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보해양조 대표이사 부사장. <보해양조>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전국 소주시장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주류업체가 있다. 호남(광주·전남)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보해양조’다. 보해양조는 지난 2014년 17.5도의 저도수 소주 ‘아홉시반’을 출시하고, 이듬해 ‘부라더#소다’를 잇달아 내놓으며 수도권 진출을 꾀했다. 그러나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주류업체의 견고한 벽을 뚫기엔 보해양조가 가진 ‘도구’가 부실했다. ‘독특한 제품명’과 ‘마케팅’이 그것이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먹히는 듯 했다. 그러나 ‘가능성을 엿본 데 만족해야 한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아홉시반’과 ‘부라더#소다’ 두 브랜드의 중심에는 보해양조 오너 3세인 임지선 부사장이 있다. 임 부사장은 보해양조 창업주 고 임광행 회장의 손녀로, 모회사인 창해에탄올 임성우 회장의 장녀다. 1남2녀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아홉시반은 임 부사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뒤 처음 출시한 야심작으로, ‘아홉시반 주(酒)립대학’이라는 흥미로운 마케팅전략과 함께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개념 있는 음주시민 양성’을 모토로 설립한 사이버대학이면서 동시에 음주문화 캠페인이었다. 이 술은 도수가 낮아 독한 술을 즐기지 못하는 소비자에게 선호도가 높았다.

이듬해 임 부사장 주도 하에 개발해 내놓은 ‘부라더#소다’는 과일소주 인기에 힘입어 출시 반년 만에 130억여 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이는 당시 임 부사장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계기가 됐다.

반짝 인기 ‘시들’
마케팅으로 희비


임 부사장은 두 브랜드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서울·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소주시장 가운데 서울과 수도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을 차지한다면 브랜드 인지도는 물론 사세 확장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임 부사장의 수도권 진출은 마케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홉시반 주립대학’의 경우 실제로 대학가 등에서 공개강의 등을 펼치며 미래의 주요 고객이 될 젊은 층과의 접점을 늘렸다. 개그맨 김제동 씨와 배우 한가인 씨가 마케팅에 참여하기도 했다. 부라더#소다 역시 인기 연예인 등이 모델로 활동하며 각종 매체를 통해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동력이 부족했다. 홍보, 마케팅에 의존한 제품 판매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비자 트렌드는 급속도로 변했고, 갑작스런 인기만큼이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아홉시반은 급감하는 판매량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1월 출시 2년여 만에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보해양조의 지난해 매출액은 1155억 원으로 전년보다 6.7% 줄었다. 영업손실은 60억 원으로 지난 2011년 창해에탄올에 인수된 뒤 처음 적자전환했고, 순손실 역시 90억 원을 기록해 적자로 돌아섰다.

이런 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비용은 오히려 늘렸다. 밑 빠진 독에서 물이 새자 더 많은 물을 부어 채우려한 셈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3분기 누적 광고선전비는 74억 원으로 전년 동기인 42억 원보다 76.2%나 증가했다. 줄어드는 판매량을 홍보로 메우려는 이런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보해양조는 공시를 통해 회사의 영업이익 감소에 대해 마케팅 비용 증가 등의 결과라고 인정했다.

수도권 재도전
‘한 방이 없다’


수도권에 집중하던 사이 안방인 호남지역은 대형 주류회사 하이트진로에 밀렸다. 광주·전남 지역의 주력 제품 ‘잎새주’ 등 소주 판매 실적도 부진했다. 보해양조의 내수 소주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1.7% 감소한 482억 원(지난해 3분기 누적)을 기록했다. 보해양조 소주는 호남권에 주로 유통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해양조는 올해 ‘집안 단속’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내실을 다진 뒤 영토 확장을 위한 후일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채용, 근무했던 직원 30여명은 광주·호남시장으로 재배치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보해양조는 신제품 개발 등으로 수도권 진출에 재도전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강력한 한 방’이 없다는 건 약점으로 지적된다. 마케팅에 의존하는 전략은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할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 시장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시장이다. 한 번 입맛이 길들여지면 잘 바꾸지 않기 때문”이라며 “술은 맛뿐만 아니라 특유의 향, 풍미, 음주 후 숙취감, 안주와의 어울림 등으로 선택되기 때문에 마케팅만으로 시장을 장악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보해양조 관계자는 “애초에 수도권 공략을 축소하는 게 아니다”라며 “서울 근무 직원은 전남 장성의 생산본부로 이동하는데 직원과의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옮기는 것일 뿐이다. 기존 제품으로 소비자와 소통 강화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보해양조는 지난 3일 유시민 작가(전 보건복지부 장관)를 사외이사로 영입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임 부사장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그가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 작가는 방송에 출연하며 정치 및 사회 현안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우회적 마케팅으로 보기도 한다. 일반적인 홍보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회사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유 전 장관을 영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 작가 영입 소식이 알려진 이후 보해양조 주가는 5일간 1160원에서 1565원으로 34.9% 올랐다.

앞서 보해양조 관계자는 “마케팅 이전에 품질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제품은 풍미와 맛이 좋기 때문에 제품력은 갖추고 있다”며 “유 작가 영입은 이사회 추천의 결과이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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