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인 얼굴이라는 단어는 영혼을 뜻하는 ‘얼’과 통로라는 ‘굴’이 합쳐진 결과이다. 당연하게도 얼굴은 ‘영혼의 통로’라는 뜻이다. 영혼의 통로는 이 푸른 별 지구의 모든 인류가 지나가고 싶어 하는 영원의 길이다. 이집트에게 영혼의 통로를 지나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집트는 답을 했다. 지금 당신은 그 얼굴 앞에 서 있다고.

이집트라는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먼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떠오른다. 파라오와 투탕카멘, 람세스 등 익숙한 이름이 뒤를 잇고 카이로와 델타 그리고 나일과 사하라가 마지막으로 스친다.

사진을 통해 보았던 익숙한 장면들은 그저 눈동자 속에서만 맴돌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어른거리고 흩어진다. 제대로 마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실로 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집트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 끝에서 날아오는 미세한 돌가루와 사하라 저 편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마시고 카이로와 수에즈 시내를 걸으며 느끼는 그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온 사막의 신화를 듣는 것이다. 그 오래된 이야기의 길에는 모든 인류가 꿈꾸던 오래된 영혼과 염원이 스며 있다. 이집트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집트를 보았기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고.

결국 그들은 영혼의 통로를 빠져나온 것, 그 신비하고 내밀한 노정이 가능한 유일한 곳은 지구 상 이집트밖에 없다.
이집트 예습, 카이로 박물관

보통 낯선 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도시의 자형적 이미지를 익히기 위해 거리를 걸어보곤 하는데 이번에는 도착하자마자 박물관부터 먼저 찾았다. 카이로의 모습보다는 이집트 역사를 관통하는 유물들을 먼저 보아야 이집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유물들을 총 집대성한 곳이 바로 이곳 카이로 박물관이지만 이집트를 대표하는 대다수의 걸작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각국과 미국 도처의 박물관에 분산돼 있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집트 유물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와 영국의 대영박물관 그리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놀랍게도 이집트 유물은 그리스 로마 시대인 기원전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이집트에서 빠져나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런 방대한 컬렉션을 꾸밀 수 있다는 것. 수많은 세월 동안 해외로 밀반출되지 않고 그것들이 온전하게 모두 이 땅에 남아 있었더라면 이집트라는 나라가 현재 어떤 식으로 변했을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는 이만큼의 유물들. 이집션들이 아니, 온 인류가 필사적으로 지켜야할 대상, 그 커다란 숙제가 이곳에 담겨 있다.

박물관 건물은 카이로의 중심인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위치해 있다. 1902년에 지어졌으며 외벽은 짙은 핑크색으로 마감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사막 끝에 여울지는 늦은 석양빛이 내린 듯한 질감이었다. 이집트는 역시 사막의 아들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몽롱함에 빠져버린 나를 추슬러 관람을 마쳤음을 고백하며 이집트를 떠나기 전날 아침 조용한 시간에 홀로 와서 다시 관람했음은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실. 데자뷰에 현기증이 일면서 문득 아득해지는 순간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나는 과거 이집트의 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카이로 박물관에 서 있음을 끝없이 자각해야만 했다.
어느 작품 하나가 우선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 전부가 이집트의 것이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 압권은 2층 전시실에 개별 전시되고 있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금빛으로 말갛게 칠한 생동감 있는 눈동자와 특유의 아주 옅은 미소로 박제돼 있는 어린 투탕카멘.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관람객은 탄식과 탄성을 교차하며 낯설고 묘한 표정들을 짓는다,
그것은 이제껏 보지 못한 사물에 대한 인간의 특별한 반응의 표정일것이었다. 일찍 세상을 떴고 죽어서도 그 좁은 유리관에 갇힌 투탕카멘을 보며 나는 전시실을 나올 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집트의 얼굴인 그대 투탕카멘, 영혼의 통로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올드 카이로, 카이로 구시가지

박물관을 통해 이집트의 과거 통로를 걸었다면 이제는 카이로의 과거 통로를 걸어볼 시간, 카이로라는 도시 자체가 미스르 알 아디마로 불리는 이곳 구시가지에서 최초 번성한 후 북쪽으로 이동하며 완성됐다.

기원전 6세기부터 사람들은 현재의 주거형태를 띤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카이로 중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구시가지는 카이로의 옛 정취를 느낄만한 곳이지만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집트 고대 교회들이 있어 색다른 방문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콥트-이집트의 기독교 신자 지역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이슬람이 국교인 이집트에서 꽤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지켜온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콥트교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아무르 모스크와 그리스 정교회, 유대교 등 이슬람 아래 갖가지 이집트를 지탱해 온 종교들이 모여 있는 곳.

종교적인 분쟁의 씨앗이 완전하게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구시가지라기보다는 그런 종교를 유연하게 풀어낸 이집션들의 너그러움이 스며 있는 땅이다.

콥트 박물관은 지하철 마르 기르기스역 주변에서 시작되는 구시가지 콥트 카이로 지역의 상징적인 방문지로 이집트의 토착 기독교인 콥트교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콥트교도들의 성지다.
콥트어로 쓰인 성경책과 마리아상, 조각과 도자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콥트 관련 성물들이 전시돼 있지만 아쉽게도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인 세인트 조지 수도원을 지나면 마치 오래된 유적처럼 보존돼 있는 로만 타워를 지나고 무알라카 교회로 이어진다. 로만 타워는 나일강이 지금의 흐름으로 바뀌기 전 나일강을 관리하고 통제했던 군사시설로 이 요새를 기준으로 카이로는 남북으로 구분됐다고 한다.

로만 타워 옆에는 알 무알라카라고 불리는 공중 교회가 있다. 무알라카는 아랍어로 ‘매달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에 솟아있는 종탑의 십자가, 그런 교회를 꾸미는 순백의 외관. 이슬람의 땅인 이집트에서는 분명 이질적이지만 아름답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공간이다.
교회 마당에는 천사 가브리엘과 사도 바울 등 이 색색의 타일로 표현돼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교회 본당으로 연결된다. 교회 본당 입구의 이슬람 형식과 비슷한 문양은 낯섦과 신비스러움을 동시에 건네준다. 목조와 기둥으로 장식된 내부는 여느 종교 시설과 마찬가지로 엄숙함과 경건함의 공간이며 8세기 이전부터 18세기에 이르는 110여 점의 이콘화들이 보존돼 있다.

다시 구시가지의 골목을 지나면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진 아기 예수교회로 연결되고 유대교의 벤 에즈라 시나고그로도 이어진다. 두 곳 모두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지만 신성한 종교 시설에서 그것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 이제 다시 구시가지를 거닐 시간. 신성한 종교 시설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라 평온한 일상은 이 구시가지에 내려앉은 축복처럼 스며든다.
호객은 타 관광지보다 심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저 주어진 자신들의 하루를 산다. 카이로의 혼잡함과 관광지에서의 번잡함에 다소 지쳤다면 카이로의 구시가지는 다른 여타 국가들의 구시가지보다 훨씬 덜 상업적이다.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지만 또 가장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곳, 카이로가 순수하다는 증거, 바로 구시가지다.

재스민의 봄, 타흐리르 광장

이집트 신시가지 중심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은 이제 혁명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름을 이어받았다. 2010년 말 튀지니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는 인근 이집트로 옮겨 붙은 후 알제리와 예멘, 요르단과 시리아 등 아프리카 북부와 아랍까지 불길이 번졌고 재스민 혁명이자 아랍의 봄을 이끌어낸 진정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집트에서 결정적으로 불길을 피웠던 타흐리르 광장은 그래서 현대 이집트 민주화의 근거이자 상징처럼 남아있다. 이곳을 기준으로 카이로의 모든 주요 볼거리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아랍연맹 본부 역시 광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여행의 출발 지점으로 삼는다.
지하철역인 사다트역으로도 바로 이어지며 박물관과 광장 건너의 여행자 거리로도 연결되는 타흐리르 광장. 카이로에 도착해 아무래도 낯설고 혼잡한 풍경을 그러나 의외의 평온한 모습으로 그나마 조금 누그러뜨려 주는 곳. 고르게 숨을 쉬며 언젠가 타오를 불길을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는, 이집트에 영원히 남을 또 다른 카이로의 상징. 타흐리르는 아랍어로 해방이라는 뜻이다.

맥주의 원조, 이집트

맥주는 알코올 섭취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조금 의외다. 하지만 맥주의 양조기술이 처음 시작된 곳이 이집트라는 것은 이미 맥주 역사의 정설.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맥주로 지급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고대 세계사에서 술을 가장 즐겨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현금이라는 뜻의 ‘Cash’가 이집트어로 맥주를 뜻하는 ‘Kash’에서 유래된 것은 맥주 역사의 숨은 이야기. 이집트에는 완벽하게 만족한 사람의 입은 맥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맥주에 관한 속담이 있을 정도다.

광장 근처의 로컬 펍 ‘El Horreya’는 카이로 시민들의 맥주 사랑을 엿볼 수 있으며 이집트를 대표하는 맥주인 스텔라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딘가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구수한 맛. 술은 그 나라 사람들의 성품을 닮는다고 하더니 딱 스텔라가 바로 이집션과 같은 모습이다.
이집트의 숨결, 나일강

이집트 전체를 관통하는 혈관. 유역 면적만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강, 나일. 나일은 아프리카 중동부 고원 지대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해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를 아우르고 에티오피아와 수단을 지나 드디어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끝, 이집트에 닿는다.
이집트 땅에 들어온 물은 지중해로 흘러들어가기까지 6500km라는 장구한 물의 여행을 떠난 이후 외부로부터의 물의 유입 없이 온전히 이집트 나일의 물로만 지중해와 만난다.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 칭함은 나일이 자신의 수많은 희생을 통해 카이로, 나아가 이집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지중해의 파란 물은 나일강이 이집트 땅을 흐르는 동안 온갖 탁하고 불순한 것들을 걸러내 주었기에 그토록 파랗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집트는 나일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나일과 함께하며 아마, 이집트가 생명을 다하는 아주 먼 미래에도 나일은 끝까지 이집트와 함께할 것이다. 스핑크스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랫동안 이집트와 함께하고 있는 나일강. 묵묵하게 억만 년의 세월을 같이할 진정한 이집트의 심장은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가 아닌, 그저 단순하게 흐르는 나일강일 터.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지구 상 가장 긴 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제1의 자리를 브라질의 아마존에게 넘기고 쉼의 영역으로 돌아간 나일강. 나일은 그렇게 아직도 태초의 그 흐름 그대로 천천히 흐르며 처음에도 그랬듯이 카이로를 지금도 묵묵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집트의 어머니 나일, 나일의 숨 카이로 그리고 그 카이로의 곁 나일.
카이로의 꽃, 칸 엘 깔릴리 시장

엘 깔릴리는 카이로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카이로 시장이라고도 불리며 아랍권에서는 터키의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 이어 둘째로 크다.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가장 큰 시장. 1382년 무역 대상들을 위한 숙소 칸은 페르시아어로 대상의 숙소를 중심으로 지어졌으며 당시 이집트를 정복하고 카이로를 세운 파티마 왕조의 영묘가 있는 곳이라 카이로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땅이라 여겨진다.
역사가 무려 630년이 넘지만 실제 기록되지 않은 이 장소의 과거 역할까지 더하면 그 역사는 충분히 더 올라간다. 무려 1500개가 넘는 상점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 이곳에서 모든 카이로 사람들의 생활이 시작되고 또 이집트 전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물품이 거래된다. 형형색색의 물건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소소하고 치열한 축제. 이는 분명 카이로가 이방인에게 건네는 꽃다발이라 칭할 만하다.
카이로 사람들은 이 깔릴리 시장을 종종 정신적 고향으로 여긴다고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이집트의 이슬람 문예부흥운동인 알 나흐다의 근거지가 이곳이었으며 많은 예술가와 학생들이 사회와 종교에 대해 밤새 격론을 벌였던 아고라이자 몽마르트가 바로 엘 깔릴리였다.
이 지점에서 진짜 카이로 사람들과의 접점이 생기고 그제야 유적과 유물에 집중 했던 이집트를 한걸음 뒤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관광지에서 보였던 호객꾼들의 상업적인 미소가 아닌 진짜 카이로 사람들의 가감 없는 얼굴을 보게 되는 곳. 어쩌면 이집트의 진짜 영혼의 통로는 바로 엘 깔릴리의 골목일지도 모른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이곤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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