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상법 개정안’ 경영권 위협 이유 있었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산 넘어 산이다" 한 대외협력팀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박영수 특검의 무차별적 기업 수사로 경영 위축이 불가피했던 상황이 특검 종료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국회와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재벌개혁 공약 때문에 또다시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후 반재벌 정서가 강해졌다는 점에서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인 상법개정안이 통과 될까 전전긍긍한다. 재계는 과도한 경제 옥죄기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분위기상 목소리를 크게 낼 상황도 못 돼 속만 태운다.

소액주주 권리 보호 취지 vs 기업 활동 위축 주장
여야 일부 합의…해외 투기 자본 먹잇감 전락 우려

<뉴시스>

현재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당 측에서 발의한 내용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감사위원을 사내외 이사와 별도로 뽑되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주식 1주에 대해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특정 이사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 ▲근로자 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자회사 임원을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이다. 바른정당만 집중투표제를 개정안에 넣지 않았다.

중소기업만 더 죽는다...반대 목소리 높아

이를 두고 경제계와 일부 의원들은 “강제적인 지배구조 수술이 이뤄지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개정안대로 입법될 경우 해외투기자본에 의해 악용될 소지 등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 전 상법 학회장들에게 듣는다’ 긴급좌담회에 참석한 전임 상사판례학회장, 기업법학회장 등은 한목소리로 국회 상법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개회사에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새로운 조치들이 등장하면 기업에서는 여유자금과 여유능력을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에 쏟아 붓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기업의 투자재원은 줄고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정 전 상사판례학회장(동국대 법학과 교수)은 “감사위원이 소수주주를 대변하게 된다면 회사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분파적 이익이나 경영외적 목표를 겨냥해 경영분쟁을 유도하거나 고배당 등 단기실적에 집착하며 경영진을 압박할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외국에서 입법례를 찾기도 힘든 희귀한 법안을 충분한 토의도 없고 피적용대상자인 기업의 공감대도 없이 경솔하게 채택하는 것은 문제다”고 강조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도 16일 성명을 내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관련 주요 상법개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상법개정안에 대해 “과도한 기업규제로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할 수 있다”며 “자본시장에 상장된 상장회사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상장회사 중 대기업은 14%, 중소·중견기업은 86%”라고 강조했다.

이는 재벌 개혁을 위한 상법개정안이 정작 86%에 달하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개정안 내용 중 대주주 의결권 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다가 중소기업 상당수는 상법개정안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을 만큼 규모가 작고 경영난을 걱정해야하는 처지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일 열린 ‘유일호 경제부총리 초청 CEO 조찬간담회’ 자리에서 “상법개정안은 교각살우(矯角殺牛·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잘못된 점을 고치려다 그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것)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590개 법안이 발의됐는데, 그중 407개(69%)가 규제 강화 법안이다. 이런 규제 법안들이 정치적 쓰나미에 휩쓸리듯 한꺼번에 통과되면 기업들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대 입장도 있다. 최운열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국에선 정경유착의 뿌리를 왜 뽑지 못할까.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기업 자신이 정부나 정치권에 약점 잡혀서 그렇다”며 “많은 기업들이 상법개정안의 본질을 잘 이해 못해서 기업을 옥죄는 법이 아닌가 하시지만 사실 이 법의 통과야말로 기업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기업 독립을 위한 법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법이 통과돼야 기업이 정치권 눈치 보지 않고 열심히 경영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반기업 정서 높아...여야 합의 가능성도

상법개정안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법무부는 상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당시에도 논란은 거셌고, 결국 도입이 중단됐다. 그러다 최근 들어 최순실 사태로 재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논의가 다시 진행 중이다.

반기업 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어서 대주주 경영권 제한을 목적으로 한 상법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이 때문에 기업의 시선이 국회를 향하고 있고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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