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愛憎의 두 얼굴


최근 반세기만에 남자들의 아랫도리를 옥죄고 있든 거추장스런 족쇄 하나가 드디어 풀어졌다. ‘혼인빙자 간음죄’가 헌재에서 위헌판정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애써 표정을 감추고 있지만 그들의 안도하는 한숨 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나날을 불안에 떨며 숨죽여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이던가.

혹여나 새로운 연인 앞에, 행복하고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는 평화로운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책임져!’라 소리치며 멱살 잡히는 악몽에 시달리던 인간들은 또 얼마였던가. 남·녀 간의 사랑을 법으로 다스리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법이 아무리 인간 통제수단이라지만 사람들 이부자리 속 은밀한 성행위까지 통제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나마 언제, 어떻게 섹스를 하고 전위와 후위를 포함해 교접행위를 감시받고 체위까지 일일이 당국에 허가받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다.

하지만, 그 법보다 더 웃기는 건 그 법에 의지하려는 사람들(대부분 여자)이다. ‘달라고 해서 줬으니 책임지게 해 달라’는 거다. 마음을 주건 몸을 주건, 주는 건 당연 자기의향이다. 누가 주라 해서 준 게 아니고, 줄 때 법에 물어보고 준 것도 아니다. 책임은 약자도 여자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마이클 클라이튼의 베스트셀러 영화화

마이클 더글러스와 데미 무어가 출연했던 베리 레빈슨 감독의 1994년 작〈폭로〉는 그 반대의 경우다.

당시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마이클 클라이튼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남녀 간의 성적 음모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영화다.

특히 남녀가 서로 역전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성희롱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시애틀 디지컴사의 컴퓨터 기술 개발팀에 근무하는 탐 샌더스(마이클 더글러스 분)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매사에 의욕이 넘치고 일에 대한 집념이 강한 회사 내 유능한 생산부서장이다.

기술 개발팀이 타 회사로 인수합병이 됨과 동시에 새로이 임명되는 부사장에 자신이 아닌 자신의 옛 애인이었던 메리더스 존슨(데미 무어 분)이 임명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회사의 설립자 밥 가빈(도날드 서덜랜드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메리더스는 야심만만한 여성으로 10년 전 샌더스와 사랑을 나눴던 사이다.

몇 년 만에 재회를 한 두 사람은 신 개발품에 문제가 있으니 의논해 보자는 메리더스의 제안에 늦은밤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일보다 사적인 감정으로 접근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뛰쳐나온 샌더스에게 다음 날 메리더스는 샌더스가 자기를 성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워 회사에서 쫓아내려 한다.

이에 격분한 샌더스도 상사인 메리더스를 성희롱으로 고소하게 되고, 거대 회사 조직과 샌더스는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된다.

사건을 다루는 중재재판에서 샌더스의 변호사 알바레즈는 그 만남의 주도권이 메리더스에 있고 그녀의 저변엔 샌더스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걸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만,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난 남자가 여자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덩치 큰 아이가 작고 힘없는 왜소한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다면 납득하지 못하듯 건장한 남자가 연약한 여자에게 강간을 당했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 하는 건 당연하다. 법의 심판도 상식과 통념의 잣대가 증거능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메리더스는 이를 이용해 상황을 호도하며 샌더스를 궁지로 몰아가고, 샌더스 또한 유능한 변호사(유사 사건에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를 고용해 누명을 벗기 위해 전력을 다 한다.

결국 심판은 억울한 누명을 쓴 샌더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화는 가슴 답답한 긴 여운을 남긴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지만 악녀의 모습을 한 메리더스에 연민이 가시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 샌더스의 승리가 개운치가 않다. 그들은 연인관계였다. 지난날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더 할 말이 있을 텐데, 진짜 하지 못한 말이 있을 텐데 말이다. 사랑을 할 때엔 누구나 그 사랑이 세상 끝까지 걸 것 같고, 끝이란 단어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다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가는 샌더스의 뒷모습을 봤을 때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뜻밖에 다시 만났을 때도 그녀는 할 말이 있었을 거다. 아니 하지 못한 말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의 상처는 애증으로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자나며 애증의 모습으로 진화한다. 애증은 사랑이 아니다. 할 말을 못하고 못 다한 할 말은 다른 형태로 표현이 되고, 그 다른 표현은 의도와 상반되는 결과를 낳는다.

법은 억울함을 해결도 하지만 때론 또 다른 억울함을 재생산하는 모순과 괴리도 함께 한다. 어디까지나 죄의 심판은 겉으로 들어난 현상의 증거로만 판단하게 된다.

본질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차라리 떠나는 샌더스를 잡고 매달리며 애원을 하고, 다시 만났을 때 그를 잡고 울부짖으며 사랑을 고백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남녀의 사랑은 법의 잣대로 가늠하고 판단할 대상은 아니다. 사람의 감정이 오늘과 내일이 같을 순 없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고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는다는 굳은 서약도, 딸린 아이가 몇이고 나이가 일백이라도 갈라선다.


남녀의 사랑은 법적 잣대가 아닌 당자사 책임

마음이 떠나면 다 떠난 거고 잡는다고 더 이상 원상회복은 없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건 지금 현재의 내 마음 뿐이다. 내 마음도 내가 통제를 못하는데 자신도 인간인 검사 따위가 뭔 수로 나를 지킨단 말인가!

팬티를 벗는 것도 벗으라고 시키는 것도 나다. 벗으라면 벗고, 달라고 한다고 다 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벗고 싶을 때 벗고, 내가 주고 싶을 때 줘라. 그리고 책임은 내가 저라!

또, 이제 제 세상 만났다고 쾌재 하는 너, 좋아하지 마라. 함부로 벗기다가는 영영 구경도 못하는 불신세상이 곧 올지도 모른다.


#문신구 그는 7~`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90년대 연극〈미란다〉를 연출했다. 당시〈미란다〉는 마광수 교수의〈즐거운 사라〉와 함께 외설시비가 붙어 법정에 섰다. 이후 그는〈콜렉터〉,〈로리타〉등 성과 사회적 관계를 담은 영화와 연극을 제작해 왔다. 현재 연예계 성상납사건을 담은〈성상납리스트〉를 영화화하는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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