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 대통령 ‘레드 카펫’ 깔아준 野 3당?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야 3당이 일제히 ‘탄핵 정국’으로 방향키를 잡았다. 여소야대 정국 속 야권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지만 정작 야권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담당할 국무총리 임명을 두고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당초 가능했던 권한대행의 선택지는 ▲황교안 국무총리 체제 유지 ▲여야 합의로 새로운 총리 추천 ▲김병준 총리 내정자 수용 세 가지였다. 그러나 야권의 이합집산은 본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지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했다. 국민들은 총리 인선을 둘러싼 정쟁으로 지금의 정국 혼란이 가중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아가 야권의 정치력 빈곤으로 인해 ‘국정 파행 사태’가 수습되지 않는다는 비난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야권이 ‘국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난국을 해쳐나갈 적임자는 현직 총리’라는 주장에 맞설 명분이 사라진 모습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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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3당이 ‘박 대통령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탄핵 과정은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탄핵을 대비해 새 국무총리를 뽑는 일부터 미로에 빠졌다. 야권에선 ‘박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그대로 두는 것은 눈엣가시다. 후임 총리 문제가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채 자칫 ‘황교안 권한대행체제’로 탄핵정국을 맞게 된다면 야당이 구상했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이 자명하다. 

여기에 청와대는 탄핵 절차를 밟으라며 장기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빨리 야권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 총리를 내세워야 했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야권이 총리 임명 미로 속에서 출구를 잃은 모습이다.

야권 헛발질이 부른 ‘총리 임명 딜레마’

설사 야권이 뒤늦게 총리 임명으로 방향키를 튼다 해도 합의 가능성은 낮다. 야권 지도부와 대선주자들 간 입장 조율이 이뤄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선호도는 명확히 다르다.

또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손학규 전 고문은 사실상 대선주자로 꼽힌다. 현재까지 총리 출신이 대통령이 된 적은 없다. 이들이 총리 직을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다. 더욱이 김 전 대표는 민주당을 이끌던 시기 친노·친문 의원들과 각을 세웠었다. 민주당의 반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손 전 대표는 국민의당으로부터 수차례 러브콜을 받아왔기에 민주당 내에서도 비토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김 전 대표와 손 전 고문 모두 ‘개헌파’다. 자칫 개헌으로 정치권이 ‘새 판 짜기’에 돌입하는 것을 경계하는 문 전 대표가 반대하고 나설 공산이 크다. 결국 야권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게 결정적 ‘자충수’가 된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야권이 합의한다 해도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총리 인선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청와대 입장에선 어차피 탄핵으로 심판받게 된 상황에서 굳이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야권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거듭하자 정치권에는 야권이 여태껏 보여준 이합집산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 총리 추천에 미적거리는 민주당의 속 보이는 모습이 개탄스럽다”며 “문 전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주류의 속내는 현재의 촛불 정국을 가능하면 오래 끌어가고 싶은 것이다. 이미 버티기를 공언한 청와대에 대고 의미 없는 ‘선 퇴진’만 줄곧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또 “탄핵 대열에도 어쩔 수 없이 막차로 끌려 들어오다시피 한 게 민주당 아닌가”라며 “국정공백은 안중에 없고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적 계산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先 총리 後 탄핵’ 접은 野, 웃고 있는 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권은 국회 추천 총리 문제를 한 수 접고 탄핵 일방통행의 길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자칫 야 3당이 총리 임명 문제를 두고 계속 치고받는 사이 대통령 임기가 얼추 채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저와 우리 당은 ‘선 총리 후 탄핵’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은 “‘선 총리-후 탄핵’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것이 황교안 총리를 인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탄핵 절차에 돌입한 뒤에도 야권은 ‘총리 교체’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청와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야권이 총리 지명을 위해 대통령과의 대화를 재개, 대통령의 국정 복귀 활로를 터줄 리도 없다. 야권이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자 야권 일각에선 ‘황교안 체제’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을 강구하자는 기류가 퍼지기 시작했다. 국무총리 추천 논의 과정에서 야권이 불필요하게 분열하기보다는 권한대행으로서의 국무총리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 총리 임명에 얽매이지 말고 탄핵부터 추진하자는 것.

“탄핵과 국회추천 총리 병행 추진은 모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을 대신할 만한 권한을 가진 총리를 추천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며 “직무대행을 하게 된 총리는 말 그대로 권한을 대행할 뿐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없다. 고건 총리도 그랬다. 야당이 협의해서 총리를 추천하는 일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므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 하야, 탄핵, 국회 추천 총리 중 하나를 택일해야지 병행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탄핵은 대통령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 대통령으로부터 책임총리를 임명받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

결국 황교안 총리가 고건 전 총리와 정홍원 전 총리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정 전 총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국민 사과를 한 뒤 물러나려 했지만 후임 지명자들이 모두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도중하차하는 바람에 2015년 2월까지 총리 직을 유임했다.

황교안 총리 역시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지명한 2016년 11월 2일 곧바로 이임식을 열고 사의를 표명하겠다고 하였으나 70분 뒤 입장을 번복, 현재까지 총리 직을 수행 중이다.

고건 전 총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2개월간 대통령 직 권한대행을 수행했었고 황 총리 역시 이대로라면 박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부터 대통령 권한 대행 직을 수행하게 된다.

대통령 권한 대행의 직무 범위 어디까지?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면 당장 관전 포인트는 헌법재판소장 임명 여부이다. 박한철 헌재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31일까지이다. 만약 다음 달 초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면 시기적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 나아가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역시 내년 3월까지다. 탄핵심판이 길어진다면 황 총리가 이 재판관의 후임도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황 총리가 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할을 '현상 유지'로 묶어둔다면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신할 때에는 국정 마비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행사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임명직 공무원인 국무총리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동일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대통령 권한 대행은 임시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황 총리는 박 대통령과 이념적 성향을 같이 하고 있는 데다 황 총리가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을 넘어선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정치권에서 황 총리가 권한대행 범위 역시 고 전 총리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렇게 되면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남은 7명이 탄핵심판에 대한 심리를 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하려면 이 가운데 6명이 찬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이 탄핵심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한편 총리 내정과 별도로 민주당은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내지 못할 시 그 책임과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민주당은 정치력으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파행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촛불정치’에 매달려 국정 혼란을 지속시키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기에 문 전 대표는 한 술 더 떠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이용하거나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모습을 보였다. 문 전 대표는 차기 대통령에 바짝 다가선 정치인이다. 이 같은 문 전 대표의 행보가 내년 대선이 다가왔을 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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