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재단은 서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과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 어쩌다 이런 관계를 맺게 됐을까. 기업은 재단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기업의 시커먼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 감면이라는 법의 허점을 이용, 재단은 기업의 지배·승계·상속은 물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치권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이뤄지고 있다. 일요서울은 각 기업의 주요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며 돕고 있는지 시리즈로 알아봤다. 이번호는 두산그룹이다.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두산연강재단은 생전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8년에 설립됐다. 연강은 박두병 회장의 호(號)다. 그는 교육이야말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 믿으며 인재 양성을 위한 학술 재단 설립을 계획했지만, 안타깝게도 생전에는 그 결실을 맺지 못했다.

1973년 박 회장이 향년 63세로 타계한 후 여러 사회 인사들이 박 명예회장의 유지(遺志)를 기리기 위해 재단 설립을 적극 추진, 창립총회를 거쳐 1978년 10월 4일 두산연강재단을 정식으로 발족했다.

매년 큰 수익규모
배당금·임대료↑


이후 장학·학술·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해 온 두산연강재단은 높은 수준의 사업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2015년 이 재단의 수입합계는 231억 원(공익사업 98억 원, 수익사업 133억 원)이다. 전년(236억 원)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공익사업은 오히려 3억 원 늘었다.

수입을 바탕으로 매년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꾸려왔다. 231억 원의 수입은 장학·학술 사업에 36억여 원, 문화예술 사업에 51억여 원 등 총 87억여 원이 사용됐다(목적사업비 61억 원, 급여 등 판매관리비와 기타비용 26억여 원).

눈에 띄는 건 수익사업이다. 수익금에서 국내 학술장학법인 가운데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수익사업 133억 원의 대부분은 배당금과 부동산 임대료 수입으로 올렸다. 배당금 61억 원, 부동산 임대료 68억 원, 금융이자 3억 원 등이다.

2015년 기준 재단의 자산총액은 1310억 원, 주식총액(장부가액)이 600억 원으로 자산총액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가량(45.8%)이다. 주식을 출연받은 뒤 배당이익 등을 공익 목적에 사용해야 하는 공익법인 입장에선 최적의 구조를 갖춘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연강재단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이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그룹으로부터 운영비를 따로 받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공익사업에 (비용이) 투입되는 바람직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부분은 그룹에서의 역할이다. 연강재단은 두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두산의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우선주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재단은 두산 우선주 21.3%를 갖고 있다.

우선주는 배당과 기업자산 분배 등에서 보통주에 비해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이다. 대신 우선주는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업이 설립한 재단은 해당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나 승계에 이용되기 때문에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를 보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공익법인은 발행주식 총수 5% 이내의 보통주를 취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받지 않는다. 성실공익법인으로 인정받으면 10%까지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비과세 주식으로
안정적인 수익


그렇다면 두산은 왜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를 취득했을까. 우선주의 경우 의결권은 없지만 보유량에 관계없이 상속·증여세가 모두 면제된다. 또 일반적으로 보통주에 비해 배당률이 높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하는 대신, 이익과 자산, 자금 조달에서 우선순위를 택한 셈이다.

그렇다고 보통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재단은 비과세 구간인 2.65%(56만3166주)의 두산 보통주를 보유하고 있다. 9일 종가 기준 보통주의 주식가치는 600억 원을 넘는다.

두산의 그룹 영향력이 큰 만큼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한 친인척 33명도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사재를 출자해 만든 동대문미래창조재단도 이 회사 주식을 9만4000주(0.44%) 갖고 있다.

덕분에 세금을 단 1원도 들이지 않고 그룹 지배력 강화, 경영권 방어는 물론 수익성까지 챙긴 셈이다. 2015년 재단의 수익사업에서 61억여 원의 배당금 중 60억 원 이상은 두산에서 나왔다.

아울러 재단은 두산과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오리콤 등 계열사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 외에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한국경제신문 등의 주식도 보유 중이다.

회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우선주는 경영권 방어나 지배력 강화에 쓸모가 없는데다 주가도 보통주보다 잘 오르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운영하는 재단에서는 잘 활용하지 않는다”면서 “두산연강재단은 수익성을 우선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형제간의 지분 다툼이나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없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우려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