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불모지서 유일무이 인물로 등극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2016년에도 여풍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각계 분야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란 의미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많았다. 능력과 자격을 갖춰도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여성 CEO, 여성 임원 등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들이 늘어나면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란 신조어도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성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살펴봤다. 그 아홉 번째 주인공은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사장이다.

편견과의 싸움…자기개발도 꾸준히
전 직원 얼굴·이름 외우며 소통 힘써

채은미(54) 페덱스 코리아 사장(이하 한국지사장)은 2006년 외국계 물류업계 최초의 여성 CEO에 등극한 인물이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1985년 항공특송업체 플라잉타이거 한국지사에 입사했다. 그러다 1989년 플라잉타이거가 페덱스에 합병되면서부터 페덱스 코리아에서의 근무를 시작했다.

합병 후 그는 페덱스 코리아 고객관리부 콜센터에 배치됐다. 콜센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끈기와 섬세한 업무처리 능력이 인정받았고, 2년 뒤인 1991년 고객관리부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나이 28세 때다.

이는 페덱스 코리아 사상 최연소 부장 승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 2004년엔 한국인 최초로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부 상무로 임명됐다. 이 역시 한국인 최초로 글로벌 임원급에 올라 화제가 됐다.

그는 북태평양지역 인사부 상무로 근무하며 페덱스 코리아 성장에 기여한 공로와 업적을 인정받아 2006년 페덱스 코리아 지사장에 올랐다. 외국계 물류업계 중 여성이 CEO에 오른 것은 채은미 한국지사장이 최초다.

그의 ‘최초’ 기록은 최근 또 하나 추가됐다. 채 한국지사장은 지난해 말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이것 역시 암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단에 올랐다.

겉으로 보기엔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만 한 것 같지만 채은미 한국지사장이 겪은 고난의 시간도 많다.

특히 고객관리부장으로 있을 당시 “여긴 부장이 여자냐? 남자로 바꿔라”, “여자가 이 업계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냐” 등의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또 워킹맘으로서의 고충도 존재했다. 잦은 해외 출장과 대학원 공부로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은미 한국지사장은 결혼 후 회사 일과 가정생활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선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집에선 아내이자 외아들의 엄마로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힘썼다.

공격적 경영 스타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발전도 멈추지 않았다. 채은미 한국지사장은 30여 년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영어 학원에 간다. 그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이라 평가받고 있지만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또 페덱스 코리아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외우며 소통에 힘 쏟고 있다. 연말연시에는 직접 작성한 카드를 보내기도 한다.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어느 직급의 사원이든 원할 때 자신의 사무실에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을 없앴다.

이런 그의 행보는 경영철학에서부터 비롯됐다. 채은미 한국지사장은 ‘P-S-P(People-Service-Profit·사람-서비스-수익)’을 의미하는 ‘P-S-P’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사람(직원)을 최우선으로 놓고, 그 다음으로 서비스와 수익을 추구하면 서비스의 질도 함께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전세계 페덱스의 모든 임직원들이 공유하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채은미 한국지사장은 부임 후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우선 수도권 중심의 사업구조를 벗어난 전국적인 서비스망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 따라 페덱스 코리아는 사무소를 대폭 확장, 이전했다.

또한 고객에게 더욱 다양한 배송 및 서비스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 업무영역도 대대적으로 조정했다.

그 결과 채은미 한국지사장 부임 후 페덱스 코리아는 사무소와 보유 화물차량 수가 늘어나는 등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 업계는 “채 한국지사장이 남성적인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물류업계에서 특유의 성실함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 행보의 결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공항 페덱스 화물터미널 개발 및 운영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페덱스의 새로운 전용 화물터미널은 인천공항 북측 화물터미널 확장 예정부지에 오는 2019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건립된다.

특히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개발 및 운영사업 최초로 BTS(Build-to-Suit) 방식이 적용됐다. 인천공항공사가 페덱스의 필요와 요구에 맞춰 개발하고, 페덱스가 이를 임차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페덱스는 특송화물의 급증에 대비해 시간당 9000개의 화물을 분류할 수 있는 자동화물분류 시스템 등 최첨단 물류설비를 갖출 예정이다. 또 국내 혼합 및 환적 화물의 물류 전진기지로 신축터미널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날 채은미 한국지사장은 “페덱스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과 세계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는 등 대한민국의 수출 증진과 무역 확장에 기여해왔다”며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이번 신규 화물터미널 건립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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