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여의도 국민일보 건물 당사에서 나와 ‘쥐가 나온다’고 했던 영등포 청과물 ‘창고 당사’로 옮기자 한나라당도 박근혜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여의도 공터에 ‘천막 당사’를 짓고 이주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당사는 초라한데 그곳에 드나드는 의원들은 최고급 대형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비판이 일자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두 당의 움직임을 ‘쇼’라고 간주한다. 과연 쇼인지 아니면 두 당 모두 불가피한 선택인지 두 당의 재정 책임자를 만나서 따져보기로 한다. 얼마 전 모 신문에 한나라당에 현재 남아 있는 재산이 60여억원인데도 여의도 ‘천막 당사’로 옮겨 이건 명백히 ‘쇼’라고 규정했던 기사가 나왔다. 이는 지난 3월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게시된 ‘정당의 재산 및 수입, 지출 내역 공고’에서 나타난 사실을 토대로 작성된 기사이다.

한나라당과 우리당의 2003 회계연도 총 잔액을 보면 한나라당이 66억여원이 남았고, 우리당이 7억 8,000만원 정도 남았다. 바로 여기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돈을 갖고 있으면서도 ‘쇼’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직접 양당 재정 책임자를 만나서 확인해 본 결과 두 당의 재정 상황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우리당 임무영 총무팀장은 “7억원 남은 것 어디갔냐고요? 우리당 당직자들 월급만 한달에 4~5억원이 나갑니다. 진작에 없어졌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창고 당사’에 대한 색안경이 무척 불쾌한 듯 “팩트에 근거해 얼마든지 써 보십시오. 우리가 이곳 창고 당사로 온 것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결코 쇼가 아닙니다”라며 항간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애초 지난 3월 5일 김원기 고문이 창당과정에서 당사 임대료로 당에 빌려주었던 2억원이 불법자금이라 정동영 의장이 바로 2억원을 만들어 법원에 공탁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불법 자금이 유입된 당사를 깔고 앉아 1당이 될 수는 없다. 폐공장 부지로 가든 천막을 치고서라도 떠나야 한다”고 하여 부랴부랴 지금의 영등포 창고 당사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상황에서 볼 때 설득력이 있다. 우리당은 ‘깨끗한 정치’를 모토로 창당된 정당인데 당시 소속 후보들이 거듭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었고, 거기다가 창당자금에 불법자금이 유입되었다는 의혹에 정동영 의장은 뭔가 극단적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당은 수시로 “의원들이 갹출한 특별당비 등 깨끗한 돈만으로 창당 작업을 했다”고 자랑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가운데 부랴부랴 3일만에 이주를 시작했고, 1주일 만에 모든 작업을 끝냈다. 계약 조건은 1년 계약에 보증금 1억, 월세 1,500만원이다. 우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많은 것은 한나라당 쪽이다. 분명 선관위 회계 결산에 66억여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규필 한나라당 재정부장의 이야기는 세간에 알려진 내용과 달랐다.

탄핵안 가결 후 당 지지율이 몰락했고, 대표마저 천막당사로 떠나가자 거의 폐가(?)나 다름없는 옛 한나라당 당사 5층 재정국에서 어두운 얼굴로 일하고 있던 황 부장은 한마디로 고개를 저었다. “당의 재산이 많다는 소문은 저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따져보면 실제 당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며 소문의 실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당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천안연수원 부지 12만평은 감정가 6백억원 짜리이다. 그러나 이것을 대선 불법 자금에 대한 책임으로 국민에게 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KB 부동산 신탁에다 소유권 이전을 맡겼다고 한다. 따라서 이제 천안연수원은 한나라당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남은 재산은 한나라당 중앙당사 건물인데, 이것을 매각한다고 해도 남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중앙당사를 건설하면서 금호건설에 52억의 부채를 졌는데, 건설비를 아직 갚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무처 직원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해 230억원이 가압류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를 매각한다고 해도 300억원을 바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당사를 매각해도 많이 받아야 400억원 정도이므로 이것저것 제하면 실제 남는 것은 100억원 정도라는 것이다. 이 돈으로 새로운 당사를 구하는 등 여러 가지로 써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현금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현재로서는 총선 참패가 거의 기정사실로 여겨져 총선 후 대대적인 당직자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돼 지금 당직자들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아 있다. 이 때문에 각 당의 재정 상태는 참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미 현금도 바닥이 나다시피했고, 그렇다고 해서 바뀐 정치자금법 아래서 돈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당 임무영 총무팀장은 “그나마 있던 돈도 창고당사 공사비로 2억원을 거의 다 썼다. 지금 생기는 돈은 국고보조금과 당비, 후원금뿐이다. 정당보조금은 3월 15일 13억 6,000만원을 받았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제 선관위 홈페이지 확인 결과, 임무영 팀장의 말이 옳았다. 그나마 우리당에는 진성당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당비와 후원금이 조금씩 모이는 것 같았으나 확인은 해주지 않았다. 선관위와 언론 등이 이중삼중으로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 차원에서 예전과 같은 불법 자금 유입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당보다 진성당원이 적고, 과거에 기득권과 기업 등을 상대로 큰손을 휘둘러온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그 ‘추위’의 체감온도가 훨씬 더 심해 보였다. 황규필 재정부장은 “분기별로 받는 국고보조금이 사실상 전부이다. 3월 15일에 24억 6,000만원을 받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개정된 정치자금법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돈이 생길 수 있는 길은 정당 보조금과 후원회 헌금, 당비가 전부인데, 후원회도 2006년까지는 폐지된다고 한다. 그 전에 ‘집회에 의한 후원금 폐지’가 시행된다.

또 과거와 달리 우편모금도 거의 없다.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월 지출액이 14억~15억원 정도 되는데 계속해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난감해 했다. 잠시 인터뷰 장소에 들렀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당직자는 “의원님들이야 대형차에 호화생활을 하겠지만 우리들은 정당법이 요구하는 대로 총선 치르고 나면 현재 150명에서 100명으로 구조조정 당해야 한다. 설사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마음속으로는 어둡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현재의 심경을 토로했다.황규필 재정부장은 마지막으로 “국민들 중에는 아직도 한나라당을 ‘차떼기 당’으로 보고 있고, 우리가 천막당사로 간 것도 ‘쇼’라고 보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차떼기 당’이라는 어두운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해도 돈이 없었다. 중앙당사가 팔리지 않아서 현금이 없다. 이번 선거도 4월 2일에 나오는 선거 보조금 95억원 정도로 치러야 한다. 예전처럼 지방에 돈 보내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의원들이 당비를 내는 것도 아니다. 이젠 그만 국민들이 우리 한나라당을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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