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길 잃은 난파선에서 나침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서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할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 인 위원장의 ‘딜레마’는 크게 세 가지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 친박계에 대한 징계 수위 ▲ ‘인물난’ 타개를 위해 ‘뉴페이스’를 영입할 것인지 기존 주자 키우기에 나설 것인지 등이다. 조기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인 위원장이 이 같은 ‘딜레마’를 모두 극복하고 강경 보수와 중도 보수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보수 적통 경쟁 ‘압승’, 이게 다 朴 덕분인데...
- “어정쩡한 입장 유지할 경우 정치적 몰락 직면할 것”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과 관계 재정립을 어떻게 하느냐에 당의 존폐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일단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다수 여론이 엄정한 수사를 통한 적폐 청산을 요구하고 있어 대선의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인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을 무작정 감쌀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릴 수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유산에 대한 인 위원장의 고민은 박 전 대통령 당적(黨籍) 정리 문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인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당원권에 대해 ‘당헌·당규에 따른 처리’라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인적 청산’, 보수층 잡기 숙제

보수 정당의 ‘선장’으로서 ‘박 전 대통령과의 절연’으로 인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보수 지지층을 모두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수층은 인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출당 조치 등 ‘정치적 절연’에 나설 경우 한국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경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론의 압도적 찬성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됐지만 탄핵 반대 세력은 오히려 세를 불려 가고 있다.

지난 1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 인원은 ‘촛불집회’ 인원을 뛰어넘었다. ‘태극기’는 ‘보수의 심장’ TK지역에서 시작돼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꺼뜨리기에 이르렀다. 즉 박 전 대통령을 버리는 것은 TK지역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이 그들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한국당이 ‘보수 적자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바른정당에 지지율이 앞서는 것 역시 TK지역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다. 인 위원장 입장에선 이런 흐름이 지속돼야 추가 탈당을 막을 수 있고, 대선 국면에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기세를 몰아 ‘태극기 민심’을 한국당이 전부 흡수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한가닥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인 위원장이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 위원장이 지금과 같이 ‘어정쩡한 입장’을 유지할 경우 강경 보수와 중도 보수 모두를 잃는 ‘정치적 몰락’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인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립을 성공적으로 마쳐 중도 보수와 강경 보수층 모두를 지켜냈다고 하더라도 그에겐 ‘친박(親朴)’이라는 숙제가 남아있다. ‘적폐 청산’을 위해 친박계를 내 칠 것인지, ‘도로 친박당’이라는 비난 여론을 감내하더라도 보수 결집을 위해 친박계를 품을 것인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수 결집’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인 위원장 입장에선 친박계를 향한 표심을 한국당 중심으로 결집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적폐 청산’을 외치는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인 위원장이 친박계를 내친다면 사실상 보수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유일한 촉매제를 버리게 되는 셈이 된다.

게다가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국민저항본부(옛 탄기국)가 새누리당 당명을 확보하며 친박 세력을 모아 신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도 보이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명예 총재로 추대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태극기 민심’은 새누리당으로 옮겨갈 것이고 인 위원장이 ‘태극기 민심’을 통째로 잃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조기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 위원장이 이른바 ‘삼성동계’의 ‘사저 결집’을 무조건 만류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뉴 페이스’ 영입이냐 기존 후보 키우기냐

사면초가에 몰린 인 위원장에겐 ‘인물난’이라는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보수의 희망’으로 불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5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유한국당 내 ‘인물난’은 심화됐다. 한국당 예비후보로 등록했거나 등록할 예정인 10여 명의 인사 가운데 지지율 5%를 넘긴 후보가 전무하다.

그나마 유의미한 지지율을 기록하는 주자는 홍준표 지사가 유일하다. 다만 당내 주류인 친박계가 볼 때 홍 지사는 태생이 친박보다는 친이계와 결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탐탁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당 일각에서는 기존 대선주자를 키우기보다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자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하면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카드가 떠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는 지난해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당시 위원장 후보로 오르는 등 당이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로 거론된 인물이다.

여기에 유력 후보인 홍준표 경남지사에 거부감을 가진 당내 세력의 지지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바 있다.

다만 김 전 총리는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패배하며 대중성과 인지도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김 전 총리 본인 역시 출마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인 위원장과는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 취임 초기에 만났지만 대선 얘기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며 선을 그었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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