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의 ‘분향소’모습. 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향했다.한국 최고의 선승으로 꼽히고 있는 서옹스님이 지난 13일 ‘좌탈입망’했다.불교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전남 장성군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지난 13일 밤 앉은 채로 열반했다. 한국 근대 불교사에서 스승(만암 스님)과 제자가 좌탈입망(앉아서 열반하는 것)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 이에 따라 ‘스님들의 입적과 임종’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육신을 헌옷처럼 벗어 던진 선사들의 얘기를 들여다봤다.지난 13일, 불교계의 큰 별이 졌다. 성철스님 이후 최고의 선사로 꼽혔던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입적했다. 서옹스님은 지난 74년부터 78년까지 조계종 5대 종정을 역임했고 지난 96년부터 백양사 방장으로 후학들의 수련을 돕는 등 당대 최고의 선승으로 한국 불교발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마지막 ‘입적’과정에서도 스님은 최고의 선사다운 면모를 보였다.

스님은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백양사 설선당에서 아침 죽 공양을 하고 오후에 다른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며 후학들의 정진을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은 저녁에 백양사 주지 두백 스님 등에게 “이제 가야겠다”고 말한 뒤 좌탈입망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92세의 노스님이 앉은 자세 그대로 열반하기는 드문 일이며, 좌탈입망한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이번이 처음. 이에 따라 세인들 사이에서는 ‘선사들의 입적과 열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불교에서는 ‘죽음을 육체의 소멸로만 생각하지 않고 법신의 회귀’라고 믿는다. 이에 따라 불교의 고승들은 임종에 이르러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고, 마치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죽음에 초연하다. 여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고승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은 앉아서 입적하기도 했고, 또 어떤 선사들은 ‘나고 죽음이 없는 세계로 가니 참으로 즐겁다’며 깨침의 노래까지 불렀다.

이와 함께 어떤 고승은 뜰앞을 태연히 거닐다가 “오늘 가야겠다”고 독백을 한 후 걸어가다가 입적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입적한 선사들도 있었다.이와 관련, 지난 2000년 선사들의 입적 과정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한 ‘적멸의 즐거움’이란 책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승려문인인 정휴 스님이 쓴 이 책은 생사의 자유를 누린 선사들의 ‘입적’과정을 정리했다.이 책에 나와 있는 선사들의 ‘입적’과정을 살펴보면, 부처님의 제자 ‘승가란제’의 입적 일화가 눈에 띈다.그가 늙어서 몸이 쇠약해지고 병이 들자 제자들이 약을 들고 왔다. 하지만 그는 살만큼 살았다고 제자를 설득하며 끝내 약을 거절했다. 그리고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병으로 인해 일어난 고통으로 화두를 삼으라”는 말을 했다.

이어 병상에서 일어나 “오늘 떠나야겠다”며 뜰앞을 거닐었다. 마치 산책하는 사람처럼 여유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임종을 맞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뜰을 거닐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뭇가지를 잡고 그대로 입적해 버렸다.이 책에서는 중국 고승들의 ‘입적’과정도 상세히 소개했다. 중국의 도신선사는 죽을 때까지 눕는 일을 포기해버렸다. 정진하기 위해 한번 앉으면 엉덩이에 살이 빠져나가고 고름이 고여도 눕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장좌불와는 60여년 동안 계속됐다고 전해진다. 일생을 눕지 않았으니 그는 임종 때도 앉아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의 스승인 승찬선사 역시 ‘입적’과정이 신비롭다. 승찬선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안에서 쉬다가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병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육신을 버릴 때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임종했다. 제자들은 뜰앞을 지나다가 승찬선사의 모습을 보고, 임종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오랫동안 명상에 잠겨 있다고 생각했다. 나무를 잡고 입적한 승찬선사는 바람이 지나가도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제자들은 승찬선사가 입적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깨우침을 통해, ‘입적과정’에서 해학적 분위기를 연출한 고승도 있다. 중국의 약산유엄선사는 어느날 법당 앞에서 큰 소리를 쳤다. “법당이 쓰러진다”고 소리를 치자 일반 대중들은 선사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진짜로 법당이 쓰러지는 줄 알고 물건들을 들고 법당의 기둥을 받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 이에 약산유엄선사는 “그대들은 나의 깊은 뜻을 모르는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해 버렸다. 이처럼 선사들이 자기 죽음 앞에서도 해학적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정휴 스님은 “세속적 죽음 앞에서 대중들은 끈적끈적한 절망감을 갖게 마련이지만 선사들의 입적은 오히려 희망적이고 여유 때문에 슬픔이 반감된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화장, 입적한 스님도 있다. 경통선사는 스스로 세상 인연과 다했다고 판단한 후 화장을 할 다비목을 준비한 것이다.경통선사는 다비목을 준비한 후 신도집을 찾아가 “며칠 다녀오겠다”는 하직 인사를 했다. 그러나 신도들은 스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경통선사는 스스로 쌓아놓은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불을 붙였다. 그는 불길 속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입적해 버렸다. 자화장을 한 것이다.이외에도 중국의 광오 선사는 혼자 법당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합장한 채 서서 입적하기도 했다.정휴 스님은 책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절망에 빠져드는 것은 죽음이 삶의 종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만약 죽음이 삶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란 깨침과 정신적 훈련이 있다면 ‘해탈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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