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깍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이 곡은 故 신해철이 죽고 나서 크게 화제로 떠오른 곡이다. 신해철은 2010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민물장어의 꿈’은 나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뜨지 않은 어려운 노래다. 이 곡은 내가 죽으면 뜰 것이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라고 자신의 죽음을 예언이라도 하듯 말한 바 있다. 이 곡은 녹음실이 아닌 자택의 이불 속에서 녹음한 것으로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을 향한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난 17일 19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에서 일명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법)이 통과했다. 이후 19일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됐다. 이로써 가수 신해철은 죽어서 ‘신해철법’을 남기게 됐다.

▲ 가수 故 신해철

가수 신해철, 2014년 가을 팬들 곁 떠나

가수 故 신해철은 지난 2014년 10월 17일 송파구에 있는 한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고열과 통증, 심막기조 등의 증상을 보였고 해당 달 27일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끝내 사망했다. K원장은 당시 고인을 상대로 위장관유착박리술을 시행하면서 소장, 심낭에 천공을 발생시켜 복막염 및 패혈증을 유발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불구속 기소됐다. 국과수 부검의들은 故 신해철을 사망에 이르게 한 천공이 K원장이 집도한 수술과 연관이 있다고 증언했다. 지연성 천공인지 수술 당일 생긴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수술과 연관돼 천공이 발생된 것은 맞다고 판단했다. 부검의 중 한 명은 “통상적으로는 천공이 생기지 않는 것이 맞으나 미세한 천공이 생긴 것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사망 원인이며, 그러한 천공은 절대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K원장은 “수술 후 이산화탄소를 소장에 넣어 새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했다”며 수술 중 천공이 생기지 않았음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비만 수술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집행정지 신청을 했으나 기각당했다.

가요사에 한 획 그은 뮤지션

신해철은 1988년 무한궤도의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하며 소위‘혜성처럼’ 가요계에 등장했다. 당시 수상곡은 자작곡으로 현재까지도 불리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했고 솔로가수와, 밴드 활동 두 가지를 병행했다. 그는 데뷔 이후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음악적인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갑작스런 타계 이후 그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 사진=방송캡처

네티즌 사이에서는 국카스텐 소속 가수 하현우로 점쳐지고 있는 복면가왕의 음악대장도 현재 선곡한 9곡 중 2곡을 신해철의 대표곡으로 선곡하는 등 후배 가수들에게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후배가수 가운데 한 명인 록그룹 메스그램의 이수진씨는 故 신해철에 대해 “음악적으로 대단한 뮤지션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락 음악을 가사, 멜로디, 악기, 편곡 등 자신만의 색깔로, 한국적으로 풀어냈다. 신해철은 본인만의 음악 세계가 확실한 뮤지션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러면서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문제로 인식만 하고 있던 사안들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한 문제들은 해결을 하고자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다. 이번 사건도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문제와 연결됐다. 그 분의 죽음이 의료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몫을 한 것이 결코 우연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나 방송에 나올 때 사회적인 문제나 인간적으로나 정치인들이 각성해야 되는 부분에 대해 한마디라도 언급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봉에 섰을 분이고 더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안타까움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 신해철법은 지난 2월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피신청인 단체인 의사협회 등이 반대 의사를 표명해 3달 동안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당은 신해철법을 19대 마지막 임시국회 5대 쟁점법안으로 내세운 바 있다. (사진=뉴시스)

신해철법 국회 법사위 통과

이번에 통과된 신해철법의 핵심은 사망과 중상해 사건으로 의료분쟁조정신청이 제기된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겠다는 데 있다. 지난 2012년 의료분쟁조정제도의 도입에도 불구, 주로 의료인인 피신청인의 거부로 조정이 성립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해 환자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담보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제도도입 이후 중재원에 접수된 의료분쟁 조정신청 건수는 총 5487건이며, 이 가운데 피신청인의 동의를 얻어 조정절차가 개시된 비율은 43.2%에 그쳤다.

신해철법 해석을 두고 시민사회와 의료계가 극과 극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중증환자 기피 현상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사들이 분쟁절차에 휘말릴 것을 우려, 소극적인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법이 시행되면 일반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의 전원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대변인은 “개정 법률로 한사람의 회원이라도 피해를 입는다면, 위헌소송도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故 신해철, 미련 없이 영면키를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번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라는 가사와 달리 그는 세상에 큰 미련을 두고 떠난 듯 보인다. 물론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부분도 그 근거나 사정은 충분해 보이나 그의 의료사고에 의한 억울한 죽음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게 됐다. 이번 신해철법 제정으로 그가 노래 가사에 썼던 것처럼 정말로 미련 없이 이 세상 하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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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기자  vitam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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