 모집했다. ‘손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들 일당의 말에 난자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여성들은 4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한 난자 제공자는 급전이 필요한 20~30대 여성들로 무직자,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주부, 학원 강사, 모델 등 직업도 다양했다.

구씨 등은 난자 제공 지원자들에게 사진을 첨부한 이력서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 이력서를 바탕으로 이름과 나이, 키, 몸무게, 학력, 직업 등 프로필을 상세히 작성한 휴대용 명부를 작성했다. 명부에는 사진과 함께 ‘163cm, 52kg, B형, 미혼, 2녀 중 차녀, 목표 의식 뚜렷’ 등과 같은 프로필이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구씨 등은 재직증명서나 졸업증명서, 재학증명서 등의 첨부 서류를 요구하지 않아 난자 제공자들이 허위로 프로필을 작성하더라도 알아챌 수 없었다.

이들은 난자 제공자가 확보되자 난자 의뢰자 모집에 나섰다. 구씨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난자를 의뢰한 불임 부부를 직접 만나 휴대용 명부를 보여주며 거래했다. 마치 상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나 다름없었다.

구씨 등은 난자 제공자 조건에 따라 500만~1000만 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이들은 ‘서울 소재 대학 졸업, 키 165cm 이상, 수준급 외모, 착한 성격’ 등의 조건을 제시하는 불임부부에게 조건에 부합되는 난자 제공자를 연결해주며 700만 원 이상의 돈을 요구했다. 이른바 맞춤형 거래가 이뤄진 것. 난자 제공자 중 학원 강사의 난자가 가장 높은 가격인 1000만 원에 거래됐다. 일반 조건의 난자 제공자들의 난자는 500만 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인터넷을 통해 난자 매매 음성화가 이뤄진 셈이다.

‘친권 포기’ 등
이행계약서도 작성


또 구씨 등은 친자확인 소송 등 향후에 발생할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 불임부부와 혈액형 조건이 맞는 난자 제공자를 제시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구씨 등은 거래가 성사되면 난자 제공자에게 이행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들은 난자 제공자에게 ‘검사결과가 정상일 시 일을 진행한다’ ‘중개인이 지정한 병원에서 약 투여 및 주사한다’ ‘친권 및 양육권 포기 각서를 위해 서류를 준비 한다’ 등의 항목을 이행계약서에 명시하게 했다. 이와 함께 구체적인 난자채취일과 지급일 등을 정해놓고 ‘난자 채취 기간 중 술을 마시거나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등의 제약 조건을 두기도 했다. 또 난자 의뢰자의 신상은 철저히 익명으로 부쳤다.

이들 일당은 여성 14명으로부터 16회에 걸쳐 난자를 제공받는 등 7000여만 원 상당의 난자 매매를 알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대구 모 산부인과에서만 시술을 하도록 했다. 이들이 이용한 이 산부인과는 2003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난자 제공자에 대한 신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진료기록부 작성도 하지 않았다. 이 산부인과는 진료기록부 대신 연락처 등 인적사항이 전혀 기록돼 있지 않은 동의서를 받아 보관해뒀다.

해당 산부인과는 총 700여 건의 난자 채취 및 이식 시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소 시술비용이 200만 원 임을 감안하면 총 14억여 원에 달하는 시술비용을 받아 챙긴 셈이다. 이 병원은 3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15일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8개월 간 3차례나 난자 채취 시술을 받아 기억력 감퇴 및 자궁 약화 등의 후유증을 호소한 난자 제공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난자를 제공했던 학원 강사 서모(27)씨는 “결혼 이후 임신이 잘 되지 않고, 전신마취로 인해 기억력이 감퇴됐다”며 “난자 채취 시술 이후 1~2달은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행 생명윤리법 상 난자 채취는 다른 사람의 불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만 평생 단 3번만 허용되며 6개월 이상의 간격을 둬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난자 이식 시술을 받은 불임 여성 중에 출산을 한 여성은 없으나 현재 임신 중인 여성은 있다”면서 “불법 시술을 받은 사람도 처벌 대상이나 사회 통념상 임신 중 입건은 무리한 처사라며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