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갑신년이 밝았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는 우리에게 변화를 맞이할 준비와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신흥대국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은 더 이상 ‘약하고 더딘’나라가 아닌 ‘강하고 빠른’나라로의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새해 지구촌의 주요 관심사에는 빈 라덴 체포 문제와 북한의 체제 변화, 연말 치러질 미국대통령선거에서의 부시 재선 여부 등 굵직한 것들이 있으며 올해에는 공교롭게도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영국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지구촌은 바야흐로 뉴리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막다른 기로에 선 김정일체제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개발을 포기하고 친미로 노선을 변경함으로써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국제 정세 분석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위원장이 이라크 사태와 리비아의 노선 변경에 대응, 체제안정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여 김정일 체제가 좀더 안정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과 이와는 반대로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후세인과 같은 곤경에 처하게 돼 결국 망명길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이들은 김정일 체제 약화의 근거로 리비아에 대한 무기 거래 조사가 정밀하게 이뤄질 경우 북한이 아랍권과 거래한 불법 대량 살상무기의 전모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른 국제적 고립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할 가능성과 지난해 김용순의 교통사고 사망, 고영희의 교통사고와 와병을 둘러싸고 북한 내부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 움직임에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관론과 시간이 흐를수록 미세하지만 북한도 점차 자본주의화될 것이라는 낙관론 등 엇갈린 견해를 내놓고 있다.낙관론자들은 북한의 변화는 정책이나 당의 공식 노선 등 정치적인 면에서는 미약하지만 체제외적인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앞으로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적대관계 등이 해소되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반면 비관론자들은 북한의 변화는 경제난에 따른 최악의 상황을 비켜가기 위한 전술전략적인 것으로, 근본적인 목표가 김정일 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체제 강화에 있는 만큼 외양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북한의 전술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핵과 부시 행정부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주로 지적되는 문제점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동식의 ‘로드맵’(단계적 이행안)을 만들지 않는 등 구체적인 협상안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체포 및 리비아의 WMD 포기 선언 이후 국내에서의 지지도가 급상승한데다 경기도 살아나고 있어, 대선에서 유리한 국면을 맞고 있다.1956년에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중국과 일본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 프로그램 포기전에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북한을 고립시키기보다는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북한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와 부시 행정부의 핵 프로그램 폐기 전 대화불가 원칙은 북한을 더 호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비롯한 2004년 대선을 향해 뛰는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북-미 직접대화 및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통한 핵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미 대통령 선거

올해 미 대선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생포 이후 급상승하면서 외교·안보 부문에서 취약한 딘 후보가 민주당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미국의 경기 회복과 후세인 생포를 계기로 여론이 부시에게 상당히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시의 선거진영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세력이 45대55로 엇갈려 선거 역시 ‘박빙의 승부’가 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딘 후보가 부시 대통령에 맞설 민주당의 ‘대안’인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정책의 ‘문외한’인데다 군경력이 없어 특히 안보 문제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딘 후보가 예비선거의 바람을 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약점을 보완할 러닝 메이트를 골라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는 부시 대통령과 딘 후보가 나설 경우 부시를 찍겠다는 응답은 55%인 반면 딘 후보 지지는 37%에 그치는 등 아직까지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아닌 미·중·일·러

한반도의 주변 4강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는 표면상으로는 동북아의 안정과 전세계의 평화라는 명분 아래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동북아 내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고 일본은 직접적인 위협 요소가 되고 있는 ‘대포동’등 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피랍문제 동시 해결을 추구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지난 90년 초 옛 소련 붕괴 이후 추락한 대 한반도 영향력을 회복하고 향후 러시아와 북한,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 건설을, 미국은 최강국으로서의 자국 이익 유지와 북한의 테러수출국화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의 시간끌기에 맞서 북 정권교체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제고와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 동북아에서의 핵무기 경쟁 차단이라는 3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북한 문제로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중국입장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의 한반도 정세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 강화와 자국의 역할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국제 정세 전문가들 중에는 중국이 어쩌면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미국과 함께 전역미사일방어(TMD) 시스템 구축 및 자위대 해외파병 등 군사대국으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주도적 지위와 한반도에서의 역할을 유지하기위해서라도 6자회담에 적극적인 편이다.

역전되고 있는 한·미, 한·중 관계

한국은 미국에 북한과 대화를 통한 위기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북한이 핵모험을 포기치 않으면 무력 응징을 해도 이를 묵인하거나 지원하길 바라는 입장이다.반면 국제적 위상이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 중국은 북한 뿐아니라 한국과의 관계강화에 공을 들임으로써 한반도내 영향력 확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층 고양된 자주의식에 힘입어 과거의 한미관계를 축으로 한 양자외교를 다자외교로 확대·발전시켜 가고 있다.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간 북핵에 대한 인식과 해법 차이는 전통적 한미관계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북한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한 반면 노 대통령은 협상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국제정세 분석가들 중 보수적 시각이 강한 쪽에서는 올해 치러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 노무현 정부가 미 국민과 의회, 언론들이 한국정부와 국민들에 대해 좀더 우호적이 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국익에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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