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말 국회는 개정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 관세법은 중소 면세점을 제외한 대형 면세점의 사업권을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홍종학(비례대표) 의원이 주도했다. 그는 10년 면세점 사업권이 “대기업에 대한 최악의 특혜”라며 5년으로 줄였다. 반(反)대기업 정서에 편승한 무책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극치였다.

그러나 당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권 5년 단축과 관련, “면세점 사업의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고 신규 사업자 교체 때 고용인력 1만5000명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면세점 업계에서도 “5년법이 재앙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홍 의원은 “기재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고용에 신경을 썼느냐”며 고집했다. 거기에 집권여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은 채 1분 만에 통과시켰다. 2012년 12월21일 마지막 날 무더기로 다른 법안들과 함께 이 악법은 본회의를 이의없이 통과했다.

기재부 관계자와 면세업자들의 경고대로 면세점 사업권 단축은 수천명 종사자들의 실직과 피눈물을 자아내는 등 ‘재앙’을 불러왔다. 5년 시한법으로 27년 사업을 지속해온 롯데면세점의 월드타워점과 23년의 SK워커힐면세점이 11월말 사업권을 잃었다. 두 면세점에 근무하는 2200명의 종사자들이 실직자로 내몰리게 되었다.

지난 25일 성탄절 오후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와 지하철 잠실역이 연결되는 지하통로에 여러 명의 여성 면세점 종사들이 항의 글판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그들은 “멀쩡한 정규직을 5년짜리 계약직으로 만드는 5년 한시법을 폐지하라”며 “5년 시한법 때문에 1만5000여 면세 노동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직원 80%가 여성입니다. 가사(家事)와 양육을 하는 우리 여성 직장인이 설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멀쩡했던 정규직 직장을 잃게 된 불쌍하고 딱한 여인들이 한겨울 차디찬 지하철역 통로에 서서 쏟아낸 피눈물이었다.

한 시위 참가 여성은 “5년 시한법을 만든 홍종학 의원을 꼭 만나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따져 묻겠다.”고 외쳤다. 흥 의원은 기재부와 업계의 반대를 거부한 채 5년 시한법을 만들어 죄없는 2200명 종사자들에게 피눈물을 쏟아내게 한 데 대해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물론 국회의원은 입법과 관련한 행위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수많은 종사자들을 정규직 자리에서 몰아낸다는 부작용을 생각지 않고 경솔하게 법을 만든 데 대한 죄과이다.

뿐만 아니라 10년에서 5년으로 줄어든 시한법은 국제경쟁에도 독(毒)이 된다. 세계 굴지의 명품업체들은 5년 시한을 우려하며 한국 면세점에 투자하기를 꺼린다. 그들은 “5년 후 어찌될지 모르는데 뭘 믿고 한국의 면세점 기업에 투자를 하겠느냐”며 비관적이었다. 국제적 면세점업 전문지 무디리포트의 마틴 무디 회장은 조선일보와의 회견을 통해 “5년 한시법으로 한국 (면세업) 산업과 경쟁력에 해(害)를 입힐 비이성적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미 국제적 명품업체들은 5년 후를 걱정, 한화갤러리아면세점 등 우리나라 면세점 입점을 미룬다고 한다.

면세점 5년 시한은 멀쩡한 직장을 뺏앗을 뿐 아니라 면세업의 국제경쟁력도 해친다. 이 악법을 만든 의원들에게는 책임을 물어 차기 국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회는 5년 시한법처럼 연말에 충분한 토론도 없이 1분 만에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망국적 폐습을 고쳐야 한다. 국회가 연말 무더기 법안 처리의 고질적 해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또 누구의 피눈물을 자아낼지 모른다. 국민 혈세로 고액 연봉을 누리는 의원들은 국민의 두통거리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국회를 없애야 한다”는 외마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자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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