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선 직전 ‘범 보수 대 통합’ 구심점 되나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탄핵 정국’은 끝났다. ‘촛불’의 바람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다. 그러나 이제는 ‘대선 정국’이다. ‘촛불의 심판’이 지난 3월 10일 대통령 탄핵 소추안 인용 판결로 끝이 났다면 이제는 ‘태극기의 심판’이 남은 셈이다. 지난 3월 1일을 기점으로 ‘태극기’는 ‘촛불’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친박단체들이 주축인 탄기국(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에서는 이미 새누리당 재창당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5월 9일, 권토중래(捲土重來)한 ‘태극기 세력’과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박 전 대통령이 ‘태극기의 심판’ 즉 ‘보수 정권 재창출’에 앞장설 것이라는 것.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 시절로 돌아가 ‘태극기 세력’과 함께 반전 드라마를 써 나갈 것인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보수 진영, 탄핵 심판 ‘인용’되길 바랐다?
- ‘태극기 세력’의 정치세력화가 급선무

‘탄핵 정국’에 반전은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 대해 인용 판결을 내렸다. 헌재의 판결은 재심이 불가능한 단심제다. “탄핵이 인용되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나 “살 만큼 살았다”는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 등 탄핵 소추안 기각에 사활을 걸었던 ‘태극기 세력’ 모두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

분노한 ‘샤이 보수’
전면에 나서나

그러나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인용 판결은 ‘탄핵 정국’의 종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선 정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난 3월 1일 태극기 바람은 촛불을 꺼뜨렸다. ‘샤이 보수층’도 깨어났다. ‘샤이 보수층’이 탄핵 심판 전까진 박 전 대통령 책임론으로 침묵했다면, 박 전 대통령 책임 추궁이 일단락된 현시점에선 전면에 나설 명분이 생겼다. 일각에서는 보수 진영이 오히려 ‘탄핵 인용’을 더 간절히 바랐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즉 언론과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야권, ‘가짜 보수’ 김무성·유승민 의원에 대한 분노가 태극기 세력으로 하여금 ‘탄핵 기각·각하’를 외치게 했다면 이제는 이들의 구호가 ‘보수 정권 재창출’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 지난 10일에 ‘촛불의 심판’이 이루어졌다면 조기 대선이 치러질 날짜로 유력한 5월 9일은 ‘태극기의 심판’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정치권은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태극기 세력’의 정치세력화가 급선무라고 말한다. 현재의 태극기 집회가 보유하고 있는 대중 운동력을 어떻게든 정치세력으로 조직화해내는 일이 보수진영의 당면 과제라는 것이다. 탄핵 인용이 실질적인 보수 진영의 패배라는 점에서 기존의 정치세력으로는 정권 재창출은커녕, 대선 이후 구심점 없는 보수 야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탄기국은 박사모라는 사조직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럴 경우 탄기국이 시민들로부터 걷은 후원금과 서명, 인적 정보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탄기국이 공적 구조를 갖는 정치세력 기구화가 되지 않을 경우 손쉽게 검찰의 수사 타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탄기국이 정당과 같은 정치세력화에 성공하면 검찰의 수사에 대해 정치탄압으로 맞설 수 있게 된다.

이에 탄기국 측은 지난 4일 ‘새누리당’으로 정당 창당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 대변인인 정광용 대변인은 이날 “이제 태극기 애국정당 창당에 나서야 한다”며 “단돈 1원 없이도 3일이면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정직하고 깨끗하며 애국충정 넘치는 조직이 있다”고 창당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친박단체의 신당 창당은 결국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시기 위한 초석 다지기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전문가들 역시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 시절로 돌아가 보수정권 재창출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일단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선 이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크게 작용한다. 민간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은 불소추 특권이 없다.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소환 시점이 대선 이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면 후 60일 이내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로 인해 검찰의 수사가 어떤 쪽으로든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론 분열을 우려한 검찰이 수사를 유보하거나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박 대통령 사면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지난 199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선거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한 전례도 있다.

무엇보다 차기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자신을 향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점도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정권 재창출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관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두 번째로 한국당과 바른정당 모두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속으로는 ‘범(凡) 보수의 분열’만은 피하고 싶어하는 상황을 꼽는다.

보수의 분열만은 피해야 하는데…
구심점이 없네

각종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후위 그룹에 큰 폭으로 앞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대선이 치러지기 전 두 달간은 ‘굳히기’의 시간이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소속 대선주자들에겐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보수’든 ‘개헌’이든 ‘반문’(反문재인)이든 연대의 명분은 충분하지만, 힘을 모을 시간이 부족하고 특히 통합을 위한 ‘구심점’이 뚜렷하지 않다.

‘보수 적통’이자 여권 내에서 유일하게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구심점으로 거론되고는 있으나 사실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된 상황에서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고 황 대행이 대권에 출마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보수의 한 축인 바른정당은 보수의 ‘구심점’은커녕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이 나기 전 이미 태극기 세력으로부터 ‘배신자’ 낙인이 찍힌 상태다. 보수의 심장인 TK에서 민주당에도 뒤처지는 지지율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대통령이 파면당한 현 시점에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는 데 앞장섰던 바른정당에 대한 태극기 세력의 분노는 더욱 격해질 것이 자명하다.

확장성 없는 洪,
朴과 손 잡는다면?

다급해진 바른정당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탈당을 선언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이후 국민의당과 연대를 통해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신 제3지대’를 형성해 ‘보수 적통 경쟁’에서 주도권을 가져온다는 계산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뾰족한 수가 없는 범(凡) 보수에선 홍준표 경남지사가 황 대행의 대안으로 뜨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탄핵 소추안 인용 판결로 홍준표 경남지사가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론 ‘보수의 저격수’로 불리는 홍 지사의 ‘사이다’ 같은 발언이 탄핵 인용으로 울분에 가득 찬 보수층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사로잡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당은 홍 지사를 대선 주자로 영입하기 위해 구애를 펼치고 있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8일 홍 지사를 창원에서 만난 데 이어 9일에도 여의도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에 앞서 홍 지사는 8일 한국당 초선 의원들과 상견례를 갖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선두 주자인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는 데 사실상 부담이 크기 때문에 2위 주자인 홍 지사가 상대적으로 수혜를 보고 있는 것일 뿐 범(凡) 보수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는 확장성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홍 지사는 최근 친박계를 향해 “양박(양아치 친박)이 모함을 했다”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맺힌 감정을 쏟아냈다. 이러한 홍 지사에게 박사모를 비롯한 친박 진영이 호응을 보낼 리도 없다. 홍 지사가 친박 세력을 포용하려 해도 친박 세력이 홍 지사를 포용할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 역시 홍 지사에겐 큰 짐이다. 이 같은 악재들이 홍 지사의 외연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나아가 보수 대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범(凡) 보수의 이합집산이 계속돼 지지율 반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국당과 바른정당, 홍준표 지사 등은 범(凡) 보수의 대통합을 절실히 원할 것이고, 박 전 대통령과 김진태, 윤상현 의원, 김문수 비대위원까지 가세한 새누리당이 이들을 묶는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홍 지사가 과거 ‘양박(양아치 친박)’이라며 농도 짙은 발언을 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에게만은 날을 세우지 않은 점도 그 역시 선거 막판 보수 대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홍 지사는 지난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했지만 위법행위를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정치적 탄핵은 할 수 있으나 사법적 탄핵은 좀 그렇다”라고 말했다.

헌재 재판관에 대해서도 “태산같이 무거워야 할 헌재 재판관의 입이 새털처럼 가볍다”며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임기 중에 탄핵심판을 결정해야겠다거나 탄핵절차를 형사재판에 준용시키는 언행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탄핵심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점과 “(자유한국당이나) 둘 다 같은 정당이다. 이혼한 게 아니라 별거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보수 대통합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확장성이 부족하고 친박계에 날을 세웠던 홍 지사지만 만약 박 전 대통령이 그의 손을 잡아준다면 홍 지사가 TK 민심을 거머쥐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고 나아가 홍 지사를 구심점으로 한 ‘보수 대통합’도 꿈만은 아니게 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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