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다”

사진제공 = 출판사 '자작나무숲'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30년의 침묵을 깨고 회고록을 출간했다. 사회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로 대통령 권력을 잡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 한 주범으로 인식돼있다. 이 때문에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기록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펴낸 그의 회고록이 논란의 정점에 이르고 있다. 네티즌과 시민단체들은 비난과 동시에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는 상황. 과연 회고록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논란 대상은 무엇일까?

全, 12.12사태 관련 “나의 주저 없는 선택이었고 목숨을 건 결단”
시민단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전두환 회고록’은 총 3권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3일부터 5일, 7일, 3권의 책이 순차적으로 출간됐다.

1권 ‘혼돈의 시대(1979~ 1980)에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부터, 12.12, 5.17, 5.18 등 긴박했던 현대사를 다뤘다.

2권 ‘청와대 시절(1980~ 1988)’에는 1980년대 5공화국 국정 수행 기록이 담겨 있으며 3권 ‘황야에 서다(1988~현재)’에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의 상황을 적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이 된 1권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강력한(?)’ 발언들이 담겨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글을 시작하며 “사람들은 이 글에서 내가 투박한 육성으로 토해내는 항변과 원망과 자기자랑을 읽게 될 것이다”라며 “시간의 여과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지난 세월이 힘겨웠던 만큼 가슴에 맺힌 것이 없지 않은 것이다…나의 회고록은 참회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뒷공론을 나는 개의치 않으련다”고 밝혔다.

회고록 초반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그는 “내 뒤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 여섯 분의 대통령이 나왔는데 한 분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함으로써 임기를 1년 가까이 남겨놓은 채 물러나야 했다”며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중심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소신껏 국정을 수행하고 임기를 마치는 일이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기록했다.
 
“나는 역사가 사용한
하나의 도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된 10.26사태에 대해 “내가 보안사령관에 임명된 일은 7개월 뒤에 발생한 10.26 발생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10.26 마무리 과정에서 발생한 12.12(군사 반란)에 대해 “대의를 살펴 판단했고 내 삶의 신조가 가리키는대로 결심했고, 내가 일하던 방식대로 행동했다…그 일은 나의 주저 없는 선택이었고 목숨을 건 결단”이라고 밝혔다.

또 자신이 ‘역사적 희생자’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도, 12.12와 5.17이 내 사적인 권력 추구의 출발점이라고 단정되고 있겠지만,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낸 것은 시대적 상황이었다”며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한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비상한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나는 역사가 사용한 하나의 도구였는지도 모른다”며 “나의 존재는 태생적으로 낯섦과 미움의 털을 달고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논란된 ‘씻김굿’
‘십자가’ 표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운명적 선택’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는 “비판자들은 1980년대의 그 안정과 질서가 ‘공안 통치’ ‘군부 독재’에 의해 유지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 같다. 나는 재임 중 국방상의 이유 이외의 목적으로 군을 이용한 일이 없다”며 “정치 상황을 타개하는 데 군의 힘을 빌린 일이 없음은 물론, 군이 동원되는 위수령이나 계엄령을 단 한 번도 발동한 일이 없다”고 호소했다.

논란의 대상이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해서는 “광주사태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와 희생이 컸던 만큼 상처가 아물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며 “그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겠다. 광주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되었다”고 자신이 그 제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을 격하하는 단어인 ‘광주사태’를 계속 사용하는 등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발포 명령’ 진실은 무엇?
 
그는 5.18에 대해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광주사태의 성격(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고착화된 통념을 뒤흔드는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과 증거들이 제시되자 화살을 맞은 맹수처럼 나에 대한 공격은 더욱 거칠어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신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의도적으로 발포를 하라 지시하지 않았고 그게 사실로 밝혀졌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작전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이라며 ‘발포 명령’이 있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 때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란목적살인죄’ 혐의도 유죄로 확정됐었다.

이처럼 회고록에는 대법원의 판결과 상반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발포 명령’이라는 것은 존재하나 전두환 전 대통이 지시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비친다.

한편 5.18 기념재단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5.18내란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이 회고록을 통해 치졸한 변명 일색의 망발을 늘어놓으며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며 “그는 5.18학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5.18민주화 운동의 상처를 치유하고 달래기 위한 씻김 제물이라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발포 명령과 관련해 “계엄군의 무자비한 학살과 발포명령, 헬기에서의 총격, 행방불명자 및 사망자의 규모 등 5.18의 진실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며 “전두환과 같은 망발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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