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었다. 천 년을 이어온 풋풋하고 담백한 그 신라의 미소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보석이고 눈을 감고 떠올리면 무엇 하나 눈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주의 모습을. 파란 하늘 아래에 펼쳐진, 신라의 너른 마당에서 보낸 며칠간의 경주여행. 그 시간을 고이 눈 속에 담을 수 있다면.

신라가 처음 태어났을 때 이미 경주는 신라의 미래였다. 천 년이 지나는 세월이었지만 경주는 잊지 않고 신라를 기다려왔다. 신라는 경주의 과거였고 또 언젠가 돌아갈 고향이었으며 첫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 둘은 그렇게 서로 오랜 세월 동안 떨어지지 않고 꼭 붙들고 살았다.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지역이 있지만 경주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설화와 신화로 가득 찬 곳은 아마도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드물다. 경주를 여행하는 것, 신라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둘을 한꺼번에 보는 것. 여름 오기 전, 애틋한 둘의 감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길을 떠난다.

경주의 허파, 경주산림환경연구원

40헥타르의 면적에 900여 종 44만여 그루의 나무와 야생화가 있는 경주산림환경연구원은 경주에서 조금은 한적한 곳을 찾고 싶을 때, 사람들에게서 살짝 비켜서 혼자만의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 최고의 힐링 포인트가 돼 준다.

남산 자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입구부터 리기다소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높게 자란 풍경이 나무의 세계에 들어왔음을 알린다. 이 남산의 숲에서 경주의 모든 숨이 시작된다.

초봄이면 왼쪽 길은 목련으로 가득해 목련터널이라고 불리고 오른 편은 여름을 지나며 무궁화 길이라는 이름 그대로 무궁화로 뒤덮인다. 가을은 가을대로 붉은 단풍 대궐을 펼치고 겨울에는 눈꽃으로 장관을 이룰 것이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나 호젓하게 걷기 위해 온 사람들은 이 숲의 터널에서 깊이 잠긴다. 숲이라는 곳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숲을 거닐 때 딱히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 그리고 보통의 하루를 내려놓고 그대로 이곳에서 걷기만 하면 될 뿐. 두 개의 통나무가 덩그러니 개울 위에 놓여 있는 장면은 이 연구원의 하이라이트이며 최고의 사진 스폿이기도 하다.

산림전시실과 야생화원, 식물원과 잔디광장 등 다양한 관련 장소를 갖춰 경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주여행의 길을 제시하는 경주산림환경연구원. 2020년까지 신라 향가와 설화를 테마로 한 정원과 카페 등의 편의 시설을 설치하는 등 공원화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북적거리기 이전에 미리 찾아가보는 것이 좋겠다.

숲길을 걷다가 끝까지 가면 혹시 알까, 거짓말처럼 천 년 전의 신라가 모습을 드러낼지. 그리고 잘생긴 화랑이 웃으면서 맞아줄지.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7.

옛 신라의 마을을 걷다,
교촌 한옥마을

경주의 한옥마을을 양동마을과 함께 양분하고 있는 교촌마을. 양동이 경주 시내에서 20여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반면에 교촌은 바로 시내 중심에 있어 다른 명소들과 함께 묶어 둘러보기에 좋다. 바로 옆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 월성지구가 있으며 교촌마을 안에 경주 최 씨의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인 교동법주)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어 족히 반나절은 잡아야 하는 코스다.

우선 교촌마을에서는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한반도에는 군산에 한 곳, 평양에 한 곳 그리고 이곳 경주에 한 곳 등 세 지역에 만석지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특히 경주의 최부잣집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있다.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고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고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으며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어른의 말씀을 가훈처럼 남겨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끊임없이 실천해 왔다.

경주의 품격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경주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은 곳 교촌. 최부자의 마음을 오롯이 마음에 담아간다.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info>
경주와 카슈미르. 멀게 느껴지는 두 지역이 만났다. 바로 교촌에 있는 카슈미르 카페. 인도의 북서 쪽 끝에 있는 지역 이름인 카슈미르는 그러나 인도와는 완전히 다른 뿌리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사지드라는 이름의 카슈미르 남성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이국적인 카슈미르 공예품과 향 좋은 커피를 만나보자.

한국 최대의 피라미드,
서악리 고분군 무열왕릉

우선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이 엄청난 크기의 무덤들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무열왕릉의 비석 파편이 거북의 등 위에 보존되어 있다. 비록 몸돌은 없어진 파편일 뿐이지만 이 비석은 동양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 보존된 비석으로 평가받아 국보 제25호로 지정됐다.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글씨가 비문으로 남겨져 있다. 작은 언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무덤들은 무열왕릉을 앞에 두고 네 개 같은 크기의 무덤으로 겹겹이 이어진다.

무열왕릉을 제외하고는 다른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직계 가족일 것이라는 의견이 정설이다. 무열왕릉은 바로 춘추를 말한다.
김춘추가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역사다.

길 건너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과 9세손인 김양의 무덤도 함께 있어 이곳은 진정 왕들이 사후 신의 세계로 넘어가는 영역임을 알 수 있다.
북서쪽에 위치한 선도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주위의 대나무 숲을 통과해 고분군으로 슬며시 불어들면 아득함과 몽롱함이 교차하며 이곳을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비로소 떼어놓는다. 조금 진정되었던 마음이 다시 뛰는 순간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2.

신라 인재의 배출처,
서악서원과 도봉서당

서악서원은 경주여행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어느 곳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우선 서악서원은 김유신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신라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인 김유신의 위패를 모신 것도 특기할 일이지만 이후 지방 유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설총과 최치원의 위패도 함께 모시게 돼 신라의 굵직한 인사들이 모두 서악서원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 서악서원
▲ 서악서원
이황도 서악서원과 관련이 있다. 서원 본당에 쓰여 있는 서악정사(西岳精舍)라는 현판은 당시의 명 서예가인 원진해가 쓴 것이지만 최초에 사액한 것은 바로 퇴계 이황의 작품인 것. 서악서원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의 난리 속에서도 버틴 유서 깊은 곳으로 경주의 숨은 유적지임이 분명하다.
▲ 도봉서당
조선 중기의 문신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인 도봉서당은 서악서원에서 선도산 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서당이다. 숲 속의 중턱에도 신라 왕들의 무덤은 이어져 진지왕과 헌안왕, 진흥왕과 문성왕릉이 야트막하게 자리하고 있고 서악동 3층 석탑과 보물 제62호인 경주서악리마애석불상도 있어 무열왕릉에서 시작해 고분군으로 이어진 서악리 유적투어를 마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tip>
서악서원에는 신라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선비체험 프로그램이 있으며 도봉서당과 함께 고택 체험도 가능하다.

<프리랜서 이곤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다음호에 계속>

정직하고 꾸밈없는 맛이 일품인 경주 음식 투어

경주 음식에 대한 호응이 날로 뜨겁다. 기본적으로 간이 세지 않고 재료의 순수함을 바탕으로 꾸며내는 경주의 음식은 웰빙과 담백함을 담고 있고 그래서 정직하고 꾸밈없는 맛을 찾는 이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음식들로 자리하고 있다. 경주에 오면 들러야 할, 오로지 네 곳.

미감포중매인참가자미횟집

   
 
경주 가자미 횟집의 지존. 1998년 개업한 이래로 그 탑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강원도의 가자미가 노란빛을 띠는 데 비해 경상도의 가자미는 흰색이라 참가자미라는 수식이 붙는다.

감포중매인참가자미횟집의 가자미는 당일 직접 바다로 나가 길어 올리고 경매 없이 입하되므로 100% 자연산을 보장한다. 굵은 뼈를 걷어내고 세꼬시로 나오는 가자미회는 잔비린내가 없고 식감이 좋아 그냥 먹어도 고유의 쫄깃함을 느낄 수 있다.

서울 등 타 지역에서는 자연산 가자미회를 쉽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경주에 왔다면 이곳으로 직행하는 것이 순서. 주변 음식보다는 회 위주로 나오는 집이 진짜라고 했던가, 그만큼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성업 중이며 주인장의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아 더욱 믿음직스럽다. 경상북도 경주시 백률로 65-2.

이조한정식

경주 한정식계의 터줏대감격인 이조한정식은 그 명성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 바탕에는 정갈한 맛은 기본이고 차분한 서비스와 고풍스런 환경이 뒷받침되어 있다.

직접 담근 된장, 간장 은 물론 매실청과 오미자 효소 등은 이조한정식의 맛을 깊은 곳으로 안내하는 결정적인 재료들. 가자미 찜인 어과채와 석이버섯을 재료로 한 칠전판, 귀한 산양삼과 전복조림 그리고 감소스를 곁들인 생마 등으로 구성된 코스는 보는 즐거움까지 갖춰 식사 시간 내내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한다.

본실은 물론 별실도 네 곳이나 마련되어 있어 상견례 장소로 적합하며 보문관광단지 초입인 산내면에 위치하고 있어 식후 산책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정식의 코스도 다양하고 가격도 과하지 않아 부담이 크지 않은 매우 합리적인 식당. 경상북도 경주시 숲머리길 136

벤자마스

경주 3대 카페라는 타이틀로 이미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은 곳이다. 경주에 몇몇 곳의 브런치 카페들이 있지만 벤자마스의 스케일은 조금 다르다.

건물이 세 동이나 되는, 마치 갤러리와 같은 현대적인 외관은 내부의 세심한 구조와 배치, 간결하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만나 이곳을 예술적인 공간으로 이끌어낸다.

깔끔하고 예쁘게 플레이팅된 브런치들과 이 집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빙수류도 벤자마스만의 특별 아이템.
외국인들이 홀로 와서 식사를 즐길 정도로 본토의 브런치를 제대로 준비한다. 하늘 좋은 날, 벤자마스의 테라스에서 즐기는 브런치. 이 시간은 경주 여행의 좋은 느낌을 분명 한층 끌어올려 줄 것이다. 주차장이 넓어 이 부분 역시 또 하나의 장점. 경상북도 경주시 윗동천길 2.

별채반교동쌈밥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음식들 중에서는 쌈밥이 가장 부담 없는 메뉴이다. 맛은 물론 가격이 좋아 가성비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대릉원 일대는 쌈밥 골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별채반 교동쌈밥은 경주 특산 농수산물로 담아낸 향토음식점으로 경상북도 인증 으뜸음식점과 원산지 표시 우수음식점 그리고 경주시 지정 모범음식점으로 선정돼 더욱 믿음직스럽다.

한상 가득하게 차려져 나오는 쌈밥은 많은 사람들의 베스트 메뉴이며 뭉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유기그릇에 담겨 나오는 육개장과 6부촌 비빔밥 등의 단품도 쌈밥에 뒤지지 않는 메뉴들이다. 항상 바쁜 곳 이므로 식사 시간을 조금 피해가는 것도 방법. 신경주역에도 분점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77 .

<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