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하자마자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 대통령

‘아돌프 히틀러’ ‘로마 네로황제’에 비유되며 경계 대상
 트럼프 정치의 기본 전술은 군사 용어인 “충격과 공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상상을 뛰어넘는 극단적 정책을 쏟아내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이민자를 적극 껴안아온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태도를 돌변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새로운 고립주의로 회귀하면서 세계 질서가 온통 흔들릴 조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7일 만인 지난달 27일 무슬림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란·이라크·리비아·소말리아·수단·시리아·예멘 국민의 미국 입국을 90일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금지 대상에는 해당국 난민, 방문 학자, 그리고 심지어 업무나 휴가 때문에 어쩌다 해외에 있게 된 미국 영주권자도 포함됐다. 

미국 안팎에서 맹렬한 항의와 반대를 부른 트럼프의 이 반(反)이민 행정명령은 미국 시애틀 소재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에 의해 지난 3일 그 시행이 중지됐다. 이에 따라 해당 7개 나라 국민의 미국 입국이 재개됐다. 법원이 자신의 행정 명령에 제동을 걸자 트럼프는 지난 5일 트위터에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판사 한 명이 우리나라를 그토록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그와 사법체계를 비난하라”고 했다. 

그는 전날에도 “소위 판사(so-called judge)라는 자의 의견이 터무니없다”고 했다. 이 같은 트럼프의 판사 매도에 대해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우리한테 ‘소위 판사’는 없다. ‘진짜 판사’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충돌한 사례는 많지만 취임 2주 만에 대통령의 행정 조처들이 법원에 거부당한 것도, 대통령이 그런 결정에 욕설을 퍼붓는 것도 희귀한 사례라고 지난 5일 지적했다. 

트럼프가 사법부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6월 대선기간 중 ‘트럼프 대학 사기’ 의혹 사건을 맡은 연방지법 판사를 향해 “멕시코계이기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진행한다”고 주장해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취임 직후 전격적으로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막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트럼프를 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는 사례가 봇물을 이룬 데 이어 지난 4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표지에 끔찍한 그래픽을 실어 트럼프를 비난했다. 

문제의 그래픽은 쿠바계 미국인 프리랜서 예술가 에델 로드리게스의 작품으로 금발의 남성이 한 손에는 피가 떨어지는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를, 또 한 손에는 피 묻은 칼을 든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남성의 얼굴에는 눈과 코가 생략된 채 입만 그려져 있지만, 금발 머리와 검은색 양복 그리고 트럼프가 즐겨 매는 붉은 색 넥타이로 미루어 트럼프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로드리게스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를 환영해 온 미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며 “이 신성한 상징의 참수는 민주주의의 참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참수라고 하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연상되는데, IS와 트럼프 대통령 둘 다 극단주의자라서 트럼프 대통령을 IS에 비유했다”고 밝혔다. 슈피겔은 또 이날 ‘네로 같은 트럼프 - 유럽은 위험한 대통령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 대해 위험이 돼 가고 있다. 지금은 독일과 유럽이 정치·경제적 방어를 준비할 때”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취임 이래 짧은 기간에 오바마케어를 손보겠다고 언명한 데에서 시작해(최근 “실제 시행은 2018년으로 미루겠다”고 완화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행,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강행 의사 표명, 그리고 앞에서 말한 반(反)이민 행정 명령 서명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행보를 이어왔다. 중국·일본·독일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의지도 밝혔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겠다고 재차 공언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 공약이었던 ‘미국 우선주의’를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미국 내 일자리 보존을 이유로 미국 여러 대기업들의 제조기지 국외 이전을 반강제적으로 좌절시키는가 하면, 한국·일본의 대기업을 향해 노골적으로 미국에 제조시설을 지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고마워요, 삼성!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어요!(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는 글을 올렸다. 그간 미국 내 공장 증설 및 신설 방안을 계속 검토해온 삼성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이 노골적인 요구에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트럼프는 이날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건설할 것이란 외신 기사 링크와 함께 이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그동안 미국 내 공장 및 일자리 유치를 위해 애플과 도요타 등 자국 내외 기업들을 압박해왔던 트럼프가 한국 기업 이름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의 통치 수법은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라 불린다. 미국 전쟁교리에서 나온 이 용어는 트럼프가 취임 이후 취한 일련의 통치 행위의 속도를 묘사하는 데 쓰인다.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에 즈음해 유명해진 이 개념의 창시자들에 따르면 충격과 공포는 “신속한 제압의 교리”로서 그 목적은 “우리의 전략적 정책에 맞서거나 대응하는 적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것을 트럼프에게 적용하면 “정치적 행동에 시동을 걸고 세계가 이에 적응하도록 강요한다”가 된다. 

트럼프가 이끄는 백악관은 트럼프의 각종 선거공약을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문제점이나 반대는 세부사항들이 불거지면 그때 가서 다뤄도 된다고 믿는다. 그들은 정치 시스템, 특히 관료주의를 한번 뒤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트럼프 참모들이 ‘유관 부처들 간 검토’라는 통상적인 과정을 건너뛰고 반(反)이민 행정명령을 전격적으로 발령한 것은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유관 부처들이 그 행정명령을 무산시키거나 완화시키려 들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팀은 “먼저 명령을 내린 다음 유관 부처들로 하여금 명령을 이행케 한다”는 자체 원칙에 따랐던 것이다. 이런 전략은 언론을 대하는 데에서도 그대로다. 트럼프는 자신의 구상이 언론을 거치면 왜곡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팔로워 2000만 명에게 트위터로 직접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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