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로 GDP의 3.6% 지출하는 미국이 나토 유지비 70% 감당
나토 사무총장도 최근 회원국들 상대로 “2% 목표 지켜라” 당부

유럽 전역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미국 제 45대 대통령에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떠오르자 처음에는 실망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경각심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꺾고 최종 승리하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17년 1월 트럼프가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자리를 잡도록 결정된 상황에서 이제 유럽 지도자들은 최소 4년간,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 운이 없으면 8년간 트럼프가 이끄는 차기 미국 정부와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이것은 특히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나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같은 지도자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올랑드는 지난 8월 2일 “트럼프는 너무 지나쳐 구역질이 나게 한다. 만약 트럼프가 이긴다면, 권위주의의 유혹이 부상(浮上)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민주주의는 주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렌치 총리는 지난 1월 22일 주요국 정상으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으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또 이탈리아 민주당 당수로서 미국의 위대한 민주주의의 구석구석을 위해 힐러리 클린턴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물론 유럽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트럼프가 일단 취임해 어떤 정책을 추구하느냐에 달렸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가리켜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했고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주권을 정식으로 인정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으며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가결을 “좋은 일”이라고 했고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세계화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을 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일본과 한국의 안보 관련 기존 발언을 뒤집었다. 이로 미루어 앞으로 유럽에 관한 그의 구상도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유럽 지도자들은 지금 힘들고 괴로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는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경멸하며 매도하는 남자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과의 실용적인 관계는 유럽에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향후 협력이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공유된 전념에 기초할 것임을 명확히 할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는 ▲민주주의, 자유, 법치에 대한 존중 ▲출신, 피부색, 신념, 성별, 성적 취향,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근본적 원칙들이 대서양 양안(兩岸)을 하나로 묶어 왔다. 그런데 이런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합의에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장애물로 나토가 부각되리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만약 나토가 마땅히 내야 할 돈을 내지 않는다면 위험에 빠진 나토 동맹을 미국이 도우러 가는 것을 재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최근 이 발언을 많이 뒤집었다). 그런데 사실 나토는 마땅히 내야 할 돈을 내지 않고 있다. 나토는 회원 각국이 저마다 GDP(국내총생산)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도록 목표를 정해 놓았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캐나다 같은 부자 나라들도 이 목표를 충족하지 않는 20여 회원국에 속한다. 심지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트비아와 그 이웃나라 리투아니아조차 올해 이 목표치에 미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와 접한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도 2%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 가운데 방위비로 2% 이상 지출하는 나라는 그리스, 영국, 에스토니아, 폴란드 네 나라뿐이다. 미국은 방위비로 3.6%를 지출한다. 트럼프는 올해 초 나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이라는 위협에 맞서기 위해 창설됐다면서 나토를 “한물갔다”며 미국에 나쁜 거래라고 말해 경종을 울렸다. 그는 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미국이 주도해 온 나토처럼 수십년 묵은 안보 동반자 관계에서 미국은 얻는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만약 러시아가 공격해 올 경우 유럽 국가들을 도우러 갈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그 국가들이 ‘우리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70년 전통의 나토 역시 나토 분담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유럽 지역 회원국들을 나무랐다. 나토 비용 가운데 70%를 미국이 떠안는 실정이다. 나토 28개 회원국 가운데 슬로베니아, 스페인,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방위비로 1% 미만을 지출한다. 포르투갈,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체코공화국, 헝가리, 캐나다는 1~1.4%를 지출한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터키, 노르웨이,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라트비아는 1.5~1.0%를 지출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 대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모든 나토 동맹국은 서로 방위하기로 엄숙히 약속했으며 이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다. 안보 보장이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1월 13일 나토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식의 엄중한 경고를 발했다. 스톨텐베르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나토에 대한 기본 시각이 유럽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영국 일간지 옵서버에 실은 기고문에서 나토의 전력(戰力)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한 세대 만에 우리의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에 직면했다”며 “지금은 유럽과 미국 간의 동반자 관계에 의문을 가질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토의 자기 방어 조항인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가 발동된 유일한 때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테러 공격이 발생했을 때였음을 강조했다. 그 공격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인 아프간 내 작전에 1000명 이상의 유럽 병사들이 복무하고 있는 것은 유럽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는 나토가 ‘유럽의 통합’을 가능케 했고 냉전을 종식시켰다면서 나토는 계속해서 테러 퇴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근년 들어 더 공격적인 러시아에 대응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동시에 유럽 지도자들이 나토에 대한 재정적 기여를 반드시 늘려야 한다는 것을 시인했다. 이는 트럼프가 선거 기간 중 했던 것과 꼭 같은 요구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