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끈 후 ‘진짜 보수’의 ‘가짜 보수’ 응징 시작된다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범(凡) 보수 대통합’. 정권 재창출을 꿈꾸는 보수 진영에 절체절명의 과제다. 정치권 내부 분위기 역시 보수 진영 후보의 단일화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도 이들이 궤를 같이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급한 불이 꺼지고 나면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 분열은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지난달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구속됐다. 유승민·김무성 의원 등 탄핵 찬성파가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는 데 앞장섰던 것이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됐다. 비록 대선 전에는 문재인 후보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보수 진영이 대의멸친(大義滅親)할 수밖에 없겠지만 대선 이후에는 탄핵 찬성파에 대한 ‘진짜 보수’의 응징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 ‘삼성동계’·‘탄핵 반대파’, 새누리당 입당설 ‘모락모락’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수 진영에는 ‘1차 분열’이 일어났다. 헌정사상 보수 진영이 분열된 것은 처음이었다. 유승민, 김무성 의원 등 탄핵 찬성파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수명이 다했다는 판단 하에 보수 개혁에 앞장서겠다며 자유한국당을 뛰쳐나갔다. 당시 이들에겐 친박계가 쥐고 있는 보수 주도권을 한 번에 빼앗아 올 수도 있겠다는 미소도 엿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정의당에조차 밀렸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에서는 ‘배신자 낙인’이 찍히며 지역기반마저 전무해지고 말았다. 당 대선 후보인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 역시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자강론’ 외치는 유승민, 왜?

 
정치권에는 지지율에서 크게 뒤처지는 바른정당이 대적 직전 자유한국당에 흡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인 유승민 의원 역시 단일화에 부정적이지 않았다. 대선이 끝나고 지지율 1~3%대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것보다는 홍준표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자신에게 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을 조금이나마 벗는 것이 추후를 도모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 의원은 얼마 전 바른정당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되자 돌연 ‘자강론’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향후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사와의 단일화 구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유 의원은 대선 전까지 TK 지역을 자주 방문해 ‘배신자’ 낙인을 지우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은 지난 28일 후보로 선출된 뒤 기자 간담회에서 “대구에 더 자주 가서 시민들을 만나겠다”며 “대구에도 괴롭게 입 다물고 사시는 분들이 워낙 많다”고 말했다. 그러자 홍준표 경남지사는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 게 TK정서”라며 “(유 의원이) TK가 본거지, 본 무대인데도 TK에서 안 뜨고 있다”고 유 의원이 ‘배신자’ 낙인을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권 역시 유 의원의 ‘자강론 선회’를 ‘두 번째 판단 미스’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것이 그의 ‘첫 번째 판단 미스’였다면 단일화를 통해 ‘배신자 낙인’을 지울 수 있는 기회를 본인 발로 걷어차고 있는 것이 ‘두 번째 판단 미스’라는 것이다.

실제로 유 의원은 ‘자강론’으로 입장을 선회했음에도 별다른 지지율 상승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 업체 <리얼미터>가 MBN·매일경제 의뢰로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해 30일 발표한 지지율을 보면, 유 의원은 3.0%를 기록해 5위를 차지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4.8%)에도 뒤처지는 수치다. 반면 홍준표 경남지사는 11.1%로 3위를 기록했다.

후보 단일화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후보 위주로 성사되는 게 일반적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유 의원이 ‘자강론’을 고집한다 해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흡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 후보의 집권 저지를 위해 보수 단일화를 외치는 보수 지지층의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친박단체, 5일 ‘새누리당’ 창당대회

다만 대선이라는 급한 불이 꺼지고 나면 보수 진영에서는 2차 분열이 일어날 전망이다. 유승민·김무성 의원 등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세력들에 대한 보수 지지층의 응징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유승민 후보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인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재출마했을 때 그가 당선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 후보가 국회에 다시 입성하는 것을 TK 그것도 대구 민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일각에서는 ‘삼성동계’로 불리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8인방과 탄핵 반대파 50여 명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태극기집회’를 주최해온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를 주축으로 꾸린 새누리당이 5일 창당대회를 여는 것은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4월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전 지역구에 후보도 낼 계획이다. 지난달 15일 정광용 국민저항본부 대변인은 “국회의원 1곳, 기초단체장 3곳, 광역의원 7곳, 기초의원 19곳 등 30곳 모두에 가칭 ‘새누리당’ 이름으로 후보를 내겠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한국당 대선 주자로 나섰던 친박 대표 인사인 김진태 의원이 예상보다 높은 5%대의 지지율을 얻으며 선전한 점과 조원진·이완영·박대출 의원 등이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 및 무소속 국회의원 82명의 서명을 받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점 모두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이 단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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