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의 판세는 여전히 거센 탄핵역풍에 힘입은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PK(부산·울산·경남)와 TK(대구·경북)등 영남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야당에 비해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데 이론이 없다. 이 추세라면 우리당이 원내 과반인 150석 이상을 차지, 1988년 13대 총선이후 16년만에 자력으로 ‘여대야소’ 국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수많은 여론조사의 결과에서 확인된 ‘무응답층’의 표심은, 어쩌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경합’지역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텃밭마저 잠식당할 위기에 처한 두 야당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더 이상의 비방·폭로전은 없다’던 약속을 뒤로한 채 무엇인가 판도를 뒤집을 초대형 ‘폭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17대 총선의 판도를 뒤집을 5대 변수를 점검해봤다.

변수1 - 한나라 비밀파일 공개?

침몰위기에 처했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효과’로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TK의 경우 절반 이상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1위로 올라섰고, 탄핵 직후 한나라당의 전패 분위기였던 PK에선 한나라당과 우리당 후보의 접전으로 판세가 바뀌는 지역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두드러져 막상 뚜껑을 열면 영남의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한나라당은 보고 있다.그러나 수도권은 영남에 비해선 변화가 미미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대로 밀릴 경우 ‘비방 폭로전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저버릴지도 모를 상황이다.실제 모 건설사가 열린우리당의 실세인 A의원에게 40억원을 제공했다는 소문이 정치권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모 건설사 고위관계자가 A의원에게 공사수주를 전제로 거액을 전달했다는 것.이 같은 사실은 A의원이 금융대부업체 굿머니 김영훈 대표로부터 금품을 전달받는 과정을 검찰 실무진이 계좌추적을 하다가 뜻밖에 A의원의 계좌에서 거액이 입출금된 사실을 포착하면서 밝혀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다.이와 함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추가 폭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이같은 상황을 종합할 때 어쩌면 한나라당은 마지막 반전 히든카드로 ‘여권의 비리폭로’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변수2- 민주당 공격카드

‘추미애 카드’ 불발로 최악의 위기에 처한 민주당의 경우 회생의 실마리를 여권인사들에 대한 도덕적 압박에서 찾을 것으로 보인다.정동영 우리당 의장을 비롯해 현재 직무정지 중인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지난 2002년 대선후보 경선당시 사용했던 자금을 공개하라”고 다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자체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폭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 노대통령과 정의장의 경선자금과 관련해 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총선 이후 본격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이기 때문에 ‘선거전’에서 사전 폭로될 경우,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또 노무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 상당수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측으로서는 이를 추가 폭로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할 가능성 역시 높다.한편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지난 1일 “김진흥 특검팀이 이첩한 최씨의 경선자금 수수 혐의는 (자료검토 결과) 사건이 된다”며 “우선은 계좌추적에 집중한 뒤 총선 후 본격 수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특검수사 결과 최씨는 경선자금 명목으로 받은 1억2천만원을 자신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했고, 이중 수표로 인출된 7천만원은 아직 은행에 지급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노무현 후보 중앙 경선캠프로부터 전남 경선비용 명목으로 받은 천만원의 불법성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다.

변수3 - 영호남 지역주의

선거철마다 나타나는 지역주의 망령이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되살아나 ‘맹위’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물론 우리당이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전국정당’ 탄생도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선거 막바지에 이를 경우 지금까지의 선거 때처럼 ‘지역주의’는 표심을 가를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실제 한나라당의 경우 영남의 탄탄한 지지세를 기반으로 지역구를 늘려 현역의원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열세인 비례대표 증가는 최소화하겠다는 속셈이다. 결국 안정적 의석확보를 위해 이미 ‘지역주의 정당’이기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 이와 관련 류동훈 광주·전남개혁연대 사무국장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온갖 저질 공세가 나온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영남이든 호남이든 지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정당에는 ‘지역감정’을 앞세워 선거에서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좋기야 하겠지만, 지역민 혹은 지역발전에는 오히려 해가 되는 만큼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수4- 무응답층의 반란

대다수 전문가들은 총선의 변수로 부동층 향배를 꼽는다. 최근의 각 정당 지지율의 변화를 살펴보면 탄핵정국에서의 여당 독주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KBS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달 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당은 233개 선거구 중 무려 158곳에서 우세를 보였다. 특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지지율 상승은 TK 지역에 한정되고 있으며, 민주당 역시 반전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민노당은 최근 제 3당으로 약진할 전망도 보이고 있으며, 자민련은 몰락의 처지이다. 총선당일까지의 1강 1중 2약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실제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 전국 성인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 결과, 총선에서 지지할 후보의 소속정당은 열린우리당 42.4%, 한나라당 18.4%, 민주노동당 5%, 민주당 4.1% 등이었다. 탄핵 직후인 지난 17일 갤럽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 46.8%, 한나라당 15.8%, 민주당 6.8%, 민주노동당 4.4% 등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 차이는 24%포인트로 17일 조사의 31%포인트에 비해 7%포인트 줄어들었다. 그러나 현재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무응답층’(27.7%)과 앞으로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자(20.6%)를 합하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가량인 48.3%가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지 확실하게 정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격전지에서 무응답층 표심의 향배는 승패를 가를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변수5- 거대여당 견제 움직임

이번 총선의 최대 쟁점은 ‘거여를 견제할 것인가, 거야를 심판할 것인가’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거대여당견제론’으로,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거대 야당 심판론’으로 맞서고 있다. 당마다 논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 쟁점인 건 분명하다. 지금대로라면 이번 17대 총선에서 역대 가장 강력한 여당이 출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누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탄핵’에서 벗어나 인물을 봐달라고 하는 쪽이나, ‘탄핵’에 대한 국민심판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쪽이나, ‘탄핵심판’보다는 정책선거가 중요하다는 쪽이나 밑바탕에는 둘 중 하나를 깔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일 오전 경남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금 상태라면 여당이 200~220석 얻어 거대여당이 된다. 일당독재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4년을 야당이 있으나 마나한 미미한 존재로 가면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박상천 민주당 상임고문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달 남짓으로 끝날 탄핵문제로 4년을 결정할 국회구성을 잘못할 수는 없다”며 “정상적 민주국가에서는 ‘여야 균형 잡힌 국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는 “탄핵역풍으로 투표하면, 우리당의 1당 국회가 되어 국회가 대통령과 정부의 나쁜 정책을 밝혀낼 수 없게 된다”고 했다.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현판세를 기준으로 한 ‘거여 견제론’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자연스레 공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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