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었다. 천년을 이어온 풋풋하고 담백한  신라의 미소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보석이고 눈을 감고 떠올리면 무엇 하나 눈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주의 모습을. 파란 하늘 아래에 펼쳐진, 신라의 너른 마당에서 보낸 며칠간의 경주여행. 그 시간을 고이 눈 속에 담을 수 있다면.

경주 유물 이해의 가장 빠른 길, 경주국립박물관

서악리 유적군을 통해 신라시대의 유적을 보았다면 이제 신라의 유물들을 볼 시간. 이렇게 많은 걸작들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으니 경주국립박물관은 확실히 관광지라기보다는 훌륭하고 감사한 학교와도 같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무려 8만여 점에 이르며 지정문화재는 국보 13점과 보물 30점이다. 시기마다 컬렉션이 다르게 전시되지만 야외 상설 전시품인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을 직접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미 이곳의 기대치는 다른 어느 곳보다 높아진다.

경주 지역과 천마총에서 출토된 국보와 보물들은 물론 흔히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영묘사터에서 발견된 얼굴무늬수막새와 이차돈 순교비 그리고 국보 제38호 고선사지삼층석탑은 경주국립박물관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대표 소장품들. 신라역사관과 신라미술관 그리고 월지관과 옥외전시로 구성된 박물관은 어느 곳 하나 눈길을 소홀히 할 수 없고 마음을 흩뜨릴 수 없는, 신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경주 사람들, 성동시장과 중앙시장

경주역 바로 앞에 위치한 성동시장의 나이는 45년이다. 재래시장의 역사치고는 그리 길지 않지만 경주의 다양한 먹거리가 시장 안에 가득해 여행자들은 성동시장을 경주투어의 필수코스에 포함시키곤 한다.

성수기엔 하루 방문 인원수가 2만 명을 상회한다.

성동시장의 최대 히트상품인 우엉김밥과 한식뷔페는 물론 도넛과 호박죽, 지짐 등 갖가지 가벼운 먹거리들은 사람들을 쉬이 시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소위 마약 음식들. 경주의 소소한 식도락 여행은 이곳에서 시작하고 또 이곳에서 끝을 보아도 좋다. 장날은 매월 2일과 7일. 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281번길 11.

경주 사람들은 중앙시장을 흔히 아랫시장이라고 부른다.

여행객 등 외지인이 많은 성동시장에 비해 현지인들이 주를 이루는 중앙시장은 요즘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경주 청년들이 청년몰을 만들어 시장에 젊음과 아이디어를 불어넣고 있으며 밤 열한 시까지 특별 야시장을 운영해 새롭게 경주의 야간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태국과 필리핀, 파키스탄 등의 글로벌 먹거리뿐만 아니라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기도 한 중앙시장. 재정비를 통해 현대적인 시설로 바뀐 점도 시장의 방문 이유를 높인다. 경상북도 경주시 금성로 295.

눈이 멀다, 동궁과 월지

가끔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 더러 있는데, 해가 지고 난 이후에 해야만 하는 것, 바로 동궁과 월지에 오는 것이 그렇다. 서악리 고분군을 나오며 진정되었던 마음은 밤 시간, 다시 동궁과 월지에서 폭발한다.

얼마 전까지 통칭 안압지로 불렸던 이곳은 동궁과 월지라는 공식 명칭으로 재탄생해 경주 여행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야간 스폿 중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통일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이곳은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됐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귀빈을 맞을 때 연회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잘 정비된 부지로 들어가면 궁과 연못, 빛과 그림자 그리고 물과 밤이 만나 만들어 놓은 하나의 작은 세계가, 마치 달이 나풀거리듯 또는 별이 춤을 추는 듯 수놓아진다.

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이 사라락 흘러 물에 주름을 드리우고, 반영된 빛의 주름을 다시 물이 정성스럽게 받아 눈동자로 전해질 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천 년 전에도 그랬듯이 잠시나마 짧은 신기루에 빠진다. 기꺼이 눈이 먼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곳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한다. 동궁과 월지가 당신에게 전하는 단 한 가지 단어, 그것은 꿈속.

한국미의 결정체, 첨성대

신라 중기 647년 선덕여왕 때 지어진 석조 건축물,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 그리고 국보 제31호. 이것이 9.5미터의 높이와 362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첨성대에 부여된 사실적인 사항이다.

천문현상을 관찰하고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기구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첨성대가 무엇이라고 밝혀진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미’라고 여기는 것들이 있다. 전통 한옥에서 바깥으로 흘러가는 듯한 기와지붕의 유려한 흐름, 여인의 버선 끝에 살포시 솟아나는 버선코 그리고 한복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아한 곡선. 무어라 명명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또 철학적이고 때로는 극적인 곡선의 세계는 분명 한국인들만의 선이다.

첨성대는 이 한국 특유의 곡선의 세계를 모두 지니고 있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모두 이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다. 곡선은 미끄러져 내리듯 땅과 하늘을 이어주고 봉긋하게 돋아나 마치 서로 기대듯 서 있다.

세상에 저런 형태의 곡선을 지닌 건축물이나 하다못해 일상의 도구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사람들은 첨성대를 보고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규모에 적잖이 실망한다. 숨어 있는 한국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첨성대는 밤에 찾아와야 한다.

어둠의 배경에서 조명을 받아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첨성대는 특유의 곡선을 도드라지게 내보인다. 신라의 그리고 첨성대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동궁과 월지에서 느꼈던 감정은 이곳에서 조금도 흩뜨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진다. 마침 둘 사이의 거리는 지척이다. 밤의 산책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경주 엔딩, 보문호

경주 최대의 호수, 덕동호. 경주에 다양한 용수를 대는 덕동호의 물은 경주 서쪽의 형산강으로 흘러들고 포항으로 올라 돌고는 동해로 빠져나간다. 멀리 바다로 나갈 덕동호의 물을 걸러주고 살펴주는 역할을 보문호가 한다. 착한 동생을 하나쯤 두고 싶었는데, 보문호가 바로 그렇다. 이래저래 고맙고 대견한 호수다.

경주 천지에 벚꽃이 만발하지만 봄이면, 보문호 주변은 화사한 라이트 핑크로 뒤덮인다. 물론 그 시기가 지나도 보문호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은 그대로이고 애 초에 호수 자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50만 평 규모의 호수 주변에는 두 시간 거리의 8킬로미터 산책길이 있어 산책 마니아가 있다면 반드시 걸어 보아야 한다. 잘 정비된 길은 자전거로도 가능해 주말 보문호는 많은 인파로 가득 찬다.

그래서 보문호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평일 아침 혹은 밤 시간에 찾아온다. 사람들은 떠나고 보문만 남는 시간. 호수라는 것은 무릇 호젓함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경주에 있는 대부분의 특급 호텔이 보문호를 두고 주위에 퍼져 있으며 동궁원과 경주월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등 다양한 위락 시설들이 몰려 있어 보문호 주변에서만 경주 여행을 다닌다 해도 시간이 꽤 필요하다.

물론 벅차게 이어져 온 경주 여행을 차분하게 마무리해야 하고 호수 주변을 걷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경주 엔딩은 보문호에서 넉넉하게 할 것. 그것이 또 착한 동생 보문이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신평동.

<프리랜서 이곤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경주의 이색풍경

우양미술관

   
 
경주 보문단지에 자리잡은 우양미술관은 1991년에 개관한 사설 미술관으로, 예전의 아트선재미술관에서 2013년 재개관을 통해 이름이 바뀐 곳이다.

현대미술을 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자체 교양아카데미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예술과의 거리를 좁히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주 힐튼 호텔 옆에 위치해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라 호젓하게 미술관을 즐기는 것도 경주를 느끼는 한 방법.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484-7.

솔거미술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내에 있는 솔거미술관은 경주의 첫 공립미술관으로, 건축가 승효상이 건축해 이미 미술관 건물 자체가 충분히 작품이다.

특별기획전으로 수년째 경주 남산에 정착해 ‘신라인’을 자처하며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는, 소산 박대성 화백의 압도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수묵화 수십여 점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어 솔거 미술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를 마련해준다.

혹시 경주에 비가 내려 갑자기 갈 곳을 잃는다면, 솔거미술관은 더없이 고마운 예술 피난처가 될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경감로 614.

월정루

신라의 품격과 경주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곳, 월정루. 제6회 ‘경주시 건축상’ 수상 건축물로 한옥의 기풍을 고스란히 잇고 있는 월정루는 주인장의 품성을 닮은 듯 참 단정하다.

한옥의 멋스러움과 펜션의 현대미를 다 같이 살려낸 이 숙소는 경주 한옥 스테이들 중에서 가장 새롭고 또 그래서 가장 핫하다.

교촌한옥마을과 경주박물관 그리고 동궁과 월지, 첨성대, 경주 오릉 등이 모두 가깝게 있어 최적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경주 숙소로 월정루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유이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재료로 차림한 조식은 유기에 정성스럽게 담아지고, 주인장의 전각체험까지 경험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유익하기까지 하다.

달빛이 머무는 누각, 월정루. 밤이 되면 복원 중인 월정교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달을 벗 삼아 머무르고 싶을 때, 한옥 펜션 월정루는 마침, 바로 그 달 아래에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천원2길 25-10.

경주월드

경주의 젖줄인 보문호를 끼고 있는 보문관광단지 내의 경주월드. 경주뿐 아니라 경상권 전체를 아우르는 특급 놀이시설로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펀(Fun)한 테마파크다.

국내 최초의 인버티드 롤러코스터 파에톤과 메가드롭은 특히 이용객들의 절대적인 환호를 받는 시설들. 토네이도와 그랜드캐년 대탐험으로 이루어진 엑스존을 비롯해 국내 유일의 대형급류타기 등 다양하고 수많은 놀이기구가 마련돼 있어 경주월드로만 하루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물유적과 시장 방문은 잠시 미루어두고 놀이동산으로 떠나는 탐험 계획을 세우는 것도 경주를 여행하는 한 방법.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544.   
<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