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한국의 최순실 사태와 미국의 정권교체 정국 속 계획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매체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집회소식을 상세히 보도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남한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11월에만 총 4차례 5곳의 군부대를 방문하는 등 잇따라 군사 행보에 나서고 있다. 과격한 선전-선동과 군사적 도발 징후는 계속 강화하고 있지만 지난 10월15일 제7차 무수단미사일 추정 발사체 실패 이후 추가적인 군사도발은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최순실 사태, 미국의 정권교체 정국을 지켜보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김정은의 속셈은 무엇일까.

지난 주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도심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대규모 집회 소식을 보도했던 북한 매체가 연일 관련 소식을 전하며 비난에 나섰다.

15일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오늘은 ‘응당한 귀결,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글을 통해 “지금 남조선에서는 ‘박근혜, 최순실 추문사건’을 단죄 규탄하며 청와대악녀의 퇴진을 요구하는 각계층의 투쟁이 날을 따라 더욱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반 박근혜 투쟁기운은 야당계, 노동계, 학계, 종교계는 물론 보수세력 내부에까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며 “그야말로 온 남녘땅이 불도가니마냥 부글부글 끓어 번지고 있다”는 글과 함께 지난 주말 집회 보도 사진을 실었다.

이처럼 북한 매체가 ‘촛불집회’ 관련 소식을 상세히 보도하며 비난한 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 책임론’까지 거론하면서 연일 최순실 사태를 소재로 대남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로 민심의 환멸과 배척을 받는 폭풍 앞의 촛불 신세가 되자 미국이 초조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마이클 로저스 미국 국가안보국(NSA) 국장겸 사이버사령관의 방한을 거론하면서 “붕괴 위기에 처한 ‘친미정권’을 구원하여 식민지 통치 체제를 부지해보려는 상전의 현지 행각”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북한의 인터넷 선전 매체 ‘메아리’는 ‘특대형 추문사건과 미국’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무당에게 휘둘리는 무지무능한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은 데는 미국의 책임도 있다는 여론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생행보와 전방시찰 이어가

한국의 최순실 사태와 미국의 정권교체 정국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민생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는 데 애쓰고 있다.

김정은은 10월20일과 10월29일에 이어 지난 3일에도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담요나 부엌 가재도구를 보낸 바 있다.

조선중앙TV는 “피해 지역 인민들은 새 살림집들의 완공을 앞둔 때에 꿈만 같은 사랑을 거듭 베풀어 주시는 친 어버이의 육친적 사랑에 뜨거운 격정을 금치 못했다”며 김정은을 찬양했다.

이처럼 김정은은 보건산소공장, 고산과수종합농장, 대동강주사기공장, 룡악산샘물공장, 류경안과종합병원, 룡악산비누공장 방문 등 ‘민생 코스프레’에 치중하면서 실익을 챙기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진짜 모습은 군대 시찰에서 드러난다.

지난 1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연평도 인근 서해 최전방에 있는 갈리도전초기지와 장재도방어대를 잇달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갈리도는 2010년 11월 북한군이 포격을 가한 연평도에서 북쪽으로 불과 4㎞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이며, 장재도는 연평도에서 북동쪽으로 6.5㎞ 지점에 위치해 있다.

보도된 사진에는 김정은이 직접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하거나 감시소에서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펴보는 모습이 담겼다. 군부대를 둘러본 김정은은 이후 박정천 포병국장으로부터 갈리도 전초기지를 포함한 서남전선 포병부대들의 ‘연평도 타격임무 분담내용’을 보고받고, 새로 작성된 연평도 포격계획을 승인했다.

김정은은 지난 9월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의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현지 지도한 이후 2개월 만인 이달 초 군 행보를 재개했다.

지난 4일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작전부대 시찰을 시작으로, 9일 제1344군부대와 11일 서부전선 마합도방어대를 연이어 방문했다. 13일 갈리도 전초기지와 장재도방어대 시찰까지 더하면 11월에만 총 4차례 5곳의 군부대를 다녀간 셈이다.

북한은 이번 군부대 시찰에서 김정은이 군인의 가족들과 자녀들까지 돌보는 장면을 이례적으로 연출해 인민친화적인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매체는 “군인들과 군인가족들의 열광의 환호에 따뜻이 손저어주시며 어린이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던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정항명 어린이를 알아보시고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된 애기를 안아주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몰라보게 컸다’고 살뜰히 두 볼을 어루만져 주시였으며, 방어대장의 딸애가 그린 그림들도 한 장, 한 장 환한 미소 속에 보아주시였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난 4일 시찰한 제525군부대는 청와대와 한국 정부·군 요직자들을 제거한다는 목표 아래 김정은이 직접 조직한 특수작전 대대로 주목받았다.

김정은은 “전투원들을 잘 먹여야 훈련강도를 높일 수 있다”며 달걀과 물고기를 비롯한 물자들을 급식 규정량대로 공급해 줄 것 등을 지시했다.

정부 “만반의 대비태세 유지”

김정은의 군사행보는 미국 대선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순실 파문에 따른 남한 내 혼란과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틈타 대남 위협을 강화하려는 노림수로 보고 있다.

또 오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6주기를 앞두고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의도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우리 군 당국은 “최근 김정은이 백령도에 근접한 마합도와 연평도에서 가장 가까운 갈도, 장재도 등 서북도서 전초기지를 이례적으로 연속 방문했다”며 “과거에도 김정은 등 적 수뇌부가 군부대를 방문한 이후 대남 도발을 자행한 전례에 유의해 군은 감시 및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연평도 화력타격계획 전투문건 승인을 운운하고 있다”면서 “만약 적이 도발한다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1일 김정은의 군 행보에 대해 “우선 북한이 대내적으로 동계훈련 철을 맞아 군 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사기진작을 해야 되는 수요가 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정권교체 등 정세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에 맞춰 북한에 대한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의미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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