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이탈 막으려 ‘당근정책’...형평성 논란에 씁쓸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550조 원의 국민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서울을 떠나 ‘3월 전주’ 시대를 시작한다.

그러나 지방 이전에 따른 직원 유출과 업무 효율성 저하 등이 대두되면서 향후 전망은 ‘안갯속’이다.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 내놓은 당근정책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내부 직원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회사를 떠나는 것도 모자라 외부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아야 해 씁쓸하다. 여기에 문형표 전 이사장의 구속과 사의 표명으로 기금운용본부는 ‘총체적 난국’에 처했다.

해외 파견·금요일 4시 퇴근 …외부 눈치 보여
문형표 전 이사장 구속과 사의…총제적 난국


기금운용본부의 이전은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것이다. 기금운용 관련 전산 장비 역시 2015년 본부 이전과 함께 전주 본부의 ICT센터로 옮겨졌다. 25일부터 28일 이사를 끝으로 전주 혁신도시로의 이전이 완료된다.

이원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직무대행은 “2015년 공단 본부의 이전과 올해 기금운용본부의 이전이 차례로 완료되면서 국민연금의 전주 시대가 완성됐다. 국민의 든든한 노후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 다변화와 기금운용 역량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전 작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우려 섞인 말부터 나오고 있다.

1년 새 운용인력 50명 이상 떠나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역은 220여 명 정도인데 국민연금공단은 기금운용역의 이탈을 막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이전에 따라 기금운용역 정원 260명 가운데 지난해 30여 명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난데 이어 올해도 5명가량이 그만뒀다.

또 ‘그만 두겠다’는 뜻을 밝힌 직원이 올해만 10여 명에 달하는 등 지방 이전에 따른 인력 유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형표 전 이사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특혜를 준 혐의로 ‘특검 1호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하면서 국민연금은 ‘기관장 리스크’도 떠안은 상황이다. 여기에 후임 인선이 지연될수록 국정 농단의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관계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 내놓은 일명 ‘당근정책’도 논란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해외근무직 정원을 2배 가까이 늘리고 금요일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등 기금운용역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들을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보수인상안을 내놓기도 했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에 걸쳐 기금운용본부 소속 운용역의 보수(기본급+성과급)를 민간 자산운용사의 상위 25% 수준에 맞춰주는 방안을 빠른 시일내로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다.

국민연금이 외부 업체에 의뢰해 직급별 보수를 민간 자산운용사 50여 곳과 비교한 결과, 현재 기금운용본부 운용역의 보수는 민간의 중위값(보수를 많은 순서대로 일렬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의 보수)과 비교해 10% 가량 적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민간 상위 25% 수준(업계 추산 실장급 3억3000만 원, 전임급 9500만 원)으로 맞추려면 직급별로 지금보다 최소 30%, 많게는 80% 가량 올려줘야 한다. 이에 따른 추가 인건비는 연간 20억 원 정도로 국민연금은 추산하고 있다. 국민연금 측은 보수 인상 외에도 ▲ 직원 숙소 운영 ▲ 비연고 근무자금 대출 ▲ 통근버스와 직장어린이집 운영 등 직원 복지 차원의 다양한 대책도 적극 추진 중이다.

그러나 파격적인 보수 인상은 다른 공공기관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전주 이전으로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인력 이탈 등의 여파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국민연금과 정부의 입장이다.

형평성 논란에 여론도 좋지 않아

업계 관계자는 “보수를 많이 올려주면 지방 이전에 따른 부작용을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공공기관의 고임금 구조에 대한 여론의 시선을 극복하는 데는 다소 논란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서울사무소 설치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행법상 운용본부는 소재지인 전라북도의 허락 없이 서울에 사무소를 따로 낼 수 없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사무소를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라 직원 대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문 전 이사장은 사퇴의 변을 통해 “이제 저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삼성합병 의혹에 대해선 부인했다. 문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거나 해당 기업으로부터도 어떠한 요청을 받은 바 없었으며, 국민연금공단으로 하여금 합병에 찬성토록 구체적·명시적으로 지시한 바도 결단코 없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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