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양강 구도를 형성한 가운데 야당의 텃밭인 호남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이 한창일 때 호남은 문 후보에게 기우는 양상을 보였지만 안 후보가 기적처럼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호남 표심은 반으로 갈라져 박빙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통상 대선 본선이 시작되면 한쪽으로 표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전략적 투표’현상을 보였던 호남이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 호남에서 문 후보가 ‘대세론’속에서도 압도하지 못하는 배경에 2003년 민주당 분당 사태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민주당 분당 사태는 열린우리당의 비극이자 정당사의 대단한 불행한 사건”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 DJ, “열린우리당 비극” 한탄
  
- ‘호남정치복원’과 ‘호남때리기’ 영호남 권력다툼 산물

문재인 안철수 양강 구도를 형성하기 전 호남에서는 문 후보가 두 자릿수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4월 초를 기점으로 안 후보가 지지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리면서 호남에서도 문 후보를 앞서거나 접전 양상을 보였다.

특히 문 후보와 안 후보 호남 지지는 연령별대로 뚜렷하게 갈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 후보는 상대적으로 젊은 청장년층인 2040세대에서 앞서 있고 안 후보는 50대 이상 중노년층 이상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호남 표심을 보면 역대 대선에서 ‘전략적 투표’를 통해 한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예외로 끝까지 팽팽하게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문 후보가 ‘대세론’속에서 호남에서 50대 이상 연령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배경으로 15년이 돼가는 2003년도에 벌어진 민주당 분당 사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호남 홀대론 기원, “50대 이상은 알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2003년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할 당시 명분도 약했지만 세력도 미미했다”며 “당시 40대 이상 호남민들은 ‘누가 대통령을 만들어줬는데 배신을 하느냐’는 앙금이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당시 이해찬 의원은 탈당을 반대하며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탈당 주도파에게 ‘명분이 부족하면 세력이라도 많아야 한다’며 ‘80석 이상 탈당파를 모아서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끝까지 반대했다”고 전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2000년 총선에서 115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11월 천신정 등 친노무현 인사 40명이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 이해찬 의원뿐만 아니라 김근태 의원도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친노 중심의 신당 창당에 반대해 단식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뜻밖의 사건이 터지면서 신당 창당은 급물살을 탔다. 바로 ‘이미경 머리채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이 사건은 분당을 반대한 구주류인 문팔괘 전 서울시의회 의원이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신당 창당파인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당긴 폭력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분당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사건 당일만 31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탈당계를 냈고, 분당을 반대하던 김근태 의원도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사망했다”며 신당에 합류했다. ‘80석 신당창당’을 이유로 분당을 반대하던 이해찬 의원도 막판 신당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친노 패권주의’가 당내 생겨나게 됐고 계파정치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게 됐다. 3김정치 때에는 ‘동교동계’, ‘상도동계’가 있었지만 패권주의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친문 패권주의의 뿌리인 셈이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년이 지난 2009년 10월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정당사의 불행한 사건이라고 한탄하기에 이르렀다.

DJ는 “산토끼(영남) 잡으려다 집안토끼(호남) 놓친 격”이라며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새천년민주당에서 분당한 데 있다”고 질타했다. 또한 DJ는 “민주당이 노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서 민주당의 정통과 정강정책을 충실히 지키겠다고 국민한테 약속했다”며 “그러나 표를 찍어준 사람들은 그렇게(분당하길)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DJ는 “정당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면이 부족하지 않았느냐”며 “그래서 우리정당정치가 상당히 후퇴해버렸고 우리나라 정당사에선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짙게 토로했다.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로 인해 선거철만 되면 ‘호남정치복원’과 ‘호남때리기’가 반복돼 호남민들을 분열하게 만들었다. 결국 2004년 총선에선 노무현 전대통령 탄핵 사건까지 겹쳐 광주의 경우 100% 물갈이되는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114석을 받은 반면 민주당은 11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호남 정치 복원’과 ‘호남 때리기’ 최대 피해자

‘호남 정치 복원’이란 과거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투쟁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던 호남정치를 다시 복원하자는 주장이고 호남은 기득권을 가진 구태 집단이니 현역 국회의원들을 인위적으로 물갈이해야 한다는 것이 ‘호남 때리기’ 전략이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이후 호남의 정치적 단절현상은 인물난으로 이어져 2007년, 2012년, 2016년 현 대선까지 15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호남정치복원’과 ‘호남 때리기’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호남 때리기는 2016년 총선전 민주당이 국민의당으로 분당하는 과정에서 재차 발생했다.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할 당시 친노 정청래 최고와 구민주계 주승용 최고간 ‘공갈발언’ 설전이 대표적이다.

또한 공천 과정에서 주류인 친노가 호남 출신 구민주계에 대한 조직적 ‘공천 배제’ 정황이 포착되면서 집단적으로 탈당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국민의당 대다수 구성원이 호남 출신으로 꾸려졌다.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가 다시 재현된 셈이다

반면 ‘호남정치복원’ 경쟁은 문재인의 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당 간 치열하게 총선 과정에서 벌어졌다. 당시 문 전 대표는 선거 5일 전 광주를 찾아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등 벼량 끝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2004년 총선 결과와는 달리 호남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압승으로 끝이 났다. 호남 민심이 문 후보로 대표되는 영남 패권주의에 대한 경종을 울린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이는 50대 이상 호남민들이 문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결과라는 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40대 중반에 경험한 민주당 분당사태에 호남이 최대 피해자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는 셈이다. 특히 ‘호남정치복원’과 ‘호남 때리기’ 뒤에는 호남과 영남 야권 세력간의 정치적 주도권 싸움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대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60이 다 된 호남 출신 국민의당 한 인사는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의 정치적 기반을 영남지역에서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영남에 많은 공을 들였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도 김대중 대통령의 동진정책의 산물이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대북 특검에 분당 나아가 원칙도 없이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시해 최대 지지 기반인 호남사람들을 실망시켰다”며 “이젠 호남 정치인들의 정치적 단절현상이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상당수 호남인들이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그는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의 주역인 천정배, 정동영 의원이 지난 총선에 전북과 광주에서 출마했을 때 둘 다 안 돼야 했다. 지역민 특히 50대 이상은 정말로 선택하기가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영남 패권주의가 여전한 민주당 후보보다 그나마 덜 밉고 제대로 된 대선 후보도 못 내는 호남 처지에 인물을 키워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고 당선 배경을 설명했다.

호남민들의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은 조기대선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문 후보가 호남에서 1위를 달릴 때에도 민주당 내에서조차 “문 후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가장 유력한 후보라서 지지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또한 여권 후보와 야권 후보 간 대결이 아니라 ‘야야 대결’이라는 점도 호남의 전략적 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도 지난 총선처럼 호남 민심은 안 후보와 문 후보로 지지표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 후보는 중앙선대위에 호남 출신들을 전진 배치하면서 호남 민심잡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은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김효석 전 국회의원을 공동선대위원장에 배치했다.

文 선대위 ‘호남 인사 전진 배치’ 그러나…

또 송영길 의원을 중앙선대본부 총괄본부장에, 강기정 전 의원은 총괄수석부본부장으로 김영록 전 의원은 조직본부 공동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 밖에 김현미·신경민 의원은 미디어본부 공동본부장, 이용섭 전 의원은 비상경제대책단장, 김성곤 전 의원은 재외국민투표지원회 위원장 등에 배치했다.

이뿐만 아니라 안희정 충남지사 경선캠프의 의원멘토단장 출신인 4선의 박영선 의원을 호남 총책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의원의 경우 당내 대표적인 비문 인사로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제안받았으나 외곽에 머물고 있는 데다 탈당할 경우 문 후보로선 대선 가도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문재인 선대위에서는 박 의원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다 호남에서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는 점을 들어 호남을 맡아 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 후보는 ‘호남 홀대론’에 대해서 사과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지난 2월15일 호남홀대론에 대해 “참여정부는 검찰총장, 국정원장, 감사원장 등 한꺼번에 호남 인사를 기용하고 호남KTX 조기 착공, 여수박람회 유치 등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겸허히 인정한다”면서 “내가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인사도 확실하게 탕평 위주로 해나가 호남을 비롯 전국적인 통합의 새로운 장을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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