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EU 탈퇴 여부 국민투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2013년 1월 총선공약에 따라 실시되었다. 캐머런 총리의 EU 국민투표 공약은 EU에 회의적인 보수당 내 의원들의 반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EU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독립당(UKIP)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캐머런의 EU 국민투표는 영국에 죽음과 재앙을 불러왔다. EU 잔류 유세를 벌이던 노동당 조 콕스(여) 하원 의원이 반대파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정치인의 무책임한 공약이 사람까지 잡은 것이다. 또한 6월23일 국민투표에 의한 탈퇴 결정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를 경제침체 공포로 몰아넣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민투표 이전부터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년간 최대 5.2%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캐머런 총리가 2년반 전 EU 국민투표를 정치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면, 콕스 의원의 죽음과 경제침체 불안사태는 발생할 필요가 없다. 한 정치인의 섣부른 정치공약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입증한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정치공약 남발도 캐머런에 뒤지지 않는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2002년 10월 대선공약으로 청와대와 정부청사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노 후보의 행정수도 공약은 대선에서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한 데 있었다. 그는 당선 된 후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봤지요”라고 털어놓았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계획은 거센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 2012년 9월부터 행정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기 시작했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업무 협의차 서울 출장을 자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연간 비용은 무려 2조 내지 4조 원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그래서 세종시를 가리켜 ‘빌어먹을 세종시’라는 말이 떠돌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빌어먹을’정치공약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약속에서도 드러났다.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부산·울산·경남 지역 상공인 간담회에서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건의를 받았다. 그는 2006년 12월, “지금부터 공식 검토해서 가급적 신속하게 어느 방향이든 해보도록 하자”며 정부 차원에서 신공항 검토를 공식 지시했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신공항 건설 기초 조사를 거쳐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두 곳 모두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결론,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했다. 그 대신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면 2039년까지 동남권 공항수요를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들은 신공항 건설을 다시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섰다. 국가 장래보다는 대선 표만 쫓는 정치인들의 비뚠 권력욕이 빚어낸 공약 남발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10년을 끌어온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과감하게 백지화하고 김해 공항을 확장키로 결정했다. 잘한 결단이다. 만약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대로 건설키로 했다면 세종시 못지않은 비효율성과 자원 낭비를 피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뼈에 사무치는 반성 대신 여전히 터무니없는 정치공약을 계속 내뱉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27일 전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신이 더민주 대표가 되면 “새만금 신공항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추 의원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선언된 지 불과 6일 만에 또다시 신공항 건설을 제기했다. 그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사리분별력을 잃은 게 아닌가 의심케 한다.

정치인들의 공약 남발은 영국의 캐머런이나 한국의 노무현 모두 나라를 골병들게 한다. 정치권은 나라와 사람 잡는 정치공약 함부로 토해내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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