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2025’ 발표 아시아 최대 그룹으로 도약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뉴시스>
IMF로 기업들 쓰러질 때, 오히려 브랜드 개발 매진
사드로 중국 길 막혀… ‘중화권 중심 체제 탈피해야’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20년 동안 영업이익 10배 증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이하 아모레) 회장의 재임 기간의 가장 큰 성과다. 국내 시장을 넘어서 북미, 유럽,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에도 성공했다. 올해 기준 14개국에서 19개 국외법인을 운영하며 국외에서만 32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 회장은 꾸준히 기업 내 소통 문화 형성과 사회 복지에도 힘쓴다. 이에 ‘서 회장 재임 20년’ 안팎으로 거둬들인 성과와 향후 20년 계획을 살펴봤다.  

1997년 서 회장의 취임 첫 해의 아모레(당시 태평양)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8115억 원. 특히 1997년은 외환위기로 국내 경제가 파탄 난 시점이었다. 한보·기아 등 국내 굴지의 철강·자동차 제조기업들도 잇따라 쓰러졌다.

재계 다수의 관계자들은 34세의 젊은 오너가 이끄는 이 화장품 기업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서 회장은 적자 계열사들은 정리하고 화장품만 남겨둔 채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헤라와 아이오페, 설화수 등의 히트작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아들이 걱정됐던 서성한 아모레 초대 회장도 서 회장의 대표이사 취임을 몇 번이고 보류하며 고민했다고 한다. 20년이 지나 아모레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국외사업의 성공과 주식 가치의 상승은 눈부신 성과를 기록했다.

지난해 아모레 연결 기준 매출액은 6조6976억 원, 영업이익은 1조828억 원. 서 회장 취임 시와 비교해 각각 8배, 11배(1997년 영업이익 981억 원) 넘게 증가했다. 국외시장에서도 빠르게 성장했다.

취임 당시 서 회장은 “국민적 붐을 일으키는 상품을 개발하겠다.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매출의 20%를 국외에서 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 약속은 2015년부터 지켜졌다. 지난해 말부터는 국외 사업 매출이 1조6900억 원을 넘어서며 전체 매출의 25% 가까이가 국외에서 나왔다.

주식 가치도 크게 올랐다. 아모레의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6조 원이다. 이는 아모레퍼시픽그룹 10조 원, 아모레퍼시픽 16조 원을 더한 금액으로 국내 순위 7위다. 1997년 서 회장 취임 당시는 1700억 원대로 120위에 머물렀다.

주식가치 상승으로 서 회장 개인 자산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발표된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Bloomberg Billionaire Index)에 따르면 서 회장은 79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보유해 세계에서 154위에 등극했다. 국내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서 회장은 평소 수평적인 사내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기로 소문났다. 그 이유는 아모레의 원할한 소통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회장님 아닌 서경배 님

실제로 최근 아모레의 가장 성공적인 제품인 ‘쿠션파운데이션’도 한 연구원의 주차장 스탬프에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탄생됐다. 이를 위해 아모레는 2002년부터 직급을 폐지하고 서로를 ‘님’으로 통일해 부른다. 아모레 관계자에 따르면 직급 폐지를 발표하며 서 회장이 사내에서 본인을 ‘서경배 님’으로 부를 것을 지시했다.

이 밖에 서 회장은 기부도 꾸준히 실천해 왔다. 2002년부터 15년째 아모레퍼시픽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지난해에도 이 모금회를 통해 30억 원을 기부했다. 또 서 회장은 과학 발전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해 9월 사재 3000억 원을 들여 과학 영재 발굴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을 넘어 세계로 

서 회장은 최근 취임 20주년을 맞아 ‘비전 2025’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총 매출 12조 원 달성, 해외매출 비중을 전체 매출에서 50%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로 설정됐다. 목전에 둔 과제는 중화권 중심으로 이뤄졌던 국외 사업의 체질 개선이다.

아모레는 2001년부터 일찌감치 상해와 홍콩시장을 통해 중국에 진출해 부유층 고객을 사로잡아 중국 내 명품 브랜드로 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그동안 아모레의 국외사업 매출 절반은 중국에서의 성과가 견인했다.

하지만 아모레도 최근 한중 양극 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이하 사드)로 불거진 갈등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아모레 주가는 지난해 여름 사드 배치 발표가 나자마자 순식간에 폭락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아모레의 중국 내 입지가 탄탄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손실을 회복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화장품의 세계 격전지인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라도 시장 다변화는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모레는 올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 시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시장들은 아모레에게 아세안 진출의 전진 기지로서 역할을 한다. 또 신흥시장인 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에서도 브랜드 인지도를 공격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서 회장은 지난 1월 시무식에서 “원대한 기업 비전 달성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며 “우리는 지금 제품만 잘 만들면 팔리던 ‘양의 시대’, 기술이 담긴 상품이 되어야 팔리던 ‘질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독보적인 감성을 담은 ‘명품’만이 팔리게 되는 ‘격(格)의 시대’로 바뀌는 변곡점에 서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밖에도 “전 세계에 넘버 원(No.1)이 아닌 온리 원(Only One)의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강조하며 세계시장을 목표로 시장 다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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