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었다. 천년을 이어온 풋풋하고 담백한 신라의 미소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보석이고 눈을 감고 떠올리면 무엇 하나 눈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주의 모습을. 파란 하늘 아래에 펼쳐진, 신라의 너른 마당에서 보낸 며칠간의 경주여행. 그 시간을 고이 눈 속에 담을 수 있다면.
경주 유물 이해의 가장 빠른 길, 경주국립박물관
서악리 유적군을 통해 신라시대의 유적을 보았다면 이제 신라의 유물들을 볼 시간. 이렇게 많은 걸작들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으니 경주국립박물관은 확실히 관광지라기보다는 훌륭하고 감사한 학교와도 같다.
경주역 바로 앞에 위치한 성동시장의 나이는 45년이다. 재래시장의 역사치고는 그리 길지 않지만 경주의 다양한 먹거리가 시장 안에 가득해 여행자들은 성동시장을 경주투어의 필수코스에 포함시키곤 한다.
성수기엔 하루 방문 인원수가 2만 명을 상회한다.
경주 사람들은 중앙시장을 흔히 아랫시장이라고 부른다.
여행객 등 외지인이 많은 성동시장에 비해 현지인들이 주를 이루는 중앙시장은 요즘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태국과 필리핀, 파키스탄 등의 글로벌 먹거리뿐만 아니라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기도 한 중앙시장. 재정비를 통해 현대적인 시설로 바뀐 점도 시장의 방문 이유를 높인다. 경상북도 경주시 금성로 295.
가끔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 더러 있는데, 해가 지고 난 이후에 해야만 하는 것, 바로 동궁과 월지에 오는 것이 그렇다. 서악리 고분군을 나오며 진정되었던 마음은 밤 시간, 다시 동궁과 월지에서 폭발한다.
얼마 전까지 통칭 안압지로 불렸던 이곳은 동궁과 월지라는 공식 명칭으로 재탄생해 경주 여행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야간 스폿 중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잘 정비된 부지로 들어가면 궁과 연못, 빛과 그림자 그리고 물과 밤이 만나 만들어 놓은 하나의 작은 세계가, 마치 달이 나풀거리듯 또는 별이 춤을 추는 듯 수놓아진다.
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이 사라락 흘러 물에 주름을 드리우고, 반영된 빛의 주름을 다시 물이 정성스럽게 받아 눈동자로 전해질 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천 년 전에도 그랬듯이 잠시나마 짧은 신기루에 빠진다. 기꺼이 눈이 먼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곳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한다. 동궁과 월지가 당신에게 전하는 단 한 가지 단어, 그것은 꿈속.
한국미의 결정체, 첨성대
신라 중기 647년 선덕여왕 때 지어진 석조 건축물,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 그리고 국보 제31호. 이것이 9.5미터의 높이와 362개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첨성대에 부여된 사실적인 사항이다.
천문현상을 관찰하고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기구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첨성대가 무엇이라고 밝혀진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미’라고 여기는 것들이 있다. 전통 한옥에서 바깥으로 흘러가는 듯한 기와지붕의 유려한 흐름, 여인의 버선 끝에 살포시 솟아나는 버선코 그리고 한복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아한 곡선. 무어라 명명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또 철학적이고 때로는 극적인 곡선의 세계는 분명 한국인들만의 선이다.
첨성대는 이 한국 특유의 곡선의 세계를 모두 지니고 있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모두 이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다. 곡선은 미끄러져 내리듯 땅과 하늘을 이어주고 봉긋하게 돋아나 마치 서로 기대듯 서 있다.
세상에 저런 형태의 곡선을 지닌 건축물이나 하다못해 일상의 도구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사람들은 첨성대를 보고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규모에 적잖이 실망한다. 숨어 있는 한국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래서 첨성대는 밤에 찾아와야 한다.
어둠의 배경에서 조명을 받아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첨성대는 특유의 곡선을 도드라지게 내보인다. 신라의 그리고 첨성대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동궁과 월지에서 느꼈던 감정은 이곳에서 조금도 흩뜨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진다. 마침 둘 사이의 거리는 지척이다. 밤의 산책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경주 최대의 호수, 덕동호. 경주에 다양한 용수를 대는 덕동호의 물은 경주 서쪽의 형산강으로 흘러들고 포항으로 올라 돌고는 동해로 빠져나간다. 멀리 바다로 나갈 덕동호의 물을 걸러주고 살펴주는 역할을 보문호가 한다. 착한 동생을 하나쯤 두고 싶었는데, 보문호가 바로 그렇다. 이래저래 고맙고 대견한 호수다.
50만 평 규모의 호수 주변에는 두 시간 거리의 8킬로미터 산책길이 있어 산책 마니아가 있다면 반드시 걸어 보아야 한다. 잘 정비된 길은 자전거로도 가능해 주말 보문호는 많은 인파로 가득 찬다.
경주에 있는 대부분의 특급 호텔이 보문호를 두고 주위에 퍼져 있으며 동궁원과 경주월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등 다양한 위락 시설들이 몰려 있어 보문호 주변에서만 경주 여행을 다닌다 해도 시간이 꽤 필요하다.
<프리랜서 이곤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경주의 이색풍경 우양미술관 현대미술을 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자체 교양아카데미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예술과의 거리를 좁히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경주 힐튼 호텔 옆에 위치해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라 호젓하게 미술관을 즐기는 것도 경주를 느끼는 한 방법.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로 484-7. 솔거미술관 월정루 경주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