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페이스 북에 일상을 기록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 의사 김정환의 첫 번째 에세이 <사람아, 아프지 마라>가 지난 5일 출간 됐다. 다양한 환자들과의 인연을 비롯해 의과 대학생 시절의 친구, 현재 가정에 대한 생각들을 추리고 엮었다.

질병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는 은사 가르침을 간직한 덕에 <사람아, 아프지 마라>의 챕터 하나하나는 따뜻하고 눈물겹다. 병원이 배경이다 보니 삶과 죽음, 아픔과 건강, 슬픔과 희망 등 보통 사람들이 쉽게 직면할 수 없는 사연이 많다. 저자는 이런 무거운 주제들 옆에서 유머를 찾았고 환자 각각의 추억과 웃음을 듣고자 했다.

이번 신간은 작가가 될 생각도 책을 낼 생각도 전혀 하지 않은 아마추어 글쓴이의 고백이다. 저자가 페이스 북에 글을 써온 기간은 길지만 매 편의 글은 짧다. 내용은 시처럼 함축적이고 이미지가 그려진다. 책 출간은 3년 전부터 저자의 글 솜씨를 눈여겨본 출판사 대표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자신의 글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도, 책으로 만들기 위한 목표도 없었기 때문에 김정환 에세이는 솔직하고 매번 반성한다. 몸이 아파 마음마저 여려진 환자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한다. 진료는 대화가 되고 소통으로 이어진다. 독자들은 <사람아, 아프지 마라>를 통해 요즘 보기 드문 의사와 환자 간의 인간적인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짧은 분량 안에서 감정을 직관적으로 풀어낸 것과, 대화 속 반전의 순간과 페이소스를 생생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에세이를 통해 가치를 발한다.

많은 페이스 북 친구들은 어느새 열혈독자가 돼 책 앞면과 뒷면에 추천사를 성심껏 써줬다. 의사로서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페이스 북 활동을 부지런하게 하는 모습은 물론 신인 작가가 아직 보여주지 못한 가능성까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저자의 팬들이다.

[본문 내용]

소년은 잠깐 어디론가 자리를 비웠고 그사이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두손으로 꼭 쥔 채 가만히 앉아계셨다. 나는 멀찍이 서서 걸음을 멈춘 채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소년은 어디선가 휠체어를 가지고 나타났다.

, 할아버지. 이제 휠체어에 올라타는 연습을 해보자고요.”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천천히 외투 주머니에 넣고는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힘껏 다리를 세웠다. 잠깐 휘청거리듯 일어서던 할아버지는 손자의 작은 몸에 기대어 휠체어로 털썩 몸을 옮기며 주저앉으셨다.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했어, 할아버지!”

<29p>

진료실에 오시면 본인의 병세 얘기보다는 내 손을 잡고 예쁘다, 예쁘다.”는 말만 반복하다 가시는 할머니 환자분이 계신다. 그 할머니께는 그 어떤 치료나 말보다 내 손을 10분쯤 빌려드리는 것이 제일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할머니의 막내 아드님은 재작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그 아드님은 나와 나이가 같다.

10분간의 아들 역할이 끝나고 나면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46p>

그는 오시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기어이 어머니가 따라오셨다며 못마땅해 했다. 예상대로 결과는 심한 당뇨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모든 게 당신 탓이라고 했다.

제가 당뇨병으로 치료 중인데 아마 저 때문에 아들도 당뇨병에 걸렸겠지요.”

나는 유전적 원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순전히 유전 때문만 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모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중학교 때 애비를 여의고 여태 장가도 못 가고 제 병수발한다고 고생만 한 아이입니다. 다 제 탓이에요.”

어머니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환자는 괜히 따라와서 쓸데없는 얘기만 한다고 툴툴거리며 일어섰다.

<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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