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화백 인터뷰

[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특이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만나기 위해 한 미술 작업실을 찾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가 골프장 전경을 그리다니... 특이하지 않은가. 그가 골프장에 매료된 이유는 우울한 날들을 보던 시절 우연히 방문한 골프장에서 새로운 세계와 마주한 듯 힐링이 되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골프장을 그리는 화가라고 하면 언뜻 위화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살아온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굴곡진 인생이었다. 골프 화가로 알려져 있는 김영화 화백을 방배동의 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김영화 화백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소년소녀가장 시절

 
김 화백은 그간 언론 인터뷰에서 소년소녀가장이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정말로 부모님이 없어서 소년소녀가장의 시기를 보낸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인 도봉 김윤태 선생(도자기 무형 문화재)은 경북 함창에서 도자기를 굽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며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타지역에서 온 낯선 이들에게 도자기 몇 트럭을 한꺼번에 실어주고 대금을 받지 못하는 사기를 당하게 된다.
 
이후 술로 시간을 보내던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결단을 내리고는 어머니와 성공을 위한 부산행을 택한다. 4남매를 고향에 남겨둔 채 였다. 그렇게 한동안 소녀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먹이고 본인도 먹는 연명의 시간을 보낸다.
 
남의 집 식모살이도 하고 홀로 쑥을 캐서 시장에다 내다팔기도 했다. 당시 그에게 가장 쉬운 것은 공부였다. 그렇게 부모의 도움 없이, 그 시절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여자의 공부를 장려하지 않는 분위기임에도 혼자 공부해 미술학도들의 로망인 홍익대학교 동양학과에 입학한다.
생명빛
따로 또 같이
유토피아
      
인생의 긴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와

 
홍대 졸업 후 10년 간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이 시기가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어두운 터널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미술학원을 운영하니 돈도 쏠쏠히 벌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았고 어둡고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생활인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우리는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왜 살아가는지’가 궁금했고 고민도 많았다.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살았다. 그 시기에 그린 그림들은 모두 어둡고 칙칙하고 남들 앞에 꺼내어 놓기가 부끄러운 그림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살아오면서 있었던 힘겨움이나 굴곡진 상처들이 제 안에 담겨 저를 고뇌하게 하고 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상처들을 스스로 비워내는 방법을 알게 돼 비워냄으로써 드디어 오랜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내 안에 많은 것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가 없다는 깨달음, 그래서 안에 번뇌들을 비워내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넣고 하는 과정은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그녀의 그림은 힐링
 
김영화 화백의 그림을 보면 색채의 밝고 맑은 기운이 그림에 담겨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힐링의 기분을 가져다준다. 그저 그림 실력이 뛰어나 그림을 그리다 그렇게 된 게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시련은 공부를 하라는 메시지였다. 시련을 겪어 나가고 잘 견디어 나가면 그 후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
천국안에서
향기
우리나라 대표
골프화가가 되다

 
처음 골프 그림을 시작할 즈음 그의 그림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동양화라는 장르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 골프 그림이라는 것은 기존에 없었던 장르였고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상하고 생소하게 봤다. 일부 사람들의 뒷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겨났다. 결국 우리나라 대표적인 골프 화가가 됐고 지금까지 마흔 여섯 번의 골프그림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는 “때로 주위의 비난도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승화시킨다면 노력의 원동력이 돼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한 큰 작용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화백은 최근 지난 30년 동안 그려온 그림과 함께 시를 실은 호작질이라는 그림집 겸 에세이집을 펴냈다. 해당 책에는 김영화 화백이 8년 동안 문화일보에 연재한 작품과 시가 수록돼 있다.
 
그는 “현대인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것은 문학이 될수도 있겠고 음악, 또는 미술이 될 수도 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상처 난 사람을 알아볼 수도 없고 그 상처를 치료해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시련을 감사하게 여기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보고 이를 치료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