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의 말이 권위적이지 않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 상징‘쉬운말’과 ‘자세한 말’은 달라 …자질구레한 것까지 거론 말아야노대통령의 화법은 서민의 일상과 정서에 쉽게 접근하는 측면이 있지만 자질구레한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그렇지만 `노무현 화법`의 가장 큰 특징인 쉬운 말과 평범한 말의 사용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으로서 `언어적인 측면에서의 민주화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일반 서민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쓰고 있는 일상적인 말을 대통령이 스스럼없이(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기성문화에 대한 도전이자 반격이다. 평범한 말, 쉬운 말, 자연스러운 말, 꾸미지 않은 말을 적극 사용함으로써 서민의 일상과 정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일부러 어려운 말, 고상한 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신문의 날 기념식장에서 행한 말들이 이에 속한다.“오늘 여기 오기가 서먹했다. 계속 서먹하면 안되겠기에 오게 됐다.”

또 KBS 사장 인선 파문과 관련한 발언도 쉽고 솔직하다.“선거때 도와주고 존경하는 언론인이어서 역성을 들었다가 그분도 망신당하고 나도 망신당했다.”, “이제는 절대 언론 근방에 가서 얼씬거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일반적으로 쉬운 말과 평범한 말을 사용하면 솔직해진다. 어려운 말과 추상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은 체면과 명분에만 사로잡혀 자신의 감정을 꾸미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을 고상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 품위 있는 말과 품위 없는 말, 고급스런 말과 저급한 말, 교양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로 구분하는 것은 언어의 귀족주의적 발상이다. 따라서‘언어의 민주화’‘언어의 무차별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노무현 화법`은 민중언어생활의 귀감이 될 수 있다. 언어의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무현 화법`은 민주적이고 민중적이고 시대선도적인 면이 크다. 언어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대통령의 말이 추상적이고 권위적이지 않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것은 결코 무시해도 좋을 작은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일부 언론들과 식자층의 비판(“무식해서 그렇다” “가방 끈이 짧아서 그렇다” “말을 함부로 한다” 등)은 권위주의시대의 귀족주의적 발상에 근거한 것이므로 주눅들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의 권위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대통령의 화법은 정치문화에서의 권위주의 탈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또한 토속적인 구어체를 사용하면 문어체를 사용하는 것보다 보다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다. 존 스타인벡(미국)의 소설 <분노의 포도>와 스탕달(프랑스)의 소설 <적과 흑>은 서민들의 언어생활과 귀족들(귀족으로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평민들 포함)의 언어생활을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전자는 1920년대 말 세계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금융자본에 의해 농토를 빼앗긴 미국 오클라호마주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부 캘리포니아지역으로 가는 과정을 그렸다. 앞뒤를 재거나 꾸미지 않는 소박하고 솔직한 서민들의 언어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반면 후자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젊은이가 귀족들을 상대로 말의 효과를 생각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쓰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언어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두 소설은 진실과 진심을 담은 대화로 살아가는 사람들(농민)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가식적인 대화로 생활하는 사람들(귀족)이 각각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탁월한 묘사력을 보여주고 있다. 농민들은 사용하는 말들의 품격과 대화의 수준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순수성과 열정 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귀족들은 고상하고 점잖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품격 있는 대화를 나누지만 계산적이고 노림수가 깔린 가식적인 대화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이기주의적 욕심이 가득 차있다. 비속어나 막말 사용도 언어철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기피하고 삼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말(단어)에는 차별이 없으며 급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말을 고급어와 저급어로 나누는 것은 권위주의와 귀족주의의 산물이다. 계급사회에서 서민들은 고상한 말, 품위 있는 말, 교양 있는 말, 예의바른 말을 사용하도록 끊임없이 교육받고 훈련받고 있다. 지배계층은 민중의 자연스러운 언어생활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면(그들의 관점에서 `무식하게` 하면) 상층부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다만 비속어라고 알려진 단어를 사용할 때는 안전장치를 해야 한다. 이를테면‘개판’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을 때는 그 말뜻을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비속어의 냄새가 상당히 희석되는 효과가 있다.“개판이라는 말이 있지요.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거나 자기 이익만을 강조하다 보면 질서가 엉망이 되어 가닥을 잡을 수가 없게 되는 상황 말입니다.” 사실 비속어를 사용해야 뜻이 강조되고 말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전두환정권 때 김영삼 전대통령이 우리 속담을 재인용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에서 비속어인‘모가지’가‘목’보다 훨씬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사성어식 화두와 속담식 화두 사용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일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고사성어식 신년화두는 고답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다만 식자층에게는 씹어보는 맛이 있어 나름대로 화젯거리가 된다. 여기에는 별 의미가 없는데도 자꾸 살을 갖다 붙이는 언론의 가세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말장난 같이 느껴진다. 또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논란 아닌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글줄이나 익혔다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데리고 노는(우롱하는) 것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에는 한문으로 이루어진 고사성어보다 서민들의 정서와 입맛에 맞고 삶의 지혜가 배인 속담식 화두를 생산해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속담식 경구를 가끔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노대통령이 7월3일 대전청사 공무원들과의 오찬에서 행한 “계란은 껍질을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되고 자기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된다”는 말은 수작(秀作).

중앙일보는 이 발언을 “남이 깨면 프라이, 스스로 깨면 병아리”라는 멋진 제목으로 내보냈다. 문장식 경구도 활용해야 한다. 이같은 화법은 특정 사안에 대해 정리된 시각을 전달해주는 효과가 있다.“문제를 처리할 때는 반드시 토론을 열심히 하라. 토론의 목적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7월2일 청와대 비서실 전체 직원 조회에서) “언론과 권력이 누가 더 세냐고 힘겨루기 하면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견제와 균형이 가장 옳은 것이며 합리적·정상적인 관계로 공존해야 한다.”(4월7일 신문의 날 기념 리셉션에서)말이 쉽다는 것과 어렵다는 것과 자세하다는 것의 차이(쉬운 말과 어려운 말과 자세한 말의 차이)도 확인해두어야 한다.

‘쉬운 말’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설득력이 있다 ▲진실성을 담보한다 ▲솔직함을 보여준다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나아가 연대감을 만들어낸다) ▲민주적이다(탈권위적이다)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준다반대로‘어려운 말’은 다음과 같은 특색을 지닌다. ▲권위적이다 ▲억압적이다 ▲가식적이다 ▲도식적이다 ▲호도성 ▲은폐성 ▲도피성 ▲다의성(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중의적인 말은 어려운 말이다)그리고 ‘자세한 말’은 ▲말이 길어진다 ▲중언부언하게 된다 ▲핵심이나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 ▲서로 어긋나는 말(앞뒤가 맞지 않은 말)이 튀어나올 수 있다 ▲잘못됐을 경우 주워담기(번복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등의 특징을 나타낸다. 따라서‘쉬운 말’과‘자세한 말’은 다르다.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하고 설명한다고 해서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이 너무 자세하면 자칫 잘못하면 서로 모순되는(어긋나는) 말이 튀어나올 수 있다. 또 감정적인 말, 속에 있는 말을 많이 하면 공식적인 입장(정책, 성명 등)과 다른 말이 섞여 나올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이나 속마음은 원래 복잡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통령이 정책결정과정상의 어려움이나 고민 등을 기자들이나 국민에게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대통령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다가 이것을 선택했는데 사실 저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힘들게 이것을 선택했지만 저것을 선택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는 식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안된다. 이런 식의 화법은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우유부단함을 보여주는 것밖에 안된다. 대통령이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거론할 필요는 없다. 원칙이나 테두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고 세부적인 사항은 장관이나 참모들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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