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씨 일가의 아름다운 동행…성장에서 분리까지 가풍 이어가
-2세 시대 마감으로 GS그룹 오너가 3세 주도의 4세 경영 준비 가속화
故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 故 허완구 승산 회장(왼쪽부터)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05년 동업관계를 마무리하고 GS그룹으로 독립한 고 허만정 LG그룹 창업주 가문이 지난 3일과 5일 허완구 승산 회장(81)과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89)의 별세로 ‘구’자 항렬의 창업주 2세시대를 마감했다. 특히 이틀 차이로 세상을 등지면서 이들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이 지난 5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LG그룹을 공동 창업한 고 허만정 회장의 4남으로 192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53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합류한 이후 그룹을 키워낸 장본인이다.

특히 그는 일명 ‘하이타이의 아버지’로 불리며 한국 세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허신구 회장은 국내 세제가 없던 1962년 동남아 시장 출장길에 가루로 빨래하는 모습을 보고 “양잿물에 끓이고 방망이질 하고 비틀어 짜는 빨래 방법에 비하면 얼마나 세련됐는지 우리도 그 합성세제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서를 제출해 파란을 일으켰다. 더욱이 당시 국내에는 세탁기도 없고 빨랫비누를 대량 생산하던 시절이어서 ‘무슨 가루비누냐’는 반발에 부딪혔다.

하지만 허신구 회장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경영에 성공해 경쟁 회사인 애경유지보다 빠른 1966년 4월 10일 국내 최초 합성세제인 하이타이와 뉴힛트를 시장에 내놨다.

물론 제품은 출시했지만 시장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고인은 영업전선에 뛰어들어 주택가 골목을 누비며 주부들 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하이타이’ 세탁 방법을 전파했고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며 LG그룹 사업 영역을 넓히는 결정타를 만들어냈다.
하이타이 아버지
GS 분리 주역

허신구 회장은 이후 락희유지, 금성전선 등을 거쳐 1971년 락희화학 사장으로 돌아왔고 1980년 2월까지 만 9년을 재직하며 락희화학을 종합화학 및 무역회사로 성장시켰다. 1974년 2월 락희화학을 주식회사 럭키(현 LG화학 전신)로 바꾸며 그룹 확장의 도화선 역할을 해냈다.

허신구 회장은 1979년 금성사(현 LG전자) 사장으로 취임,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컬러TV, VCR, 컴퓨터 등 가전제품 대중화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사이 고인은 1973년 수출유공 동탑훈장, 1974년 수출유공 은탑산업훈장, 1978년 우수발명과 특허관리부문 금상, 1979년 신제품 및 신모델 혁신대회 대통령상, 1983년 발명의 날 금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했다. 1995년 구자경 LG명예회장과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2004년 GS그룹과 LG그룹의 계열 분리로 오랜 동업관계를 마무리할 때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원활하게 진행해 GS그룹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허신구 회장은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1986년 대한조정협회 회장과 1987년 아시아 조정연맹회장을 역임했다. 또 한일간 경제교류와 협력을 위해 한일 경제협회 부회장을 맡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고 윤봉석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 허연수 GS리테일 사장, 딸 허연호, 허연숙씨 등 2남 2녀를 두고 있다.
각별한 교육사업
사재 출연 눈길

허신구 회장의 비보에 앞서 지난 3일에는 허완구 승산 회장이 별세했다. 허만정 창업주의 다섯째 아들인 고인은 허신구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69년 주식회사 승산을 설립해 운영해 왔다. 승산은 레저·물류 전문기업으로 1991년 미국 철강회사 파웨스트스틸을 인수하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왔다.

국내 체육계에서도 폭넓게 활동했다. 민속씨름협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허완구 회장은 교육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허만정 창업주가 1925년 설립한 진주여고 현대화 사업에 사재 100억 원을 내놨으며 1986년부터 진주여고 학생 10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한국 글로벌화에도 관심이 많아 미국 오리건주립대 박물관에 한국실을 설치해 기증한 바 있다.

허완구 회장의 유족으로 부인 김영자 이화여고 장학재단 이사장과 장남 허용수 GS EPS대표, 차녀 허인영 (주)승산 대표가 있다.

이처럼 허신구, 허완구 회장의 별세로 LG의 성장과 GS탄생 신화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GS그룹 오너가는 3세들의 진주지휘 아래 4세 경영시대를 열 채비를 하고 있다.
4세 경영 시동,
가풍 이을지 주목

우선 GS그룹의 모태인 LG는 구인회 LG창업주의 장인 허만식의 육촌인 허만정의 동업으로 시작돼 허만정 창업주의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 고 허완구 승산 회장을 제외하고 2세들 모두 LG 신화창조와 함께 했다.

차남인 허학구 새로닉스 회장은 1951년 락희화학에 들어간 뒤 LG전선(현 LS전선) 부사장 등을 지냈고 1970년 장남 구자경 부회장이 LG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경영에서 손을 뗐다. 셋째인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은 락희화학 창업과 함께 영업담당 이사로 발을 디딘 뒤 금성사 부사장 반도상사(현 LG상사) 사장을 지냈다. 1995년 구자경 회장의 퇴임을 계기로 동반 퇴진할 때까지 금성전선(현 LG전선) 회장을 지냈다.

이 같은 허씨 일가는 2004년 7월 정유·유통·홈쇼핑·건설 부분을 가지고 독립, 2005년 3월 GS그룹을 공식 출범시켰다. 특히 허만정 창업주의 아들 8형제 중 차남 허학구 회장과 6남, 7남을 제외한 2세 일가들이 ‘GS’의 한 지붕 아래 모여 그룹화했다.

지주회사 GS계열과 삼양통상, 코스모, 승산 등 독자적인 3개 방계그룹이 한 울타리에 있다. 하지만 방계그룹들은 무늬만 GS로 GS계열과는 출자 관계가 전혀 없다.

현재 지주회사 GS를 중심으로 한 GS계열은 창업주 3남 고 허준구 LG건설(현 GS건설) 명예회장 일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장남인 허창수 GS그룹 회장, 3남 허진수 GS칼텍스 회장 등 다섯 아들들이 GS계열사들을 경영하고 있다. 여기에 막내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이 경영진으로 포진하고 있다. 다만 GS지분은 창업주 2세 일가들이 분산소유하고 있다.

허씨 일가는 특유의 단단한 가족경영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막 내린 2세에서 3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큰 불협화음이 없었고 4세 경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렇다 할 잡음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를 잇는 가문의 역사만큼 후손들이 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어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지가 관심사다.

현재 GS그룹은 ‘수’자 항렬의 3세들이 진두지휘하고 이제는 ‘홍’자 돌림의 4세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님인 허세홍 GS글로벌 대표,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 허윤홍 GS건설 전무가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GS그룹 내 지분 구조가 다소 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허창수 회장과 사촌지간인 허용수 부사장(허완구 회장 장남)이 지분율을 끌어 올리면서 지주사인 GS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허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4.47%에서 5.26%(보통주 기준)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허 부사장의 동생인 허인영 씨의 지분 1.62%까지 더하면 7%에 가깝다. 이는 허창수 회장과 그의 장남 허윤홍 GS건설 전무의 지분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더욱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그룹 오너가 4세들의 지분 늘리기가 이어져 일각에서는 가족끼리 지분 경쟁에 들어갔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들은 허완구 회장이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보유 지분이 매도 증여되면서 변동이 생긴 것으로 보고 가풍을 감안하면 확대해석할 일은 아니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오너가가 확대되는 만큼 4세 시대뿐만 아니라 분리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와 향후 GS가문이 어떤 상생을 이끌어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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