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범행인가 ‘계획된’ 살인인가

가해자 10대 소녀가 A(8)양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리고 가는 모습 (CCTV 화면 캡쳐)
충동 성향 보이는 조현병과 달리 치밀한 범행 수법·흉악성 보여
전문가,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이 결합된 합병증” 분석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달 말 인천에 사는 8살 초등학생 A양이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A양은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채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 위에서 싸늘하게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10대 소녀란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B(17)양은 경찰에서 아무런 기억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했으나 결국 살해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일면식도 없는 A양을 왜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경찰은 평소 B양이 오랫동안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우발적 범행을 저지르는 조현병 환자의 특성상 B양의 범행은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다. 계획된 듯한 치밀한 행각과 잔인한 살해 수법 등을 봤을 때 흉악범과 유사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 재구성
시신 심하게 훼손돼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빌리려고 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엄마에게 연락해야 한다며 언니로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8살 A양은 그 후 돌아오지 못했다.
 
A양은 지난달 29일 오후 12시 45분쯤 자신이 다니던 학교 주변 공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A양 친구가 경찰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A양은 “엄마한테 연락해야 한다”며 “휴대전화를 빌려 써야겠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으로 알려진 B양은 A양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주겠다며 집으로 유인했고, 오후 1시쯤 공원 주변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B양은 자신의 집이 있는 15층이 아닌 13층에 내려 2개 층을 A양과 걸어올라 간 것으로 확인됐다.
 
귀가할 시간이 됐는데도 A양이 돌아오지 않자 A양 부모는 4시 30분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수색에 나섰지만 약 6시간 뒤인 오후 10시 30분쯤 A양은 아파트 옥상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앞서 오후 1시쯤 A양과 집에 온 B양은 태블릿 PC와 컴퓨터를 잇는 연결 잭으로 A양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B양은 집 화장실에서 흉기로 장기를 꺼내 분리하고 시신을 절단했다. B양은 시신을 2개의 대형 비닐봉투에 담아 집과 옥상을 2차례 왕복하며 옥상 물탱크 주변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살해동기 의문 증폭
사이코패스 ‘무게’

 
B양이 안면도 없는 A양을 왜 그렇게 무참히 살해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경찰은 B양이 조현병을 앓았으며 여러 사람이 아닌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B양은 조현병과 우울증으로 최근까지 주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입원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조현병은 피해망상이나 환청으로 우발적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B양은 우선 피해망상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엇보다 범행 수법이 치밀했다. 시신을 절단해 유기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또 경찰 조사에서 “단지 꿈인 줄 알았다”면서 냉정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언론 보도나 SNS상 주변 인물들의 진술에 따르면 B양은 밥을 먹으며 동물 해부 영상을 보기도 하고 고양이 해부를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점들을 보면 B양의 행동은 조현병에 의한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고의성·흉악성 등의 성향을 보이는 ‘사이코패스’ 범행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행의 잔인한 정도로 봤을 때 사전에 살인 의사가 있었고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죄의식은 약한 반면 범행 동기는 굉장히 강해 보이는 데 이런 유형들은 조현병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이 결합된 합병증처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B양은 최근 프로파일러 조사에서 “A양이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고 배터리가 없어 충전한 뒤 쓰게 해주려고 집에 함께 데리고 갔다”며 “집에 들어갔는데 고양이를 괴롭혀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진술은 범행의 고의성을 부인하고 우발적인 범행임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또 B양은 오후 1시쯤 A양을 데리고 들어가 3시간 만인 오후 4시쯤 집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는데 불과 3시간 만에 살해, 시신훼손, 시신유기 등이 모두 이뤄진 셈이다. 동종 전과가 없는 10대 소녀가 사전에 계획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 같은 범행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경찰 안팎의 분석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추적·관리 시스템 필요

 
조현병은 환청이나 망상 등에 의해 사회활동에 지장을 받는 ‘정신 질환’이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 불리는 ‘인격 장애’ 증상이다.

이수정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시선뉴스’에서 조현병 환자에 대해 “실제 (말)하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또는 잘 고쳐지지 않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며 “자기 생각에 많이 빠져 있거나 들리는 소리에 반응을 해 혼자 중얼거리고 해서 우리가 옆에서 볼 때 좀 잘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보이곤 한다”고 설명했다.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는 “의학적인 정식 용어는 아니고 범죄 심리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데, 정식 진단으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속한다”며 “인격장애는 인격이 형성되면서 꾸준하게 그 사람이 반응하는 행동 양식을 뜻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사이코패스는 범행이 발각되고 나서야 진단받은 경우가 많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강호순도 범행이 밝혀지기 전에는 그냥 성격이 나쁘다는 정도로 인식됐을 뿐이다.
 
다만 의료계 입장에서는 ‘사이코패스 인간형’을 사전에 조치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울증, 조현병, 사이코패스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든 상태에서 확실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사이코패스라고 진단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을 찍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 아동과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력범죄가 계속되는 만큼 반사회적 인격 장애 성격을 보일 경우 이들을 추적해 지속·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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