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진보성향 인사중 한 명인 명진스님이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손석희 JTBC 사장 겸 앵커가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꿈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방송인 김제동 씨가 국무총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으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법무부장관 직을, 윤석렬 특검 수사팀장이 검찰총장 직을 각각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인 김미화 씨는 문체부장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던 중고생이 교육부장관을 해도 되지 않겠냐고도 했다. 명진스님 나름의 조각(組閣)인 셈이다.

손석희 씨는 아나운서 출신 앵커로, 깔끔한 외모와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언론인 신뢰도가 가장 높은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최순실 태블릿 PC에 담겨있는 내용을 폭로해 더욱 인기를 얻었다. 명진스님은 특히 손 씨의 앵커브리핑에 매료된 듯 “우리나라 대통령도 저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지 말도 못하고 무식하고 패거리 모아가지고...”라고 했다. 그러니까 명진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말을 잘 하고 유식해야 한다.

김제동 씨는 야구 장내 아나운서 출신으로, 입담이 청산유수다. 정치 현안에 관심이 많은 연예인중 한 명인 그는 청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사이다’ 발언자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헌법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더욱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명진스님은 법에 대한 김 씨의 해박한(?) 지식에 매료된 듯 "김 씨가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황교안 씨보다 법 정신에 더 투철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명진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법 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감으로 각각 지목된 박영수 특별검사와 윤석렬 특검수사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수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탄핵 사유를 만들기 위해 중립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변호인 조력권 행사마저 방해하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최순실 및 일부 재벌 변호인단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앞만 보고 수사하고 있는 이들의 화끈한 모습에 명진스님이 매료된 듯하다. 그러니까 명진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인권침해 논란이 있어도 물불 가리지 않고 화끈하게 수사해야 한다.

문체부장관 물망에 오른 방송인 김미화 씨는 개그우먼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일자눈썹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개그우먼으로는 드물게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명진스님은 김 씨의 저서 '웃기고 자빠졌네' 서평을 통해 "너무 재미있어서 웃고 있는데도 가슴 한 켠이 찡해지고, 찡하게 울려놓고선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게 만드는 그녀는 천상 개그우먼이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명진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체부장관은 사람을 웃기는 동시에 눈물샘을 잘 건드려야 한다.

참 못났다. 우리나라 대통령들. 얼마나 말을 못하고 무식했으면 말 잘하고 유식한 TV 앵커더러 대통령을 하라고 할까. 정말 못났다. 우리나라 국무총리들. 얼마나 법 정신이 투철하지 못하고 암기과목 공부를 못했으면 법 정신 투철하고 헌법 조문 잘 외우는 개그맨더러 국무총리를 하라고 할까. 참 못났다. 우리나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들. 얼마나 화끈하게 수사를 하지 않았으면 남이 뭐라 해도 듣지 않고 수사하는 사람들에게 장관과 총장을 하라고 할까. 진짜 못났다. 우리나라 문체부장관들. 얼마나 사람을 웃기지 못하고 눈물샘을 건드리지 못했으면 개그우먼더러 장관하라고 할까.

정말일까? 우리나라 대통령들, 정말 말도 못하고 무식했고 무식할까? 우리나라 국무총리들, 정말 법 정신 투철하지 않고 법조문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고 못할까? 우리나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들, 정말 앞뒤 가리지 않고 인권을 침해하면서 수사했고 수사할까? 우리나라 문체부장관들, 정말 사람 웃기지 못하고 눈물샘도 건드리지 못했고 못할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사람의 단면을 보고 그 사람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여 판단하는 오류 말이다.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고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우(遇)를 쉽게 범한다.

좋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든 아니든, 명진스님의 말대로 손석희 앵커처럼 말 잘하고 유식한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고 치자. 명진스님 뜻대로 법정신 투철한 김제동 씨 같은 사람이 국무총리가 되고, 일각에서 인권을 무시한 채 수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박영수 특검과 윤석렬 특검수사팀장 같은 인물이 각각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된다고 치자. 또 명진스님 꿈대로 사람 웃기는 재주가 남다르고 눈물샘 잘 건드릴 것 같은 김미화 씨 같은 사람이 문체부장관이 된다고 치자. 이런 사람들이 국가를 경영하는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현란한 언변과 달콤한 레토릭으로 가득 찬 글로 국가를 잘 경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투철한 법정신으로 국가를 잘 경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권침해 논란이 일더라도 물불 가리지 않는 수사로 국가를 잘 경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웃기면서 눈물샘 잘 건드리는 것으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나 크고 복잡다기하다. 그렇기에 지도자는 허상이 아닌 자신들의 성향과 역량을 국민들 앞에 한 점 숨김없이 드러내고 검증받아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인기투표’로 뽑는 ‘스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적시’에 ‘한탕’만 잘 하면 누구나 지도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대통령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될 만한 자격과 조건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 경험이나 경험도 그리 필요치 않다. 논리적 판단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가져야 할 덕목 같은 거추장스러운 허울 따위는 벗어던진 지 오래다. 포퓰리즘으로 유권자를 현혹해 권력부터 잡는 것을 능사로 여긴다. 이미지나 레토릭으로 실체나 진실을 감춰버린다. 그 결과 한국의 정치는 오락화하고 권력은 연예화되고 있다.

명진스님의 조각(組閣) 발언이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 웃음이 사라진 작금의 우리 사회에 그저 한 번 크게 웃자고 던진 농담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진심이라면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에 의존하는 '스타'가 아니라 이 나라를 이끌고 갈 국민의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손석희 씨, 김제동 씨, 박영수 씨, 윤석렬 씨, 김미화 씨는 분명 이 시대가 낳은 ‘스타’들이다. 그러나 ‘스타’는 '영웅'처럼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영웅'에게는 보통사람과 다른 뛰어난 특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들에게 그런 것들이 있는가?

장성훈 편집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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